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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로링 Aug 04. 2024

서울시가 잠이 든 시간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13년 여름의 회고

 문을 열자마자 훅 풍기는 열기와 습도에 괴로운 요즘이다. 아주 몹시 더위를 타는 허약한 체질인 탓에, 매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빨리 시작되고 제법 늦게 끝나는 여름을 거칠 때마다 그저 이 끔찍한 날씨가 어서 정신을 차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기후 위기가 도래한 데 분명히 책임이 있을 스스로를 반성하며 헥헥거리는 매일 속에서 여름이란 내게 몹시 진절머리나는 계절인 것이다.  


 이런 내게도 살아온 지금까지를 기준으로 딱 한 번, '아름다웠다' 말할 수 있는 여름이 있다. 짧은 단발머리인 지금과 달리 머리를 한껏 길렀고 새로운 친구가 잔뜩 생겼으며, 힙합을 즐겨 듣던 스물 한 살의 여름이다. 그저 지금보다 더 좋은 체력과 비교적 근심이 없었던 시절로만 기억하기에는 2013년의 여름이 주는 낭만과 아련함은 지금까지도 꽤나 크다. 아마 그 때를 기점으로 시야가 폭발적으로 넓어져서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추측만 할 뿐, 왜 아직까지도 유일하게 낭만적인 여름으로 남았는지는 명확히 대답할 수 없다. 


 인구 삼십 만의 소도시에서 갓 상경해 이리저리 눈알만 굴리기 바빴던 스무 살과는 달리, 스물 한살이었던 2013년은 꽤나 스스로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내기라는 이름은 딱 사계절의 낭만이었을 뿐 2013년이 되자마자 보기좋게 박탈당했고, 대신 '선배'라는 이름이 붙었다. 누군가는 대외활동을 시작했고, 누군가는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누군가는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내 관심사는 '학생사회' 였다. 단어가 주는 이미지-깃발, 투쟁, 노래, 연대 같은 것들-와는 달리 내가 그 해 겪은 첫 번째 학생사회는 나름대로 힙하고 재미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듬해 나는 정말로 더 큰 범위의 학생사회를 만나 통상적인 이미지의 경험들을 하게 된다) 문과대학 학생회에서 만난 다른 과 친구들, 그 친구들과 함께 하는 토론, 행사, 술자리. 이런 것들이 그저 즐겁고 재미있었다. 


 그들과 함께할 때면 청소년기의 성장 환경과 맞물려 내 자존감을 감싸고 있던 위축이 한 꺼풀 벗겨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개인의 영달이 아닌 조금 더 대의적인 무언가를 논하면서, 어떤 조건이나 환경보다 내 생각과 합의된 의견이 더 중요한 시공간이 그 자체로 참 소중했다. 무엇보다도 그 때 알게 된 친구들은 내 대학 생활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는데, 밴드 활동을 하며 주구장창 듣던 밴드 음악에서 벗어나 처음 힙합에 눈을 떴고, 그게 주는 껄렁한 분위기에 취해 신촌의 여름 밤거리를 쏘다닌 것도 그들 덕분이다.  


서울시가 잠이 든 시간에 아무 말 없는 밤 하늘은 침착해
그와 반대로 지금 내 심장은 오늘만 살 것처럼 아주 긴박해
살아있음을 느낄 때면, 난 산송장처럼 눕긴 싫어


 재지팩트나 프라이머리 같은 음악에 흠뻑 취해서 지금처럼 헌팅 포차같지 않던 다모토리에서 소주밤을 들이키고 있자면 어떤 근심도 다 잊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근심이 근심이 아닌 게 되곤 했다. 장래에 대한 고민은 너무나 멀찍한 것이 되었고, 나와 나를 둘러싼 관계만이 가장 민감한 이슈였을 뿐. 뜻과 결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여름이 주는 무더위나 장마가 몰고 온 습한 공기마저도 아름다웠다. 해가 길어 어둡지 않은 밤은 그 때의 내게 축복이었다. 가끔 혼자인 때에도 그 정취를 참을 수 없어 무턱대고 나와 목적지 없이 수 킬로미터를 걷다 돌아가곤 했다. 그토록 바랐던 서울에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 꿈의 근처라도 가 보고 죽겠다는 노래 가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작 그 꿈이 무엇인지는 몰랐던 미완성의 시기. 일정한 계획이나 나중을 위한 자기계발은 없었어도 무얼 하든 내 행동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시기. 졸리거나 피곤하다는 말 대신 지금 만나자는 말로 가득했던 여름. 비틀대며 귀가해 쓰러져 잠들고, 다음 날 아침 수업을 결석해도 마냥 좋았던 여름. 환상처럼 마냥 청량하지 않아도, 눅눅한 네 평짜리 자취방에서 듣는 여름 빗소리마저 낭만적이었던 여름.


 그 여름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나는 이제 여름밤의 분위기를 즐길 여유가 충분치는 않은 사람이 됐고, 을왕리 노상에서 더위에 찌들어 먹는 조개구이 대신 시원한 실내 포차를 찾는 사람이 됐지만, 이따금 그 해 여름을 추억하며 감상에 젖는 사람임은 여전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어쩐지 서늘해지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 정도로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하니 말이다. 내 이름을 건 예술사에서 감히 르네상스였다고 칭할 수 있는 2013년의 여름. 이번 생에서 두 번은 돌아오지 않기에 조금이라도 기억이 선명할 수 있을때 회고한다. 서울시가 잠이 든 시간에, 나는 잠들지 않는 청춘을 거치고 있었다고. 영원을 약속했던 인연들이 영원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 시절은 정말이지 영원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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