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싫어하는 나는 유일한 '이완'(자유)과 '쉼'의 시간을 주로 온천욕을 하거나 가벼운 산책으로 즐긴다. 나이가 들어가니 혈액순환도 그렇고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운동을 싫어하니까(젊어서는 등산을 참 좋아했고, 이 영화를 본 지 약 2년 후에는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궁여지책으로 겨우 찾아낸 방법이긴 하다. 한 달이면 2-4번 정도 온천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주일에 3-4번 정도는 수원중앙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면서 가볍게 팔달산에 오른다. 그래도 내게 딱 맞는 방법으로 이만큼의 '이완'(자유)과 '쉼'의 시공간이 주어져서 감사하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이사 올 때마다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온천이기도 하다. 마음에 딱 맞는 온천을 찾기란 쉽지 않다. 주변의 온천을 한 10여 군데는 다녀본 후에야 단골이 된 온천이 바로 북수원온천이다. 좋은 점이 참 많다. 우선 온천물이 좋고, 불한증막이 땀빼기 좋고, 영화상영을 해주어 좋다.
오늘은 작정하고 가서 영화를 관람한다. 개봉 시기는 지난 것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영화 상영하는 곳이 소극장 크기라 호젓하게 사색하며 볼 수 있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휴 글래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마이클 푼케가 쓴 소설 「레버넌트」가 원작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휴의 실화를 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감동적인 한 편의 대작을 탄생시킨다.
실화는 글라스 휴가 1823년 출생한 모험가로 모피회사의 사냥꾼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서부지역을 사냥하던 중 큰 곰을 만나서 심한 부상을 입게 되는데, 동료에게 버림받기까지 한다. 소설도 영화도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극사실주의를 표현하려고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빛과 불빛만을 이용해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화면의 색감이 주는 자연스러움과 신비로움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19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이 무대인데 원주민과 이주민들 간의 갈등도 엿볼 수 있고, 휴의 아들 혼혈아 호크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휴와 원주민 여인과의 사랑도 뭉클하게 다가온다.
"당신은 나무 밑에 서 있을 거예요. 그러면 바람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듣겠죠. 그러나 나무의 몸통은 흔들리지 않아요."
휴가 사선을 넘나들 때마다 이미 곁에 없는 휴의 사랑 원주민 여인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휴는 새 힘을 얻고 죽음 직전의 몸뚱어리를 일으켜 얼음바닥을 기어서 생명을 살려나간다.
휴와 원주민 여인, 두 사람의 사랑의 씨앗인 아들 호크가 죽어갈 때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들의 몸 위에 아버지 자신의 몸을 포개며 휴가 속삭인다.
"아들아, 숨 쉬는 걸 잊지 마. 내가 끝까지 네 곁에 있을 게."
그러나 끝내 아들은 죽고 만다. 그 고통과 슬픔을 안고 휴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혹한의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 대장 휴의 아들을 죽이고, 부상당한 휴를 산 채로 얼음 흙구덩이에 묻어버리고,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떠나는 인간 존 피츠 제넬드(톰 하디)의 행동은 어쩌면 오늘날 현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곧바로 우리들의 삶은 아닐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육중한 곰에게 공격을 당해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남자 휴가 끝끝내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생명을 얻어내는 이야기! 천신만고 끝에, 얼음강물과 폭포수에 떠밀리기도 하고, 낭떠러지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한의 추위 속에서 훔쳐서 타던 말이 죽자 그 내장을 파내고 그 몸속에서 알몸으로 잠을 자기도 하면서, 원주민들의 치열한 습격도 받으면서도, 광활한 300km나 되는 설원을 맨몸으로 걸어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가치관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고, 삶의 자세를 새롭게 결단해 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글라스 휴 같은 이만한 의지력이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당당하게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