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사태로 국민들의 탄핵 시위가 빗발치고 있다. 2002 월드컵 응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촛불 시위, 기타 이 나라에 있어온 수많은 집단행동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 국민들이 참으로 잘 뭉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것이 즐거운 일이든, 슬픈 일이든, 화가 나는 일이든 말이다. 이번 시위 역시 마찬가지였고 많은 국민들이 모여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MZ라 불리는 20~30대(대다수가 여성들이었다. 본래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스스로 연대를 잘한다. 물론 연대책임과는 무관하다)가 대거 참여하면서 이전의 시위들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시위가 펼쳐진 부분이었다. 탄핵 시위장은 응원봉을 든 시민들의 흥겨움과 아이돌 노랫소리로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곳곳에서 웬 이름 모를 단체들의 깃발이 등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국은 이를 놓치지 않고 'K-시위'라는 타이틀을 내걸며 작금의 탄핵 시위를 자랑스레 떠들어댔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흥겨운 시위와 그곳을 스스로 청소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비추며 외신도 흥겹고 질서 정연한 신세대 K- 평화시위에 주목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 이 뉴스는 보여주기식 가짜뉴스에 불과했다.
시위장을 청소하던 시민의 모습은 일부였으며, 남의 쓰레기를 청소한다는 것은 그만큼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 된다. 또 애초에 자기가 가져온 쓰레기를 치우고 가는 것은 당연한 행동인데 이것을 마치 질서 정연한 한국 시위현장인양 보도하는 꼴이 우스웠다. 더해서 시위장 근처의 한 호텔 화장실에 좌표가 찍히며 수많은 시위자들이 그곳을 사용하게 되자, 호텔 관계자는 호텔에 투숙 중인 고객들에게 생길 피해를 우려해 외부인의 사용을 금했다. 그러자 수많은 이들이 이 호텔의 별점을 테러하기 시작했고 결국에 그 호텔은 반강제적으로 화장실을 다시 오픈하게 되었다(시민독재 대중독재가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 앞전 글에서 다뤘듯이 이는 한국인들의 마인드가 후진국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할 뿐, K-선진의식에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진 출처 : 인사이트
더욱 눈살 찌푸려지는 것은 MZ세대가 보여준 그놈의 'K-시위'였다. 어떤 정당을 선호하고 어떤 시위에 어떻게 참여하든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자 권리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흥겨움 가득한 콘서트 시위는 아무리 봐도 깨시민 코스프레와 도덕적 우월감을 핑계로 내건, 도파민 터지는 집단 문화를 추구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나라에 대한 근심 걱정이나 정치적 의견보다, 집단적으로 물어뜯고 책임 없이 신나게 패버릴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고 그것이 마침 터진 계엄이었고 즐길 무대가 시위였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즐기고 떠들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축제의 명분을 찾은 것이 신났을 뿐이었다. 장담컨대 이러다 누군가 죽거나 책임을 지게 될 일이 터지게 되면,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고 사라질 것이다. 책임 없는 쾌락을 원하는 냄비근성을 이들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아이돌 음악과 응원봉도 모자라, 각종 어처구니없는 깃발들(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동식물 쓰다듬기 연구회, 전국쿼카보호협회 등)을 들고 나와 장난식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모습은 절로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와 외신이 주목하는 K-시위? 그래 이런 어처구니없는 탄핵 시위에 주목을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계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시위장에 자식들을 데려와 함께 탄핵을 외치게 만든 부모들도 보였는데, 이게 무슨 월드컵 응원장도 아니고 뭐 좋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흥겨운 축제인양 데려와 가족이 함께 시위에 참여하는 모습은.. 참으로 꼴불견이었다.
사진 출처 : 조선일보
동덕여대 시위자들은 대학이 남녀공학에 대해 거론하고 의견을 검토해 보겠다는 식의 학교입장만으로 분노를 터뜨리며 온갖 범죄와 패악질을 일삼았다. 자칭 민주동덕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민주주의의 퇴보다' '대학은 민주적 결정을 하라'던 이들은,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다수의 힘으로 본인들의 의사표현을 서슴지 않고 있다.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스스로 그것을 행사하는 제도로,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칙 등을 기본원리로 한다. 그러나 또한 민주주의는 민주적 결정으로 어떤 결과가 도출되었다고 해도 소수의 의견 역시 존중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시위에 앞장서고 이것에 가담한 이들은 시위에 가담치 않았던 소수의 사람들(수업을 듣고 싶었던 사람, 취업이 필요했던 사람, 졸업생, 직업박람회에 참여한 기업)에게 큰 피해를 끼쳤으며, 시위를 참여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집단몰이를 통해 끌어들였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시위가 점차 거세지던 도중, 대학이 피해배상으로 50억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제시하자 시위를 하던 이들은 놀라 자빠져 한동안 조용해지고 내부분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결과적으로 도리어 대학을 상대로 학생들을 겁박하지 말라는 주장을 꺼내 들었다. 단체적 책임 없는 쾌락에 너도나도 던지던 돌멩이가, 커다란 바위 같은 책임으로 돌아오자, 지레 겁먹고 여린 척을 하더니 이내 책임회피를 위한 정신승리를 꺼내든 것이다.
잘 뭉치고 잘 노는 한국인들
사진 출처 : 클래스유
한국인들은 잘 논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잘 논다의 기준에는 반드시 다수와 집단이 포함되어야 한다. 집단이 끌어가는 주류문화(소위 인싸문화)에 소속되어 있어야만 잘 노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단이 추구하는 외향성, 술, 흥겨움, 노래 따위가 한국에서는 주류(인싸)가 된다. 반면에 타국가에서 잘 논다는 기준은 꼭 집단으로 치부되지 않으며, 술과 여흥이 꼭 포함되지도 않는다. 개인이 추구하는 재미를 즐기고, 술 없이 춤과 노래를 즐기기도 하며, 맥주 한 병만으로 즐기기도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한국인들은 흩어지면 찐따가 되고, 그러면 낙오되고, 결국 사회적으로 죽는 줄 안다. 사실 이러한 사상은 집단적 성향을 가진 동양권 문화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상대적으로 생산이 쉬웠던 밀을 주요 식량으로 삼았던 서양과 달리 많은 수의 사회적 협력이 요구돼야 재배가 가능한쌀을 주요 식량으로 삼았던 동양은 국가, 사회, 가정, 작게는 가족까지 단체와 집단적 성향을 띠게 될 수밖에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유독 개인적인 상황임에도 '우리' '너희'같은 집단적 단어가 많이 쓰이는 이유이며, 가부장적 문화가 팽배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 ㅍㅍㅅ
그러나 왜 유독 한국이 동양권 중에서도 더욱 집단적인 성격을 띠는 걸까? 그것은 눈치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앞전 글에서 언급한 부분과도 연결되는데, 한국인은 눈치를 보면서도 눈치를 안 보기 때문이다. 이게 뭔 말인가 싶겠지만 중국과 일본을 비교해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중국인들은 눈치도 안 보고 수치심도 없는 반면, 일본인들은 눈치도 보고 수치도 살핀다. 쉽게 말해 중국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에 딱히 관심을 안 두지만, 일본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한다. 일본을 포함하여 많은 선진국들이 서로 조심하고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유는 '결투'라는 문화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결투신청에 응하지 않으면 명예가 훼손되어 사회적 죽임을 당했기에 목숨이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서로 총을 겨누고 발사하는 결투에 응해야 했고, 일본 역시 사무라이가 활동하던 당시 총 대신 칼로 결투에 응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서로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타인과 시비가 붙지 않도록 조심하고 매너 있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한국 얘기로 돌아와서, 한국인이 눈치를 보면서도 눈치를 안 본다는 말은, 외적인 것에 눈치를 보지만 딱히 수치심이 없어 내적인 것에는 눈치를 안 본다는 뜻이다. 중국도 한국도, 일상에서 총이나 칼을 뽑아 목숨이 위태로워질 일이 없다 보니, 겉으로 약해 보이고 없어 보이는 사람을 쉽게 깔보기도 하고 매너도 없으며 격투기나 음악보다 육안으로 쉽게 보이는 취미인 헬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개인적인 생각이며, 나 역시 헬스를 하고 있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인들이 관계나 인간, 내면에 깃든 능력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이유다.
한국의 장점이 이제는 한국의 머리를 겨누고 있다 / 사진 출처 : 이제석 광고연구소
물론 이런 집단이 가져오는 이점도 있다. 사회나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집단의식과 문화가 힘이 되어, 다소 쉽게 단결력이 일어나 공동의 목표가 추구되는 점이다. 새마을운동, 한강의 기적 등이 가능했던 이유다.
허나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힘이, 이제는 한국을 무너뜨리고 있다. 겉으로 보이던 이점이 끝을 보이고, 속에서 썩어왔던 단점이 더 이상 감출 수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개인의 개성이 무시되고 폄하되며, 학연 지연 혈연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시민독재와 대중독재가 더욱 쉽게 선동되어 일어난다.
집회, 시위를 포함한 집단행동은 민주국가에 사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다. 그러나 생각 없이 동조되어, 그저 재미로, 책임감은 뒷전인 채로 쾌락만을 쫓고 일을 저지른다면, 그것이 진정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미래를 위하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