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교장 선생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미국의 백화점왕 존 워너메이커는 체신부장관이 된 후에도 주일학교 선생님을 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요. 아마도 W 교장 선생님이 주일학교 교사를 한 이유하고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나의 본업은 주일학교 교사이기에 체신부장관이 되었어도 계속해서 주일에는 아이들과 만납니다."
50년 동안 주일학교 선생님을 한 존 워너메이커가 이렇게 말했다면, W 교장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을 거예요.
"나의 본업은 주일학교 교사이기에 교장 선생님이지만, 주일에는 아이들을 만나러 교회에 갑니다."
W 교장 선생님과 저는 교회학교 초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었지요. 아침에 조회를 할 때 교장 선생님은 항상 앞에 앉으셨어요. 전도사님 바로 왼쪽 교사들이 길게 두 줄로 앉는 맨 앞자리였지요. 그런데 교장 선생님 왼쪽 옆자리는 꼭 한 자리가 비어 있었어요. 사림들이 '교장 선생님' 하면 왠지 조금은 어려워서 그런 듯해요. 우리 중에 초등학교를 안 나온 사람은 없으니까요.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교장 선생님은 늘 단상에서 훈시할 때나 뵙는 분이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기에는 뭔가 부담이 되는 존재였다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저는 교장 선생님 옆에 비어있는 그 자리에 앉았어요. 가끔은 커피도 타다 드리고요. 때로는 교장 선생님이 저에게 커피를 타다 주실 때도 있었고요. 그 덕분에 교장 선생님과 저는 꽤 친했어요.
어느 날 W 교장 선생님이 저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우리 학교에 논술반을 만들려고 하는데 서 선생님이 와서 가르쳐주면 좋을 것 같은 데요."
저는 선뜻 대답하지는 못했어요. 그때 그룹지도 하는 애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더군다나 저는 신대원에 가고 싶은 마음에 성경과 텝스 시험 준비를 시작한 상태였어요.
"이번 학기에는 힘들고, 가을 학기부터 갈 수 있는지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가을 학기가 되었어요.
"우리 학교 논술반은 꼭 서 선생님 맡아 주세요."
W 교장 선생님이 한 번 더 제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수락을 하고, 일단 그룹 지도하는 아이들을 졸업시켜야 했어요. 몇 년씩 가르친 애들이라서 글도 제법 잘 썼고 독서논술도 잘했기에 저는 그룹지도를 그만두고 보다 안정적인 초등학교로 가서 가르치기로 한 거지요.
제가 이력서를 내니까 학교 선생님들이 한 마디씩 했다지요?
"교장 선생님은 어디서 이런 훌륭한(?) 선생님을 뽑으셨어요?"
제가 조금 자유분방한 편이라서 정규 출퇴근하는 직장이 잘 맞지 않아서 논술 그룹지도를 꽤 오래 했었거든요. 그러고 보니까 IQ 150 짜리 쌍둥이 덕분에 제가 인근학교에서는 논술계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저는 그룹으로 논술을 가르치던 아이들을 모두 졸업시키고(꼭 가르쳐야 할 것들을 서둘러서 가르쳤다는 의미에서 '졸업'이란 말을 쓴 거예요.), W 교장 선생님이 계시는 S초등학교로 갔어요.
그리고 W 교장선생님 덕분에 제가 얼마나 많은 배려와 혜택을 입었는지 모르겠어요. 시간표를 짤 때도 언제나 담당교사가 제가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먼저 물어보았고, 하루에 저학년반, 고학년반을 다 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또 논술 수강을 접수하는 기간에는 교장 선생님이 직접 육성으로 방송을 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논술은 꼭 공부해야 한다. 많이들 신청해라."라고 독려해 주셨어요. 거기다가 수업 갈 때마다 교장실에 들러서 인사를 하면 이따 끝나고 저녁 먹고 가라고 하셨지요. 교장실에서 사주신 짜장면과 탕수육, 백반, 만둣국이며, 근처 맛집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맛 보여 주신 샤부샤부와 모둠회도 잊을 수 없어요.
저는 W 교장선생님이 계시는 S초등학교에서 특별혜택(?)을 받으면서 논술을 가르치고, 틈틈이 신대원 준비를 했어요. 그곳에서의 생활이 좋았기 때문에 신대원에 곧 합격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요.
"저는 신학을 한 후에 좋은 글을 쓸 거라서 빨리 합격을 안 해도 괜찮아요."
당시에 신대원 경쟁률이 높아서 다들 좋은 직장도 그만두고 신학교에 미리 가서 성경과 텝스 특강을 들으면서 마치 대학입시생들처럼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는 마당에 저의 이런 태도는 신대원 입시생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불경스러운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한 2년 정도 꿈같은 시간들이 지나갔어요. 얼마 후 W 교장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어요. 작별인사를 해야 했지요. 주일마다 교회학교에서는 계속 볼 수가 있었지만요. 고맙고 아쉬운 마음에 비타민 영양제를 사가지고 주일에 가져갔어요. 그동안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하다는 긴 손 편지와 함께요. 그걸 받으시고는 W교장선생님이 더 감사하다고 하셨지요. 그리고는 꼭 스승의 날, 크리스마스날, 한 해의 끝에는 교장선생님도 짤막하게 손 편지를 써서 저에게 선물과 함께 주셨지요.
저는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 담임 목사님과 교구 목사님, 교회학교 전도사님, 그리고 우리 아이들 학교와 교회 선생님들, 전도사님들에게는 빠뜨리지 않고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손 편지와 함께 드렸는데, 그때 W 교장 선생님도 꼭 챙겼지요.
어느 날 W 교장 선생님께 전화가 왔어요.
"이번에 새로 전근 간 M초등학교에도 논술반을 개설하려고 하는데 서 선생님이 와서 가르쳐 줄 수 있나요?"
저는 잠시 망설였어요. 저는 그때 신대원에 진학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기에 합격을 하면 지금 하고 있는 S초등학교 논술반도 그만 둘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대답했지요.
"제가 실은 신대원 시험을 쳤어요. 합격하면 초등학교에서 논술 가르치는 게 어렵고요, 만일 떨어지면 그때 연락드릴 게요."
저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시혐을 쳤기 때문에 떨어지면 다시는 신대원 시혐을 치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해에 신대원에 붙었네요. 경쟁률이 꽤나 높았는 데도 저는 제가 쓴 답안을 수험표 뒤에 적어왔기에 자체적으로 채점해 본 결과 합격선보다 약 10점 가량 높은 점수를 받고 아주 당당하게 합격을 했어요.
저는 약 3년 간 S초등학교에서 논술지도를 하고 신대원 입시도 세 번 친 후에 합격했어요. 논술지도를 병행할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그만두기로 했지요. 신대원에 입학하던 해 2월 말 주까지 논술수업을 했어요. 그런데 입학하자마자 3월 첫 주부터는 또 중고등부 사역이 결정되었거든요. 우연히 낸 이력서가 저를 또 계속 일하게 한 것이지요.
W 교장 선생님을 추억하면서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행복감이 밀려오네요. 제가 목사 안수를 받고 신앙수필집 냈을 때도 책에 사인을 하고 작은 선물도 가지고 교장 선생님을 만나러 갔어요. 우리가 교회에서 초등부 교사로 섬길 때 그 부서를 섬기시던 목사님과 연락해서 함께요. 교장 선생님은 또 다른 초등학교에 계셨었지요. 왕십리에 있는 H초등학교였네요. 그때도 독서 기록이 가능한 일기장과 함께 앞장에는 손으로 쓰신 사인이 있었지요. 꼬막요리를 잘하는 집이라면서 우리 둘을 데리고 가서 저녁식사로 융숭한 대접을 해주셨고요.
지금은 정년퇴임을 하셨겠네요. 여전히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고 계시죠? 그건 정년이 없으니까요. 지금은 W 교장 선생님 옆자리에 누가 앉는 지가 괜히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