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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로링 Nov 09. 2024

구원자

필멸자의 운명을 거슬러 당당히 나아가는 너 

 어렴풋이 보이는 밖은 아직 어둡고, 새벽과 아침의 경계를 알리는 시린 바람이 코 끝을 매만진다. 비로소 가을의 끝자락, 짙어진 단풍의 농도가 한계에 다다른 이 시기에 비로소 일찌감치 한 해는 마무리됐다. 연말을 떠올릴 때면 성탄의 분위기가 주는 설렘부터 떠올리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의 성료가 내게 한 해의 끝을 상징하는 때로 자리잡은 것 같다. 


 게임 회사의 비교적 자유로운 복장 규정에 감사하며 나는 하얀 색에 금색 로고가 수놓아진 자켓을 집어들었다. 출근해 내 자리에 앉자마자 지나가던 동료들이 다가와 '우승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장난어린 인사를 건네고, 그에 기꺼이 웃어 보며 시작하게 되는 하루. 누군가를 사랑하고 응원하게 된 일이 이렇게 내 매일을 기쁘게 만들어 준 적이 있었나. 이토록 내가 건강해지고 싶고, 힘을 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걸어가고 있는 내 생에 있어, 지금과 같이 내가 마음을 준 여러 사건의 조각들을 기록하겠다 마음먹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게임'과 '그'에게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게임 전문지에서 독자 인터뷰를 하러 왔을 정도로 원체 좋아했던 것이 게임이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여러 생존의 투쟁을 위해 가장 먼저 잊어버리게 된 것도 게임이었다. 


 장면은 2021년의 가을로 되돌아간다.

 작은 방 안에 텅 비어버린 마음으로 어떤 기대도 하고 있지 않은 내가 있다. 


 화면에서는 익숙지 않은 애니메이션이 재생되고 있다. 별 뜻 없이 그저 유명한 게임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길래 틀어 두었을 뿐이다. 지하 도시, 마법 공학, 대립과 애증, 그런 것들이 쉴 새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 웅크려 앉아 화면을 바라보던 눈은 점점 선명해진다. 무뎌져 있던 시선이 날카로워지고, 갈 곳을 헤매던 정신의 끝자락이 명료하게 흡수되기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파랗고 긴 머리를 한 여자애가 마지막 절망적인 간절함으로 신호탄을 쏘아 올렸을 때. 


 그 때 내 황량한 내면에서도 비로소 어둠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 울렸다.


 어떤 늦봄의 저녁, 나는 난생 처음 입어보는 유니폼을 입고 영화관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다. 어떤 여름, 생맥주를 들이키며 곧 있을 경기의 향방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눈다. 어떤 날은 열심히 운동하는 그를 보며 게으름과의 다툼에서 겨우 이겨 헬스장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바쁘다는 핑계를 넣어 두고 오랜만에 서걱거리는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는 때가 있다. 올림픽공원에서 길게 늘어선 줄 속 뙤약볕을 견디며 잔뜩 긴장한 내가 있다. 다시 눈물이 날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가을이 있다. 


 게임의 세계관이 신선한 충격이 된 건 자연스레 게임에 대한 애정으로, 그리고 그 게임의 이스포츠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졌다. 징크스의 신호탄이 내게 새로운 서막을 알렸다면, T1의 미드라이너 페이커 이상혁은 내가 선택한 내 삶의 두 번째 챕터가 됐다. 나의 뿌리였으나 한 때 잘려 나갔던 담대함, 믿음, 자아, 이상, 노력. 이런 것들을 고스란히 정점의 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그의 모습이 꼭 내게 손을 내민 구원자 같았다. 


 여러모로 울림을 주는 그의 모습을 영감 삼아 매일을 더 열심히 살아갈 자극을 얻었고, 그 자극들이 모여 만든 파동으로 나는 어릴 적 꿈이던 게임 회사로까지 올 수 있었다. 때로는 불사대마왕이라 불리는 그에게도 여러 번의 패배가 있다. 예기치 못한 부상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예기치 않은 부침을 자연히 받아들이고 단단히 부딪히거나 지혜롭게 선회하여 다시 가야 할 길을 가는 사람이 그다. 그 모습을 말미암아 나도 어떤 마음으로 나의 길을 지켜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늘 협곡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는 것. 나는 승리자이자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그를 존경하지만, 그보다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지교의 마음으로 그가 행복히 매 순간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크다. 사랑하는 모든 이의 실수나 과오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듯이, 그리고 기꺼이 그런 이들의 앞날을 축복할 수 있듯이, 이상혁에게도 같은 마음을 가진다. 어리거나 연차가 쌓인 이상혁, 완전하거나 불완전한 이상혁, 기뻐하거나 또는 자책하는 이상혁, 곧거나 때로 아픈 이상혁. 그 모든 모습들에 사랑과 존중을 보내는 것이 곧 나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2020년 여름, 지나가던 거리의 통유리창에 비친, 너무나 쓸쓸하고 겁먹은 내가 있다. 

 2024년 겨울, 가방을 들고 나서기 전 매무새를 정리하다 거울에 비친, 확신과 열의로 채워진 내가 있다. 


 되찾은 나다움과 새롭게 쌓아 가는 자아를 말미암아, 나 역시 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단단해지기로 결심한다. 그를 사랑하고 응원하기로 한 순간부터, 이 사랑은 그저 애달프기만 하다 못내 사라질 사의 찬미가 아니라 그저 기꺼이 필멸자의 운명들 속 단 하나의 불멸을 향해 나아가는 생의 찬미다. 

    


- 게임에 대한 글은 이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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