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퇴사 기폭제
요약 : 대책 없이 퇴사함
팀장이 아무리 나를 방치해도, 회사의 비전이 아무리 별로라 해도 곧바로 퇴사할 용기는 없었다.
첫 회사에서 퇴사를 고민 중이거나, 첫 회사에서 퇴사해본 경험을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 퇴사도 그렇다.
퇴사를 망설인 가장 큰 이유는 여기보다 못한 회사로 이직할까 봐였다.
그건 상상만 해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여전히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 회사에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더라도 퇴사 후 무엇을 할지, 어디로 이직할지에 대한 계획이 필요했다.
그때 한 친구가 스쳐 지나가듯 '세무사 시험을 공부해보는 건 어때?'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무사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세무사 공부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어서 물어볼 사람이 필요했다.
마침 맞은편에 앉아있는, 세무사 공부를 하다 온 세무팀 동기 언니가 보였다. 바로 조언을 구했다.
언니는 오래 고민하지도 않고 그 길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합격하기까지 적어도 2~3년은 걸리는 시험인데 내 나이 스물넷이니 빨리 합격해도 스물일곱, 만약 떨어진다면 20대 후반까지 수험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 간절했던 목표는 아니었기에 언니의 말을 듣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
두 번째 선택지는 공기업이었다. 신의 직장 공기업. 남들 다 가는데 어떻게 가는지 나만 모르겠는 공기업. 취업 준비할 때 전부 서류에서 떨어진 공기업을 다시 준비해볼까 고민이 되었다. 하 그럼 컴활부터 준비해야 하나.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사를 했기 때문에 추후 보완서류로 졸업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졸업증명서를 출력하러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웬걸? "졸업유예"라는 네 글자가 보였다.
분명 졸업학점을 정확히 계산해서 막학기 수강신청을 한 건데 왜 졸업 유예지?
아뿔싸... 계산을 잘못했다. 딱 1학점이 모자랐다.
짧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 아득한 정신을 붙잡고 회사 인사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1학점짜리 과목을 추가로 수강해야 하며 졸업도 6개월 후로 미뤄졌다고 말씀드렸다.
인사팀에서는 회사는 계속 다니게 해 줄 테니 앞으로 6개월 동안은 삭감된 수습 월급을 주겠다고 했다. 2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에서 추가 삭감이라니, 그건 눈물 나게 적은 금액이었다.
오래 다니고 싶지 않은 회사에서, 당장 일 년 동안은 일도 배우지 못할 텐데, 반년은 눈물 나는 월급을 받으며 학교 공부도 병행해야 했다. 답은 하나였다. 아니, 어쩌면 답은 정해져 있었고 그럴듯한 명분을 찾아 헤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명분은 만들고 대책은 만들지 않은 상태로 퇴사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