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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Oct 04. 2024

까칠한 매력 덩어리 과일, 커스타드 애플과 사워솝

이국적인 향에 홀리고 맛에 놀람 주의

동남아 하면 망고, 유럽 남부 하면 납작 봉숭아 먹어줘야 하듯이 날씨가 더운 나라를 가게 되면 그 나라의 제철 과일은 꼭 찾아 먹어줘야 한다.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향과 맛은 정말 어깨춤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최고이기 때문이다. 과일은 자연이 키운 최고의 디저트 아니겠는가! 그래서 해외여행을 가면 시장이나 마트에서 제철 과일 사먹는 게 그렇게 꿀잼일 수 없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식후 과일 배는 따로 있잖아?


인도도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열대 과일 종류도 많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생소한 과일들도 꽤 있다. 나름 해외살이도 해보고 여행도 여기저기 다녀봐서 과일이 특이해야 뭐 얼마나 특이하겠나 싶었는데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인도에 와선 마트에 올 때마다 생전 처음 보는 채소, 과일들 때문에 구글 검색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땅이 대륙 스케일이라 그런가 바나나 종류도 우리가 아는 노란 중간 사이즈부터 미니, 점보, 그린, 레드 바나나까지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인도에 와서 산 지 2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이젠 언제 뭐가 나는지 대충 알게 되어 내가 좋아하는 과일들의 제철을 기다리게 된다. 예를 들면 4월의 망고, 8월의 커스타드 애플과 사워솝, 몬순(우기)가 끝날 무렵인 9월의 핑크 구아바이다. 망고 시즌 같은 경우는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시즌인데 거의 인도 전역에서 온갖 종류의 망고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 망고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망고 종류를 맛보았는데 정말 맛도 향도 다양하고 너무 맛있다. 내년 제철일 때 기회가 된다면 망고 스토리를 풀어보고 싶다.


아무튼 이 전국 망고 페스티벌 같은 시즌이 끝나면 이 헛헛함을 무슨 과일로 채워줘야 하나 마음이 적적해진다. 그 무렵 인도는 우기를 맞아 비가 한창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때 마트에 가면 울퉁불퉁 뾰족뾰족 선인장 같은 과일들이 슬슬 진열대를 채우기 시작한다. 작년에 이 과일들을 마주했을 때의 첫인상은 (고개 갸우뚱) ‘의잉? 이게 과일이라고?’였다.


그중 하나는 이름이 커스타드 애플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이름과 전혀 매칭되지 않는 다육식물 같은 비주얼이었다. 어떤 직원이 채소 코너에 채워야 할 것을 실수로 과일 코너에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은 궁금하니 그 중 하나를 집어 들고 킁킁 냄새를 맡아봤다. 근데 예상치 못한 달달하고 향긋한 향이 코를 스쳐 지나갔다. 아차!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껍질이 너무 두꺼워 보여서 향이나 날까 싶어 코를 들이대 본건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향이 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일단 장바구니에 담았다. 집에 돌아오니 사오긴 했지만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이 과일들을 쟁반 위에 올려놓고 실온에 두었다. 2,3일 정도 지나니 어디서 날라온 건지 날파리들이 엄청나게 꼬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갈라진 껍질 사이로 과즙이 흘러나와 더 달콤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뭐든 맛있는 과일들은 나보다 곤충들이 먼저 아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제 먹어야 할 때구나 싶어 조심히 씻어 접시에 놓았다.


어떻게 잘라서 먹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칼을 댔는데 얼마나 부드러운지 별 힘들이지도 않고 결대로 쩍 갈라지길래 이후부턴 손으로 쪼갰다. 사과처럼 단단한 과일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그 속은 보드랍고 뽀얀 속살과 까만 씨들로 꽉 차있었다. 설레는 마음에 한 입 크게 왕하고 베어 물었는데 달콤한 맛과 리치보다 더 이국적인 향이 입안과 코로 막 흘러 들어왔다. 혀끝에선 껍질 부분에 바로 안쪽에 붙어있던 얇은 과육 부분이 크리미하게 녹았고 순식간에 꿀떡 넘어갔다. 순간 왜 이 과일 이름에 커스터드 라는 명칭이 들어가는지 이해가 갔다. 크림 같은 부분이 사라지니 매끄럽고 탱글한 메인 과육이 입에 남았다.


이 과육을 씹으려고 저작운동을 시작한 순간 ‘우적!’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황홀하던 찰나 바로 이게 웬 흥 깨는 소리인지. 수박 먹다 씨 씹은 기분이었다! (씨를 드시는 분들도 많지만 난 하얀 씨까지 다 발라 먹는 타입이다.) 게다가 씹을수록 씨가 과육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맛은 있으니 입안에서 부지런하게 씨들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 한입 먹었을 뿐인데 씨앗이 열몇 개가 나왔다.


이 메인 과육 부분은 홍시의 씨앗처럼 씨 하나를 감싼 얇은 과육이 붙어있는데 이것들로 주먹만 한 구를 이루고 있다. (뭐라 말로 묘사하기 참 어려우니 사진을 참고하시길) 과일 하나를 다 먹고 남은 씨앗 무더기를 보니 내가 뭘 먹긴 먹은 건가 싶은 약간의 실망감이 들지만 한 입 가득 떠먹었을 때의 그 감동은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계속 이 과일을 찾게 만든다. 남편은 씨앗이 하도 많이 나오니‘ “몇 개 심어볼까?” 제안했지만 한국에 돌아가기 전엔 수확이 불가하다는 결론이 나와 난 “아서라, 그냥 사먹자” 했다.


커스타드 애플이 다육식물 같다면 진짜 선인장 잘라온 듯한 비주얼의 ‘사워솝’이라는 과일이 있다. 같은 시기에 먹을 수 있지만 흔한 과일은 아니라 구하기가 쉽진 않다 보니 보일 때마다 무조건 사온다. 찾아보니 남미에서는 좀 더 흔한 과일 같은데 인도에서는 한두 지역에서만 나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다고 한다. 맛은 이름 그대로 신맛이 있는 그리고 동시에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좀 더 망고스틴스러운 열대 과일의 맛이다. 과육도 많고 향도 예술이지만 역시나 씨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단맛만 있는 과일보단 신맛이 같이 나는 과일들을 더 좋아해서 이 과일을 훨씬 더 좋아한다.



어느 날 골프장에서 남편이 드라이버를 치려고 언덕진 곳을 올라가 따라갔는데 바로 옆에 있던 나무에 딸기만 한 사이즈의 베이비 커스타드 애플이 귀엽게 매달려 있었다. 평소엔 그냥 잎만 무성한 나무겠거니 했는데 이 과일의 존재를 알고 나니 이 나무는 특별한 과일나무가 되었다 알고 보니 골프장의 곳곳에 꽤 많은 커스타드 애플 나무가 있었다. 남편에게 이 존재를 알렸더니 “나중에 이거 다 크면 우리도 하나 따서 먹어보자!” 했다.


허나 사람들의 생각은 다 비슷했다. 수확 시기가 될 때쯤 언제 하나 발견해서 먹어보나 싶었는데 눈 높이에 보였던 과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기 일하시는 분들이 언제부턴가 광주리를 들고 다니더니 다 따가신 것 같았다. 우리는 선착순에 밀린 것 같다며 웃어넘겼다.


커스타드 애플은 생김새 때문에 몽크스 헤드, 즉 수도승의 머리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처음엔 이 생김새가 못나 보였는데 이제는 귀엽고 독특해서 매력 있어 보인다. 역시 사람이든 과일이든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그리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그 흔한 교훈을 여기서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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