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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Aug 17. 2021

지도 교수님과의 관계를 어쩌죠?

사람 사는 것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가 문제다

  지도 교수님과의 관계를 어떡하면 좋을까요? 논문 쓰는 데에 지도 교수님이 무슨 의미냐고? 지도 교수님이 지도를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을 수 있다. 내가 실력이 좋으면 그만이지, 지도 교수님을 설득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만약 당신이 지도교수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장학금을 빼앗기고 있다면, 석사학위가 아깝지만 탈출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 연구실에선 대체적으로 당신의 졸업 또한 막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일이 없는 괜찮은 교수 밑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면, 주로 겪는 문제가 논문 작성을 둘러싸고 지도 교수와의 마찰이다. 사실 마찰이라기보다는 결국 대학원생이 겪게 되는 스트레스지. 내가 졸업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와 같은 고민.


  나는 데이터셋을 먼저 만들고 지도교수에게 이런저런 가설이 가능할 것 같다고 우선 계획서를 보냈다. 그랬더니 석사학위논문을 그 내용으로 쓰자고 했고, 중간에 지도교수가 어떤 내용으로 좀 더 잘 적어보라고 아이디어를 주었다. 나는 그래도 스무스하게 석사학위논문 작성이 진행된 편이다. 하지만, 주위 대학원생 오픈 단톡방을 보면 주제 선정에서부터 아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못하게 막는 교수들도 많고, 그것 때문에 대학원생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교수가 보기엔 이 주제가 재미가 없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이 주제가 왜 재미가 없고 의미가 없는지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움베르토 에코, 도와줘요.


  움베르토 에코가 적은 책 중에 대학원생의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 있다. 그 책의 제목은 무려 "논문 잘 쓰는 방법"이다. 나도 2010년에 신입생일 때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본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사실 이해하지 못하는 구절이었지만 2장의 7절은 무려 제목이 "지도 교수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이다 (에코, 1994).


  움베르토 에코는 교수를 두 가지 부류로 나눈다. 첫째, 자신이 잘 아는 주제로 유도하는 사람, 둘째, 자신이 잘 모르지만 더 알고 싶은 주제를 제자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는 사람, 두 부류이다. 여기서 그나마 관용적인 태도의 교수는 바로 후자이다. 후자와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는 교수는 대부분 지원자를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에게도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연구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교수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제자를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에 끌어들인다고 에코는 말한다. 이런 연구 프로젝트에 끌어들이면서도 제자의 발견을 교수들이 자신의 발견인 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왕왕 벌어진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에코에 따르면 결국 교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봐야 한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선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인터넷이 잘 보급되지 않았던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던 1985년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에코는 무엇보다 너무 나의 논문을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만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내가 거대한 프로젝트에 포함되어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10년 만에 구입한 움베르토 에코의 책


지도교수도 결국 사람


  대학원 총학생회장을 지내던 시절, 원우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모두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은 공통적이다. "어른이 왜 그래요?" 가끔은 이해가 되지도 않고, 어느 날은 존경스러웠다가, 어느 날은 정말 증오의 대상이 된다. 정말 잘 맞는 분을 찾기도 힘들다.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지도교수도 사람이라는 지점에 나와 내담자는 도달한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결국 나는 그들과 맞지 않는 것이라고. 법적인 싸움을 시작하는 원우들도 있지만 대부분 그저 수그리고 들어가서 체념을 하는 사례가 더 많다.


  우선 에코의 말처럼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보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요즘 인터넷에도 어떤 교수들을 평가하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교수는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 어떤 댓글들은 가릴 수 있다. 가려진 댓글이 많은 곳은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인문사회계는 아직 그런 시스템은 없지만 공대는 잘 되어있다. 인문사회계는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자.


  어느 교수들은 분명 감정 표현과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 훌륭한 논문을 쓰는 것과 누구와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것은 사실 다른 이야기이다. 잘 알아보고 들어가되 피할 수 없다면 사실 지도교수가 원하는 논문을 우선 쓰고 졸업하는 게 우선이다. 석사를 졸업하고 내가 무슨 활동하느냐의 문제이지, 사실 석사학위논문은 써놓고 저 구석에 넣으면 한참 꺼내보지 않을 것이다.


  교수님들께서도 한 번쯤은 나의 학생이 이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은 이유와 배경을 찬찬히 들어봐 주시면 어떨까. 분명, 행정 일로 바쁘고 펀딩을 위해 논문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대학원생의 스트레스를 경감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좋은 교수가 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어른이시니까. 그렇게 부탁드리고 싶다.


  나는 나의 지도교수를 잘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업 시간에 지도 교수에 대해 가장 맘에 들고 존경스러웠던 점은 바로 이해가 되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내 말이 말이 되는 것 같아요?"였다. 그래서 나도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똑같이 묻는다. 내 말이 말이 되느냐고. (내가 갑자기 이런 구절을 적으면, 마지막으로 나의 지도교수에게 혹시 이 글이 보일 때를 대비하는 거 아니냐고 모두 물을 것 같긴 한데, 그 말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겠다. 나는 석사 지도교수가 좋다.)


  결국 내 모든 글의 마무리는 체념이다. 글쎄, 체념하지 않고 싸움을 계속하는 대학원생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설득을 해서 원하는 논문을 쓰는 것도 능력이다. 다만 나는 여러분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인데. 체념하면 다 지나간다? 글쎄,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하면 결국 꼰대다. 싸우고 말고는 결국 여러분들이 결정하는 것인데.


  비단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학부생 여러분들도 논문을 적으면서 교수님들로부터 자신이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러분들은 적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 아주 큰 경험을 하고 있다. 지금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엄청 크겠지만 학위를 받을 미래를 생각하며 길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마음이 조급한 것은 분명 더 나은 무언가로 이끌 수 있겠지만 그것도 스트레스니까.


  나는 여러분이 이런 고민하면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


<참고 문헌>

에코, 움베르토, 김운찬(역), 1994,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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