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수술 후 지금의 병실로 들어오시고 한숨 돌리실 즈음, 옆 침대에 계신 어르신께서 나지막이 물어보신다.
무슨 수술을 한 건지, 어쩌다 다친 건지, 퇴원 예정일은 언제인지.
그리고는 어르신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신다.
어르신은 교통사고 후 지금의 이 자리에서 4개월을 보내셨다 한다.
뺑소니 교통사고였는데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만큼 큰 사고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는데, 사망자에서 생존자로 바뀌신 분이 바로 어르신이라는 것이었다.
사망자 확인을 위해 영안실에 들어오게 된 아드님이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엄마의 시신 아닌 시신을 만지고 주무르다 미약하게 뛰고 있는 맥박을 느꼈고, 의사를 불러 살아있음을 확인한 후 영안실에서 빼내어 큰 병원의 수술실로 옮겼다고 한다.
가족들의 원망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을 죽일뻔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장례를 치를 뻔한 어르신은 수차례의 대수술 후 다시 삶을 이어가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떻게 제대로 확인도 안 해보고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
4개월간의 긴 입원생활을 하신 어르신은 다음 주에 퇴원을 하신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런가 보다.
여태껏 그 힘들고도 긴 세월을 견뎌내신 분이, 다음 주 퇴원해도 된다는 말에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으셔서 애를 태우신다.
최대한 빨리 퇴원할 수 있도록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려 보라며 아들을 채근하셨다는데 그 소식이 궁금하여 종일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신다.
"전화하기로 했는데", "얘가 많이 바쁜가", "잊어버렸나" 연신 혼잣말을 하신다.
어르신의 눈길은 병실 내선전화에 머무른 지 오래다.
휴대폰은 사고로 산산조각이 났고 그동안 아들과는 병실에 있는 전화로 연락을 하셨다고 한다.
아들이 전화를 해야만 연락이 가능한 상황이다 보니 더욱 마음을 졸이시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일어서시더니 "그 사이 전화가 오면 어쩌나, 내가 그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하며 불안한 속내를 비추신다. 전화가 올까 봐 화장실에 가는 걸 계속 참으신 듯하다.
"제가 전화받으면 아드님께 다시 전화해 주시라고 말씀드릴게요." 했더니 고맙다는 말씀을 연거푸 하시며 화장실로 향하신다. 잠시 후 돌아온 어르신은 문을 열자마자 "전화 왔습니까?"라는 말씀부터 하신다. 볼 일을 보시고 얼마나 서두르셨을지 상상이 된다.
다시 침대에 자리를 잡으신 어르신은 여전히 전화만 바라보신다.
휴대폰을 꺼내 "아드님 전화번호를 기억하시면 연락해 보세요." 하고 건네 드리니 "그래도 됩니까?" 하시며 고맙다는 말씀을 세 번이나 하신다.
낯 선 번호라 안 받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바로 받아 아들과 통화를 하신다.
이제 안심이 되시는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휴대폰을 돌려주시며 "전화비 많이 나왔으면 어째요?" 하며 마음을 쓰신다. 무료라고 말씀을 드려도 그럴 리가 있냐며 계속 미안해하신다.
맑고 순수한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에 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지쳐있는 내게 그렇게 작은 행복이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