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에 쓴 글.
도시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을 용기 내어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도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오래된 건물과 구조물, 또는 공간에서 과거를 마주할 수 있다. 도시에 남겨진 과거란 무엇일까?
서울대 건축학과 박소현 교수는 “과거는 지난 시대의 정체된 대상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해석, 재해석하여 생산해내는 지금 시대의 살아있는 대상임을 강조하고, 미래를 위해 훨씬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공간 해법을 모색하게 한다”라고 했다.
‘보기 싫다고, 오래됐다고 무조건 부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답변이다. 자본주의 도시화에서 일명 걸림돌로 치부되는 외로운 공간. 오래된 도시의 폐부 깊숙한 곳을 끊임없이 건드리고 재해석하는 용기는 결국, 철거해야 할 낡은 대상을 보존해야 할 도시의 자산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브라질의 쿠리치바의 ‘도시 침술’은 유명하다. 신도시 개발이나 전체적인 재개발, 토목공사 기반의 개발이 아닌, 도시 일부에 침을 놓듯 부분적인 변화를 통해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기적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도 마찬가지다. 마약의 도시 상징인 오랜 산동네에 옥외 에스컬레이터와 케이블카를 설치해 전 세계 도시들의 롤모델이 됐다.
철거될 뻔했던 약사동 망대, 강원도청 앞 춘천시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춘천시민회관의 철거. 그리고 춘천사람들의 한여름 밤 추억이 깃든 콧구멍다리(세월교)의 철거까지 우리 지역은 도시의 시간 흐름이 남긴 오래된 과거를 파괴하고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을 반복해오고 있다. 캠프페이지 도시재생 혁신지구도 마찬가지다. 캠프페이지 역시 지역의 서사가 담긴 공유지이기에 일부 시민의 욕망을 채우는 대상이 될 순 없는 노릇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소통 없는 행정의 일방적인 결정과 통보다. 과거 춘천시민회관이 오래됐고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행정에서 일방적으로 철거해버렸다. 춘천시민들의 문화적 삶의 공간이 도시 차원의 아무런 아카이빙조차 없이 사라졌다. 최근 콧구멍다리 철거 소식이 전해졌고, 공청회를 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그대로 묻혔다. 캠프페이지 개발부터 우리가 이미 ‘숙의’라는 권리를 경험했듯이 행정력이 시민의 의견을 짓밟는 것을 이제는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SNS에 행정의 폭력성을 고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도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다. 특히 오래된 도시들은 대부분 쇠퇴의 길목에 놓인다. 이에 대한 답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제시되었고 수많은 공간이 재편되었다. 일부 지역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업의 방향을 정하긴 했지만, 그 방법과 과정은 빠른 시간 안에 완성되지 않았다. 숙련되지 않은 숙의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속 가능한 재생에는 분명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도시의 미관 역시 그 도시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춘천시는 민선7기에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다. 건축과 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는 공무원과 사업을 실시하는 업자 사이에 도시의 정체성을 일관성있게 지휘할 수 있는 중재자이이기도 하다.
건축물을 짓고 허무는 일은 신중해야한다. 특히 공공건축, 시민이 주인인 공공의 부지에서라면 더더욱.
다시 돌아와서...
시민들은 도시의 지층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다. 행정에선 그 시간을 충분히 허락해야 한다. 그리고 발굴된 도시의 깊이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지자체장들의 임기 내 치적을 위한 성과 중심의 개발, 허울뿐인 정무적 외침은 이제 지친다.
도시의 지속 가능한 정체성이 무엇일지, 100년을 이어 갈 고민을 좀 했으면 한다.
다만, 그 정체성이 낡은 유적처럼 이어지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겉모습이 바뀌더라도 춘천을 춘천답게할 수 있는 거대한 틀(아이덴티티)을
찾아내고 지켜 갈 방법을 고민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