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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May 21. 2024

피가 모자라~

병실 이야기, 두 번째


https://brunch.co.kr/@dolkongempathy/124


앞선 글의 어르신과는 사뭇 다른 성향을 지니신 오늘의 주인공은, 이른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자녀 셋을 훌륭히 키워내신, 그야말로 강한 어머니의 표상이시다.

에너지가 넘치시는 이 어르신은  

아침 일찍 개 밥을 주러 가시다가 집 앞마당에서 미끄러져 엉덩이뼈를 크게 다치셨다고 한다.


어르신은 다른 분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으신데 모든 대화에 적극 참여하실 뿐만 아니라, 다른 어르신의 가족이 방문하는 날이면 가족들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시곤 했다.

게다가 의사 선생님의 회진 시간이나 간호사의 방문 시 다른 환자의 증상이나 불편함까지 직접 알려 주시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저 이가 밥을 통 못 먹는데 약 하나 주고 가시오." 혹은 "이 이는 계속 잠만 자는데 좀 깨워보소."하고 말이다. 

하지만 에너지 넘치는 어르신도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이 있다.


오전 10시쯤이면 어르신의 피검사를 위해 간호사가 방문한다.

피를 뽑고 있는 간호사에게 어르신은 투덜거리며 말씀하신다.

"내가 지난번에도 피를 많이 뽑아서~

안 그래도 피가 모자라는 데~

또 피를 뽑아간다~

내가 피가 모자라 죽겠다~"


이틀 뒤 같은 시간, 간호사가 방문해 피를 뽑으려 하자 어르신은 이전과 똑같이 간호사에게 투덜대신다.

"내가 엊그제도 피를 이만큼이나 빼냈는데 또 피를 뽑는다네~

이래 가지고 내 몸에 피가 남아나겠나~

내가 피가 모자라 죽지 싶다~"


늘 겪는 일이라는 듯 아무런 말이 없던 간호사가 무표정으로 한마디 던지는데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할머니, 피는 매일 만들어집니다."


끝난 줄 알았던 대화에 어르신께서 지지 않고 한 말씀 더 하신다.

"내가~(한숨을 크게 쉬시며)

피가 만들어지기 전에 피가 모자라 죽는다~

내가 아파서 죽는 게 아니라 피가 모자라 죽는다고~"


엄마는 5월 2일 퇴원하시어 우리 집으로 오셨다. 피가 모자랄까 걱정하시던 어르신은 지금쯤 퇴원하셨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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