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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n 30. 2024

11. 모녀가 한꺼번에 무슨 날벼락이니?

순진은 겨울방학 중에도 보충수업 때문에 거의 매일 학교에 나갔다. 11월에 대입시험을 치른 3학년들은 실질적인 방학에 들어갔고, 1학년과 2학년들은 초긴장상태로 입시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교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바로 대학입시가 눈앞에 닥쳐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진은 방학 동안에 학교에  가는 게 싫었다. 공부에 그다지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2학년이 되면 문과, 이과가 결정되고, 3학년이 되면 이 중에서 또 예체능반이 몇 개 반  더 생겨났다. 순진은 2학년 문과를 지원했지만, 1학년 때부터 미술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3학년이 되면 예체능반을 신청할 생각이었다.


"나에게는 보충수업 같은 게 필요 없는데, 왜 맨날 학교에 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네. 완전 시간 낭비잖아. 그럴 시간 있으면 그림을 한 장이라도 더 그려봐야 하는 거 아니야?"

순진은 배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지만 배려는 교육대학에 진학해서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면서 열심히 보충수업을 하고 있었다.

"우린 모두 다 되고 싶은 게 있으니까 학교방침에 따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미술을 전공한다고 해도 공부를 잘하면 대학입학이 훨씬 쉬울 테니까. 강민오빠가 그러는데, 좋은 대학은 실기보다 학과 성적 비중이 높대. S대학을 빼고는 대부분 다 그래서 공부 잘하면 예술대학도 들어가기가 더 쉽대."

배려는 순진을 설득해서 같은 문과반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말 크리스마스 연휴 주간이 되자 학교 보충 수업도 잠시 쉬었다. 주말 지나 월요일이 크리스마스여서 연거푸 3일을 쉬는 셈이었다.

"나 이번 토요일에 엄마랑 큰 병원 가서 검진받을 건데 너도 같이 가주면 안 될까? 간 김에 나도 건강검진 한 번 받아보려고.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런 거 안 받아보고도 잘 살아왔는데, 엄마가 아프고 보니까 다른 사람 일 같지가 않네."


순진은 엄마 이야기를 배려에게만 했었다. 배려는 단짝친구이니까 말할 수 있다. 엄마가 박기주 목사님 은퇴 후에 함께 산다면서 그때 쓸 물건들을 교회로 배달시킨 일이며, 그 일로 교회에 다녀온 일이며, 그 후 엄마를 잘 관찰해 보니 엄마가 집에서도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 등이었다. 배려는 신중하게 듣고 참 안 됐다고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었다.

"그런데, 순진이, 너, 너도 좀 많이 이상한 거 알아? 이번에 병원 간 김에 너도 정검사 함 받아 봐. 그날 내가 따라가 줄게."

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토요일 아침 오전 9시였다. 이 목사님이 순진의 집 앞으로 차를 몰고 왔다. 순진과 순진 엄마, 미리 순진의 집에 와 있던 배려가 차에 탔다. 배려는 앞자리에 타고 순진과 순진 엄마는 뒷자리에 탔다.


"저기 우리 교인 중 안수집사님 한 분이 Y대학병원 행정실에 근무하시거든요. 그래서 부탁을 드렸더니 호연 박사 의사분께 예약을 잡아주셨어요. 아주 유능하신 의사라서 주말에 예약 잡기가 쉽지 않은 분인데요. 교인 좋다는 게 실감이 나네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둘 다 편안하게 검진받으면 될 것 같네요."

이 목사님은 능숙하게 운전하면서 말했다.


30여 분 후에 Y병원 주차장에 도착해서 로비 안내 데스크로 들어갔다. 이름을 대자 3층 안내데스크로 올라가라고 했다.

"저기서 옷 갈아입으시고 스레이실에서 사진 찍으세요."

순진과 순진엄마는 여간호사가 가리키는 대로 들어갔다가 나다.


"자, 이리 오세요."

여간호사가 '최호연 의사'라고 쓰인 방을 열고 들어다.

"미라 씨와 진순분  학생입니다."

순진 엄마와 순진이 함께 들어갔다.

"이런 경무는 흔치 않은데 엄마와 딸 둘 다 증상이 있네요. 혹시 '망상장애'라고 들어보셨나요? 최근에 많이 발는 병인데, 뇌에서 어느 일정 부분에서 정보를 과다 방출하는 경우예요."

최호연 의사의 말을 듣고 있던 순진엄마가 발끈해서 일어섰다.

"아, 무슨 그런 희한한 병이 다 있요?"

"화 먼저 내지 마시고 앉아 보세요."

최호연 박사는 손을 펼쳐으라는 시늉을 했다. 순진은 엄마가 앉을 수 있도록 일어나서 도왔다.

"순진 학생의 경우는 특이하네요. 보통 이 병은 성인이 되어야 생기는데, 18세 청소년 시기에 발병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최호연 박사는 순진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그럼 하루에 얼마 은 사람이 이곳에 오나요?"

순진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다.

"요즘은 하루에 거의 30여 명 정도 같은 병으로 이곳에 찾아옵니다. 주로 유명인사들이 자기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도처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자기를 감시한다고, 무서워서 못 살겠다고 하죠. 경찰에 신고도 많이 들어갑니다. 유명 연예인, 정치인, 목사님, 신부님, 교장 선생님, 총장, 회사 사장 등 그 대상도 아주 다양합니다.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는 완화되지만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완치는 어렵습니다. 약을 투여하면서 병원 정신과 도움은 필수이고요.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받아 들고 순진과 순진엄마가 1층 로비로 나오자 이 목사님과 배려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 타셔요. 댁으로 모셔다 드릴게요."

이 목사님 운전하시는 차 안에서 순진은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비교적 간단하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배려는 울상을 지으며 몇 번이고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온몸으로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를 어쩌니? 모녀가 한꺼번에 무슨 날벼락이니?"

배려는 연신 몸을 떨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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