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오네오 Nov 11. 2022

압도적 일등에서 압도적 꼴찌로

설레지 않기, 실망도 않기


엄마 우리 레인에서 내가 일등인데, 꼴찌를 따라잡아 추월해 버려서 윗반으로 쫓겨났어."

 

내용상으론 승급했단 소린데 뭘 저렇게 얘기할까?

여름 끝에 운동을 좀 시켜야겠다 싶어 동네 어린이 수영 선수반에 등록시켜놓고 불안한 마음으로 수영장 전망대에서 지켜본 아이의 얼굴은 약속된 두 시간 중 삼십 분 운동시간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폭주한 연탄불처럼 시뻘게져 있었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부담스러우신지 전망대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나에게 아이가 원래 잘 빨개지는 편인가요? 하고  물으러 올 정도였다. 7시에 시작해 9시에 끝난 아이를 수영장에서 데려 나와 고기를 사 먹이며 이게 맞나 고민하던 게 딱 두 달 전이다. 운동하느라 얼굴이 달아올라 터질 것 같은 아이에게 한 달만 해 보고 못 버티겠으면 그만두자고 달래며 차돌박이를 구워 먹였었는데 승급이라니 대견타고 해야 하나 생각하던 중 또 한 마디를 더 얹는다.


엄마 이전 반에선 내가 압도적 일등이었는데, 올라오니까 내가 압도적 꼴찌야 ~


수영 강습받으면서 뒷사람들 교통체증 걸리게 만드는 존재가 될까봐 악착같이 도망 다녀 본 사람만이 안다. 그 압도적 꼴찌라는 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모르긴 하지만 울 딸은 다시 달궈진 연탄불 같은 얼굴을 해가지고 헐떡거리고 다니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넌 압도적 꼴찌가 좋아? 압도적 일등이 좋아?

딸의 대답은 명쾌하다.


당연히 압도적 일등이 낫지...


그럼 그냥 다시 이전 반으로 돌아가~ 너무 힘들잖아. 굳이 그렇게 힘들게 운동할 필요가 있을까? 이전반에서 슬렁슬렁해서 네가 꼴찌 따라잡지 않으면 그반에서 쫓겨나진 않을 거야. 내 제안에 대한 딸의 대답은...

 아... 그건... 좀...이었다.

그러고 나서 신경이 쓰여 매번 운동 갈 때마다 힘든지 물어보는데 아이는 매번 서너 바퀴는 증가된 횟수를 얘기하며 운동량을 자랑한다. 그제는 서른여덟, 오늘은 마흔 두 바퀴를 도셨단다.


버틸만하니 버티는 거겠지만 그 가장 느린 구성원으로 운동을 한다는 게 내 입장에선 너무 버겁던데 저 녀석은 나 안 닮아 악착같은 면이 있나 보다 살짝 설레려던 순간..


울 딸 수학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온다.


어머니~ 가은이가 이주일 내내 수학 숙제를 잘 안 해오네요. 무슨 힘들 일이 있을까요?


설레긴 개뿔... 다시 한번 되뇐다.


설렘도 금물! 실망도 금물!


작가의 이전글 이만하면 감사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