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공항을 거닐기만 해도 기분이 붕 뜨는 사람들은 여행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필자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하지만 사뭇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몸 가득 여유를 품고 "이젠 좀 쉬자"며 비행기에 착석하는 사람들과 달리 필자는 비행기로 향하는 그 통로가 언제나 떨렸다. 놀이공원에서 제일 짜릿한 놀이기구를 타기 전 줄을 서있는 느낌이랄까. 기대되면서 두렵기도 하고, 행복하면서 불안하기도 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로 내가 스스로 발을 디디는 것. 아무리 요즘 세상이 좋아져 인터넷으로 모든 걸 검색하고 미리 볼 수 있다 해도 막상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면 낯선 것들이 넘친다.
'나는 과연 가서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비행기 속에서 아무리 혼자 머리를 굴려도 소용없다. 그렇게 처음 타보는 것도 아닌 비행기 속에서 이것도 열어보고 저것도 만져보고 바깥도 쳐다봐본다. 활주로를 신나게 달린 뒤 비행기는 날아오른다.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
혼자서 떠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다.
한국이 작은 모형 섬처럼 보이기 시작하자 드디어 실감이 난다. '아, 나 정말 혼자 떠나는구나.'
필자의 여행 목적은 뚜렷했다.
다른 세계를 보고 싶었다. 늘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야 했던 지긋지긋한 한국을 벗어나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대치동에서 자랐던 필자는 집-학원이 인생의 전부였고, 주변 친구들의 삶도 그것이 전부였다. 오로지 대입을 위해서. 교실은 조용한 성적의 전쟁터, 학원은 전쟁승리를 위해 외롭게 파밍을 하는 나와의 싸움. 그 모든 것에 지쳤다.
또 한편으론 인터넷에서 본 그 어처구니없이 아름다운 외국의 풍경들이 정녕 사실인지 눈으로 보고 싶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는 건 언제든지 참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건지, 아님 익숙한 척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하늘을 날고 있지 않는가! 가끔 비행기 본체를 모두 없애고 앉아있는 좌석만 공중에 둥둥 떠있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이 와중에 와이파이가 안 된다며 짜증 내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우리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니까?
비행의 또 하나의 묘미는 바로 기내식이다.
만약 길거리에서 지나가다 이런 메뉴를 봤으면 별생각 없이 지나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선 다르다. "치킨 or 비프?"라고 물어보는 승무원의 말을 들으면 어쩜 그렇게 설레는지. 내가 진정 닭과 소고기 중 무얼 원하는지 깊이 고뇌하게 만든다.
귀여운 식판에 메인요리부터 디저트까지 아기자기하고 알찬 구성이 담겨 나온다. 하나씩 포크로 집어먹다 보면 평소에 먹는 거에 그리 관심 없던 필자의 미각도 원초적인 맛의 요소들에 집중한다.
어느새 한 식판을 다 먹는다. 괜스레 좌석 의자에 좀 더 꽉 끼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비행기 이륙만큼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또 다른 싸인은 착륙이 아니라, 비행기에서 내린 후 마주하는 표지판이다.
온통 그들의 언어다. 한국어는 온데간데없다. 왠지 나도 함께 신분세탁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선 내 과거와 상관없이 누구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낯선 표지판, 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모든 게 새롭다. 드디어 여행이라는 롤러코스터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과연 필자는 유럽, 북미, 남미 13개국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어쨌든, 모험은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