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 달 만에 여행을 간다. 오른쪽 팔꿈치가 아직도 아주 미세하게 살짝 불편하다. 그런데, 이거 나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무 데도 못 가겠다 싶어서 집을 나선다. 요즘 단풍도 들고 코스모스 꽃도 피고 가을을 느끼기에는 딱 좋은 계절인데 말이다. 산행은 스틱을 짚어야 해서 무리일 것 같고 살방살방 다니는 여행은 괜찮을 듯하다.
여기저기 다닌다고 매주 토요일마다 꽤나 부지런을 떨었는 데도 서원이란 곳은 가본 데가 없다. 옛 선비들이 후학을 가르친 곳이라는데, 궁금해서 안동여행으로 병산서원, 소수서원을 가보기로 한다. 문화해설사가 안내도 한다니까 귀 기울여 잘 듣고 보고 해야겠다.
안동시에 들어서자 여자 문화해설사가 탑승한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주변지역에 대한 안내를 해준다. 하회 지역으로 가는 길에 풍산들이 펼쳐져 있다면서 추수가 시작되기 전 황금들판이 꽤 멋지단다. 가끔 그 길을 걸어서 가곤 하는데, 추수가 끝난 뒤 황량한 들판도 무언가 가득 담겨있었던 곳이었음을 기억하며 걸으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단다. 하회탈 공연과 선불놀이에 대해서도 알려주며 1박을 하면서 하는 안동여행을 기약해 보란다.
곧 병산서원 주차장에 도착한다. 병산서원 가는 길은 걸어가면 더 좋은데, 주차장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아쉽단다. 미리 내려서 길을 따라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걸으면 운치가 있단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이 길을 걷는 것을 추천하는 내용이 나온단다.
주렁주렁 익은 감나무의 감들이 탐스럽다. 안동의 특산물 산마도 밭에서 자라고 있다. 병산공방, 점빵, 장독대. 천사의 나팔꽃도 만난다. 늙은 호박을 따서 볕에 놓아둔 풍경도 보인다.
병산서원은 낙동강 건너편에 있는 산이 병산이어서 붙은 이름이란다. 이곳은 서애 유성룡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친 곳이란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격물치지 안내가 있다. 복례문은 어질 인을 만나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고, 만대루는 병산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한 공간이며, 작은 호수인 광영지에서는 맑은 하늘빛과 구름이 내려앉아 저절로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한다.
'저리도 맑은 하늘과 땅, 우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어질 인(仁)의 세계를 이곳에서 가르쳤으리라.'
병산서원 마당에는 매화나무와 무궁화가 있다. 꽃 피는 계절에 오면 꽃도 볼 수 있을 듯하다. 꽃과 어우러진 서원의 모습이 보고 싶어 진다. 그러면 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도산서원 현판이 새겨진 곳은 강당에 해당한다. 동재 서재가 있는데, 한쪽은 서생들이 머물고 한쪽은 스승이 머문다고 한다.
강당 뒤쪽으로 가면 배롱나무가 있는데, 보호수로 지정되었단다. 이 배롱나무는 사진 속에서 많이 본 풍경이다. 진분홍 배롱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이곳 병산서원 풍경도 더욱 멋스럽고 낭만적인 공간이 될 수 있겠다.
병산서원 체험프로그램도 있다고 한다. 서원에 머물면서 선비교육을 받고 낙동강변을 걷고 하회마을까지도 가볼 수 있단다. 어린 자녀가 있다면 한 번쯤 참가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병산서원 바깥쪽에는 체험 오는 사람들이 머무는 한옥이 따로 있고, 달팽이모양 화장실도 있다.
병산서원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안동 구시장으로 간다. 지자체 상품권 1만 원권 1장이 여행비에 포함되어 있는데, 시장에서 2시간을 준단다. 점심식사도 하고 천천히 돌아보면서 물건도 사라는 것이다. 전통시장 살리기의 일환이다.
실은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안동으로 오는 동안 차가 많이 막혀서 원래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어져서 관광시간을 조금씩 줄인단다. 그런데 안동 구시장에서의 시간은 지자체 지원이 있어서 그 혜택 덕분에 줄이지 못해서 2시간을 고스란히 다 써야 하니 오후 일정이 조금 빠듯하겠다. 여행사에서 여행을 가도 노옵션은 조금 비싸지만 이곳저곳 가게를 들리지 않아서 실질적으로는 소비가 적어 더 알뜰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또 한편 국내여행은 지방 살리기, 전통시장 장보기 등 좋은 점도 있다.
나는 이전에 안동 구시장은 산행 후에 한번 들른 적이 있어서 익숙하다. 해설사님이 소개해주시는 대로 살짝 돌아보고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으로 가서 안동찜닭을 먹는다. 첫 번째로 맛있는 집은 엄마가 해주는 집밥,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은 이 집 밥이라는 얘기이다.
나는 혼자 왔기에 여자 해설사분과 같이 식사를 하려는데, 오다가다 다른 해설사 두 분과 만난다. 서로 인사를 하다가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간다. 안동찜닭 중자를 시켰는데도 푸짐하다. 수원에서 먹는 안동찜닭과는 조금 맛이 다르다. 안동에서 먹는 찜닭은 달지 않아서 좋다. 그런데 남자 해설사분이 글쎄 계산을 다 해주신다. 우리 모두가 극구 사양해도 소용이 없다. 감사하게 먹고 음식이 제법 남아서 포장을 해달라고 해서 가지고 온다.
한복 빌려 입고 사진 찍는 코너가 있어서 둘러보고, <백 년 가치>에서 값이 조금 나가는 허호 명주스카프 한 장 사고, 안동 감홍사과와 안동간고등어를 사들고 버스로 간다. 전통시장에 오면 언제나 손이 푸짐하다.
집에 와서 보니 장을 잘 본 듯하다. 명주스카프도 예쁘고, 감홍사과도 처음 맛보는데 무지 달고 맛있다. 우리 남편이 좋아하는 간고등어는 무 넣고 졸였더니 도톰한 살과 무의 어우러짐에 밥 한 공기가 금세 뚝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