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옹 Jul 29. 2024

3. 절벽의 속살

영국 세븐 시스터즈

가고 싶은 장소를 가는 것이 여행이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에 품게 되는 곳들이 있다. 나는 자연에 쉽게 흔들리는 편이다. 어릴 적 호주와 캐나다에 잠깐 살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푸르름이란 길거리 가로수 정도만 허락하는 도시에 살았던 나는 어린 나이부터 자연을 동경해 왔다. 자연의 힘을 부드럽게 관철시키는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의 영향도 있다고 봐야겠다. 영국 런던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온 세븐 시스터즈라는 바닷가 절벽은 20개국 40개 이상의 도시를 다녀오고 난 지금도 아직도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




풍경을 보고 '위화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깍듯하게 깎인 절벽은 하얀 속살을 보였고 그 밑으로는 거짓말같이 깊은 바다가 펼쳐져있다. 런던이나 옥스퍼드와 같은 도시가 주는 감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런던은 비행기와 대중교통, 구글이 알아서 길을 터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너무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입문자용 여행코스라면, 세븐 시스터즈는 드디어 처음으로 혼자 여행 딱지를 뗀 느낌이었다. "유럽을 어떻게 혼자 가냐, 흑인남자가 너를 번쩍 들면 속수무책으로 납치당한다"라며 겁을 주던 부모님에게 내가 그걸 해냈다며 자랑스럽게 보여줘도 될만한 그런 전경이었다.




세븐시스터즈는 영국도 잉글랜드도 아니었다. 그런 정의들이 생기든 말든 이 절벽들은 생겨나고 무너지길 반복할 것이다.




혼자 떠난 해외여행 중에서도 처음으로 인간 문명이 보이지 않는 곳이 바로 세븐 시스터즈였다. 이때 깨달았다. 나는 인간계를 벗어나고 싶구나. 인간이 인위적으로 심은 나무와 꽃들 말고, 계획된 아름다움을 벗어난 우연의 선물과 같은 푸르름을 보고 싶구나.


작가의 이전글 2. 어딘가 있을 '영국=해리포터'들을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