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콩마음 Jun 24. 2024

함께라서 행복한 날

오리가족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남편과 저녁 산책을 나섰다.




무더운 여름, 하천을 따라 걷는 산책길에 잡초가 키만큼 자라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깨끗하게 이발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무더위 속에 제초 작업을 하셨나 보다. 얼마나 덥고 지치셨을지,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먼발치에서 환호성과 탄식이 울려 퍼졌다.

그 자리에는 산책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모여있었는데, 그들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우리도 동참하기로 했다. 그곳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리부부를 종종 만나게 된다.

두 마리가 늘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언제 알을 낳아 부화까지 했는지 대가족을 이루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우리 부부는 어느새 감탄을 연발하는 그들과 하나 되어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하천을 자세히 보면 일정치 않은 간격으로 오르막이 있다. 그리고 그 오르막은 바위 하나만큼의 격차가 있어 작은 폭포와도 같은 물의 흐름이 있다.

그날의 상황을 계단으로 비유하여 설명하자면, 계단 위쪽의 잔잔한 물 위에  어미 오리와 일곱 마리의 새끼 오리가 떠 있고, 계단 아래 즉 작은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에 여덟 번째 새끼 오리가 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자신만이 낙오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지 엄마가 있는 계단 위를 향하여 쉬지 않고 점프를 시도했다.

유난히 작은 몸집의 새끼 오리는 작은 폭포를 거슬러 수차례의 점프를 감행해 보지만, 거센 물살은 아랑곳하지 않고 새끼 오리를 내동댕이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연이은 탄식을 쏟아냈다. 어미 오리는 아래에 있는 새끼 오리의 모습을 보고 안절부절못하는 듯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수차례의 도전에 실패한 새끼 오리가 방향을 바꾼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하천을 가로질러 물가 쪽으로 헤엄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새끼 오리가 다다른 그곳은 물의 흐름이 거의 없는 바위 아래였다.

이제 새끼 오리가 그 바위 위로 뛰어오른다. 우리는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새끼오리가 뛰어오르는 순간에 맞춰 "옳지!", "그래!", "얍!", "으쌰!" 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응원을 했다. 소리는 각각이었지만 우리들은 한마음이었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바위를 뛰어올라 엄마 품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번번이 미약하게 힘이 모자라 떨어지고 만다.

그 모습을 내내 지켜보고 있던 어미 오리가 마침내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자 함께 있던 일곱 마리 중 네 마리의 새끼 오리가 어미를 따라 함께 뛰어내렸다. 여기저기서 "역시 엄마다!" 하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래, 엄마구나.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홀로 남아 뛰어오르기를 반복했던, 그러나 안타깝게 번번이 실패했던, 그 여덟 번째 새끼 오리가 마침내 바위를 뛰어넘어 계단 위쪽으로 올라간 것이 아닌가? 하필이면 어미오리가 뛰어내려 간 그 순간에 말이다.

새끼 오리의 성공에 함성이 터져 나왔고 우리 모두는 너나없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짧디 짧았다. 또다시 엇갈린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래로 내려간 어미와 네 마리의 새끼오리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한편 간신히 성공해 올라간 그 여덟 번째 새끼 오리의 눈에 그토록 보고팠던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돌던 그 녀석이 아래에 있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

우리들은 한숨 섞인, 크고도 긴 호흡을 내뱉었다. 이게 뭐란 말인가.

다시 도돌이표였다.


이제 위에 세 마리, 아래에 어미오리와 새끼오리 다섯 마리다.

이 와중에 위에 있는 세 마리는 이 상황을 의식하지 못한 채 아니 의식하지 않은 채 멀찌감치 떨어져 유유히 헤엄치며 놀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은 그냥 거기 그대로 있는 거야, 알았지?'


어미오리가 모든 상황을 확인했는지, 다시금 제일 먼저 위를 향해 뛰어올랐다. 뒤이어 네 마리의 새끼오리도 가뿐히 뛰어올라 엄마 곁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여덟 번째 작은 몸집의 새끼오리만이 또다시 남겨졌다.

주먹을 불끈 쥔 우리는 다 함께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차례의 실패를 경험했던 그 여덟 번째 새끼오리가 단 한 번에 엄마 곁으로 올라간 것이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엔 크게 소름이 돋았다. 그래, 가족이구나.


어미를 선두로 여덟 마리의 새끼 오리가 대열을 갖추고 뒤를 따랐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고 사랑스럽던지..


오리가족이 그렇게 떠나가자 우리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우리들은 산책길을 따라 각자의 걸음을 걸어갔다.

오리가족의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이야기는 함께 산책 나온 가족 간의 대화로 이어져 끝날 줄을 몰랐다.


오리 가족의 행복한 결말에,

행복한 산책을 한 우리는,

그 커다란 행복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 Unsplash의 Bob Brewer


어미 오리 한 마리와 여덟 마리의 새끼 오리! 

마침 딱 맞는 사진을 발견했다! 야호~








매거진의 이전글 붕어빵 부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