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 수리산
지난겨울에는 눈도 많이 왔는데 나는 눈산행을 한 번도 못했다. 아니 아예 산행 자체를 안 하고 여행도 안 하고 집 근처도 돌아다니지 않고, 장 보러 재래시장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방콕을 한 셈이다. 5~6개월이나 되었다. 하긴 나는 지난해 11월 말 100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는 날에 이사를 하고, 테니스엘보도 아주 낫지 않고 그래서 겸사겸사 그렇게 되었다. 겨울 내내 집안 정리를 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춘삼월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자랑산 수리산 산행에서 싱그러운 봄눈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일 때문에 일요일 산행은 못하니까 평일산행도 좋겠다 싶어서 매주 화요일 근교산행을 해볼 요량인데, 마침 이번 주가 딱 맞아떨어졌다. 수리산 산행을 하는 날 아침에 보니 밤새 눈이 소복이 내려주었다.
나는 일단 내복을 벗고 런닝에다 우모가 들어간 티와 바지를 입고 비교적 두껍지 않은 봄가을 잠바를 입었다. 모자도 얇은 것에 반장갑을 준비했다.
그런데 집결지인 명학역에서 기다리는데 춥다. 만나는 시간이 오전 11시인데 30여 분이나 일찍 가서 떨면서 기다린다.
"그래도 걷기 시작하면 더울 거예요! 오늘 날씨가 0~6도를 오간다고 했으니까요."
추워서 조그만 벽걸이 난로가 설치되어 있는 전철역 대합실 쪽으로 몰려 있는 산우님들에게 한 마디 한다.
"너무 추운 데요."
다들 그리 두껍지 않은 패딩을 입고 왔다.
참석 인원은 모두 23명, 추무치 님은 들머리 수리산약수터로 직접 오신단다. 약속시간은 남아 있어서 두세 분이 안 온 상태라 인테리어 지기대장님이 기다리고, 우리는 서우 일일 잠시대장님(?)을 따라간다.
바깥도 춥다. 한 10여 분 걸어가는데 손도 시리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잠바 모자도 모자 위에 덮어쓰고 간디.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왔나?"
그동안 산행경험으로 봐서는 일단 산행 시작하면 괜찮으리라.
'아마 살짝 더울 수도 있을 걸!'
혼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을 해본다. 막 못 견딜 정도로 추운 건 아니라서다. 영상 기온이라도 눈이 내린 데다 바람이 조금 불고 있어서 춥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가는 길에 산우님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눈다.
"내가 누군지 알아요?"
"글쎄요."
"수도산에서 강화 같이 갔었는 데요."
그러니까 금방 기억이 난다. 그날 자동차봉사를 해주신 보라빛님이다.
수리산약수터에서 서로 인사를 하고 단체사진 먼저 찍고 산행 시작한다. 초반에는 살짝 오름길이다.
곧 점심을 먹는다. 눈보라가 친다. 나뭇가지에 쌓여있던 눈이 바람이 불자 떨어지면서 흩날린다. 우리들이 밥상을 차려놓고 앉아있는 밥터로도 날려서 무지 춥다. 바람을 등지고 앉은 나는 등 쪽이 선득거린다. 추우니까 밥을 빨리 먹는다. 점심식사 후에는 눈발 날리는 게 멋있어서 이모저모로 사진을 찍는다.
오늘은 정상을 가지 않는 둘레길 산행인데 응달쪽이 많아 눈이 제법 쌓여있다. 길에도 나뭇가지에도 둥치에도 덤불에도 새하얀 눈세상이다! 겨울이 아닌 봄에 만나는 눈꽃, 햐! 에너자이저! 그저 하이얀 눈꽃을 보며 눈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엔도르핀이 팡팡 솟는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보니까 발바닥이 꽤나 무겁다. 눈이 달라붙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신발 밑창이 떨어졌는데요."
뒤에서 오시는 남산우 님 한분이 내 오른쪽 신발 뒤꿈치를 보며 말해준다.
"아, 그래요? 어쩐지 신발 속 양말이 자꾸 젖는다 했더니만요. 등산화 신고 스패츠 차면 웬만해서는 신발 안으로 물 안 들어오는데요."
자세히 살펴보니 양쪽 신발 밑창이 모두 정상이 아니다. 조금씩 떨어져서 달랑거린다.
"저는 이따 쉴 때 아이젠을 꺼내서 차고 가야겠어요. 아직 갈 길이 먼데, 아예 밑창 다 떨어지면 걷기가 힘드니까요."
곧 아이젠을 차고 걸으니 밑창을 고정시켜 주어서 괜찮은데, 녹은 눈덩이가 아이젠에 달라붙어서 걷는 게 힘이 든다.
"하이힐을 신고 걷네요."
한 2년 만에 산행을 왔다는 초롱이님이 나를 놀린다. 두세 번 함산 했던 여산우 님이라 무지 반갑다.
"그러게요."
양쪽 발에 달라붙은 눈덩이를 털어가며 걷노라니 오늘도 맨 후미이다. 그렇잖아도 느린데 더 느리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싱그러운 눈산행이라 행복감은 기대 이상이다. 산우님들도 많이 참석해서 눈길을 걷다가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삼삼오오 예쁜 눈꽃 포토존을 찾아서 사진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
돌탑, 제1, 2, 3 전망대 지나 초막골생태공원 쪽으로 가는데 마지막 길은 정말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길다. 양지쪽이라 나무와 길에 쌓인 눈도 다 녹아서 길이 미끄럽기까지 하다. 나는 아이젠을 차서 내려가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내려가는 여산우님들이 미끄러졌는지 여러 번 아우성 소리가 들린다.
산행 중간 부분부터 돌뫼 대장님이 후미를 봐주셔서 혼자 걷지 않고 함께 걸어서 감사하다. 주로 일요일 산행 리딩을 하신다는데 나는 시간이 안 되어 참여가 어렵겠다. 하지만 언젠가 또 함산 하게 되면 맛있는 걸 챙겨다 드려야겠다.
초막골생태공원 쪽으로 내려와서 아이젠을 벗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신발 밑창이 한 겹 두 겹 모두 다 달아날 태세이다. 초막골생태공원 돌비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니 맨 아래 밑창이 자연스럽게 분리가 된다. 스패츠를 벗어서 싸서 들고 온다. 어디 버릴 데가 마땅찮아서다
내 등산화 사연은 이렇다. 지인분이 싸이즈가 크다며 새 신발이라고 주어서 한 2년 전에 가져다 놓았었다. 그런데 나도 신어보니 싸이즈가 커서 안 신고 방치하다가 두꺼운 등산양말 두 켤레 신고 신으니 괜찮아서 근교산행에서 신으면 좋겠다 싶었다. 지난번 관악산, 청계산 산행에 이어 이번 수리산이 세 번째 산행인데, 그만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 지인분도 등산화를 사놓고 몇 년째 신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새 신발이라도 안 신고 오래 두면 삭아요."
"신발 오래 두면 밑에 곰팡이균이 생겨서 접착력이 떨어지게 되거든요."
산우님들이 한 마디씩 한다.
산본역까지는 1km 남짓 한 20여 분 걸어가야 한대서 신발 밑창 다 빠지면 어떻게 하나? 집까지 돌아오려면 걷는 걸 줄여야 한다. 그래서 올만에 뒤풀이 참석하려다가 아매랑 님한데 '먼지 간다고 전해달라'하고 그냥 집으로 온다. 좋은 등산화도 여러 개 있는데 하필 이걸 신고 가서 낭패를 톡톡히 보았다. 그렇지만 이런 에피소드가 없으면 또 쓸거리가 없지 않겠는가?
춘삼월 봄눈 산행에다 내 빨간 등산화와의 이별, 수리산 산행의 추억이다. 리딩해주신 인테리어 지기대장님, 후미 봐주신 돌뫼 대장님, 눈꽃과 눈길 예쁜 컷 남겨주신 여러 사진 작가님들, 그리고 함산 한 산우님들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