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밀리 Apr 27. 2024

아이와 담담하게 대화하기

진학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둘째와의 대화

중3인 둘째 학원에서 지원서를 넣을 학교를 결정하자고 연락이 왔다.

모의고사 점수가 그다지 좋지 않으니, 둘째가 가고 싶은 대전은 어렵고, 세종이나 인천, 대구를 쓰자고 이야기하셨다. 요즘 입결이 좋은, 둘째가 원래 가고 싶어 했던 대전보다는 모의고사 결과로 봤을 때 합격이 안정권에 들 수 있는 가능한 다른 학교들을 쓰자고.

둘째가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은 대전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합격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며, 합격가능성이 더 안정적인 곳으로 지원하자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집에 가서 둘째에게 학교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에 본 모의고사 점수가 안 나와서 그런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어디를 가지, 그냥 인천을 쓸까. 어디를 쓰는 게 좋을까. 어디를 써야 합격할 수 있을까.라고 이야기하는 둘째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 울컥해 버렸다.


둘째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명확했었다.

수, 과학 공부가 재미있어서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 위주로 할 수 있는 학교가 있다면서, 준비해도 되겠냐는 둘째의 이야기에 사실 너무 놀랐었다. 4학년 때부터 처음 수학학원 다니면서 수학문제 푸는 걸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진로도 그렇게 생각할 줄은 내가 몰랐던 거다.

처음에 준비하면서는 재미있어했다. 즐거워도 했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다가 학원을 다시 다니고 싶어 해서 학원을 다니고 있던 중이다.

힘들어하면서도 그 힘든 스케줄을 다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러던 둘째가 오로지 합격만을 생각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왜 이 힘든 공부를 시작한 건지, 하고 싶은 게 분명했고 목표가 있었는데 어느새 그 목표는 퇴색되어 있고,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물었다.

이 공부를 시작한 계기를 다시 물었다.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둘째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 버린 것 같다고, 눈물을 흘리는 거다.

목표나 하고 싶은 것보다도 그저 합격이 최우선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펑펑 더 울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둘째에게 이야기했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였지, 합격이 목표는 아니었다. 하고 싶어 하는 공부는 그 길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다른 길이 있다.

둘째의 답, 하지만 난 너무 합격하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공부한 나의 일 년이 모두 물거품 되는 거잖아.

다시 이야기했다.

그 시간 다 물거품 되지 않는다고. 분명 네가 가는 길에 도움이 될 거라고.

너는 어떤 걸 한다고 해도 성실하게 잘 해낼 수 있는 아이라고. 그게 가능한 아이라고 아빠하고 엄마는 항상 생각하고 너를 믿고 있는데, 왜 너는 너 스스로를 믿지 않는지, 자신감이 모두 어디로 간 거냐고 물었다.

엉엉 우는 둘째를 보니 마음도 아팠고, 그동안 공부하기 싫어하고 생각 많고 힘들어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새로 배우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좋아하던 녀석이 어느 순간 합격이라는 목표에 매몰되어 버린 것이다.


속상했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기 위한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것 같았다.

영재고 합격이 목표가 아니라 가고 싶어 하는 방향에 대한 하나의 길이었을 뿐인데, 그 길이 아니어도 다양한 방법과 길이 있는데, 뭔가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울고 있는 둘째에게 이야기했다.

괜찮다. 모의고사 결과가 확실하지 않아서 비록 학원에서는 둘째가 원하는 학교보다는 합격률이 안정권인 곳에 넣으라고 하지만, 가고 싶었던 학교에 넣고 도전해 보았으면 좋겠다.

목표로 하지 않은 학교에 넣어서 붙는다 해도 아쉬움이 남을 것이고, 그 학교에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이렇게 떨어질 거 가고 싶은데 넣어볼 걸 이라는 미련이 남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모의고사 점수가 조금 아쉽더라도, 그냥 가고 싶은 학교에 넣고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의 생각일 뿐.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정을 따를 거라고.


둘째가 혼자 더 울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대략 한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울고 나온 둘째의 표정은 한결 후련해 보였다.


다음 날 저녁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았다.

그전 모의고사 성적보다 좀 더 떨어져 있었다.

둘째를 불러 보여줬다. 성적표에 있는 점수를 한참 보던 둘째가 이야기했다.

수학 점수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지난번 보다 떨어져서 학원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신 것 같다고.

부족한 부분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설명하고, 가고 싶은 학교 지원하겠다고 이야기해 보겠다고 씩씩하게 나에게 설명한다.

왜 눈물이 났냐고 물었다. 그냥 울고 싶었다고 대답하는 둘째에게 한참 울고 나니 시원하더냐고 물었다.

끄덕거리는 둘째를 보고 안심했다.


최근 공부하는 걸 너무 힘들어했다. 해야 할 것도 많고, 점점 시간이 다가오니 압박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이 많았던 것이다. 마음속에 갈등이 심했던 것 같다.

빨리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알아차리고 맘껏 울게 해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둘째는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다. 기회가 와서 털어내고 울 수 있었던 거다.


한결 나아진 둘째의 표정에 마음을 놓는다.

둘째는 여전히 혼자만의 싸움을 해 나가야겠지만,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해져 있기 때문에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하던 데로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필요할 때 털어놓을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대학원에 들어갔다. 이 나이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