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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Jan 08. 2024

논문을 다시 쓰는 나에게

박사과정을 돌아보며 나를 다독이기

  2021년 9월, 박사과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1년 반 정도의 직장생활은 나에게 오히려 큰 휴식이 되었다. 논문이나 공부를 생각하지 않고 실무에서 사람들과 협업하는 일도 괜찮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보람찬 일이었고 시청에서 일자리 관련 업무를 하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때에 거짓말같이 석사 지도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계속 공부해 볼 생각 없느냐고. 그런 곳에서 계속 일을 하느니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 말을 듣자마자 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박사과정에 지원했다. 석사를 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다 싫어졌고 나에게 박사과정을 할 문제제기가 있는지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박사를 졸업할 때 엄청난 논문을 가지고 졸업하던데, 나는 그런 걸 쓸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2023년 8월, 코스웍을 다 들었다. 그리고 박사과정 수료 상태가 되었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석사과정 때만큼 열심히 보내지는 않았다. "논문을 처음 쓰는 당신에게"를 쓸 때만큼 열심히 살면 몸이 망가질 것 같았다. 수업을 착실히 수강하면서, 그때마다 나오는 기말 텀페이퍼를 잘 완성하면 좋은 학자가 되어있겠지, 나에게도 무언가 좋은 주제가 생기겠지 생각하면서 네 학기를 보냈다. 2022년 후반부터는 박사과정 선배의 소개로 학내 연구원에서 인건비도 받으면서 일하게 되었다. 그동안 국문 논문을 세 편이나 투고했지만 모두 게재불가 판정을 받았다. 박사과정을 들어오고서 2022년에 석사학위논문을 영문으로 변환해 해외학술지에 투고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나의 박사학위논문 주제는 아니니까.

  2023년 8월까지 방황을 했다. 공부를 한다고 이래저래 적어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들은 대상 국가와 주제가 번잡하고 일관성이 없어보였다. 2017년에는 민주화에 대한 강대국의 압박, 2018년에는 필리핀의 외교정책, 2019년에는 필리핀 의회, 2020년에는 석사학위논문인데 권위주의 국가의 보건 지표. 나의 전공은 정말 무엇인가. 나는 앞으로 무슨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됐다. 모두가 박사과정을 한다고 유학을 가거나, 국내에 있어도 학술지 논문을 많이 쓰고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하던데. 나는 권위주의 공부를 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필리핀 전공이라고 할 수도 없고, 민주화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했다. 그렇게 2023년 8월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도교수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총학생회장을 했으니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공부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그리고 국가는 태국을 할 것을 제안했다. 2020년부터 태국에선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군부 시위가 계속 되고 있었다. 태국? 난 태국어도 할줄 모르는데? 필리핀을 선택했던 것은 필리핀에서는 영어가 쓰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태국? 난 태국을 여행으로 가본 적도 없는데 고민이 되었다. 다시 곱씹고 곱씹어보았다. 태국은 현재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되고 있고 넓게 보았을 때 학생/시민의 정치 참여를 보는 것이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날부터 태국 정치에 대한 논문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몇 주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한국동남아학회 대학원생 준회원으로 가입해서, 동남아에 관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많이 주고 받았다. 그 때에 알게 된 것이 태국어 수업이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전북대학교에서 특수외국어진흥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태국어 수업도 개설되고 부산외대에서 기숙사도 제공하며 식사도 모두 무료라고 하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태국어 수업 수강을 신청했고 2주동안 45시간의 "집중적인" 수업을 들었다. 2주 동안 태국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태국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덕분에 태국어는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태국에 관한 논문 한 편을 써서 2023년 8월, 한국동남아학회에서 대학원생부문 우수논문상도 받았다.

  2023년 9월, 어떤 기회가 나에게 왔다. 11월 말에 518기념재단을 통해서 태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 Asia Democracy Network(ADN)의 민주주의에 관련한 연수가 열흘 간 있었는데, 모든 비용을 ADN 측에서 부담해준다는 것이었다. 인천에서 방콕으로 들어가, 중간에 미얀마(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접경지대인 매솟(Mae Sot)으로 가서 며칠 보내고 다시 방콕으로 오는 일정이었다.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바로 가겠다고 했다. 나를 태국에 초청해주신 ADN과 518기념재단의 박채웅 부장님께, 그리고 518기념재단에 나를 소개해주신 한국동남아학회 전제성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태국에 가서 반독재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태국 정치에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는 기회가 나에게 왔다.

  태국에서 반독재/군부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것이 많다. 연구비를 얻게 되면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도울 수 있게끔 인터뷰 비용도 지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법에 관련하여 법정 다툼에 휘말리면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급작스레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이 계속 싸울 수 있게끔 인터뷰를 진행하고 비용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나는 그들의 목소리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들의 투쟁과 싸움을 도울 수 없다는 점이 나를 가슴 아프게 만든다. 그러나 연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그들의 목소리를 도울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행동할 수 있는 연구자로 내 연구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태국의 젊은 세대가 어떤 정치적 관심을 형성하고 있는지 논문을 적기 시작했고, 2023년 12월에 <동남아시아연구> 학술지에 게재를 확정했다. 제목은 "태국의 세대 정치: 세대의 차이와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이라는 논문이다. 동시에 작업하고 있던 논문은 지금 다른 학술지에서 심사를 받고 있다. 좋은 결과가 있다면 여러분에게 또 알려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나의 전공은 태국이라고 이야기하고, 유권자의 정치 참여, 선거라고 말한다. 부족하지만 발걸음을 떼고 일관성있는 논문을 계속 적을 수 있어서 좋다.

  2024년 1월, 박사과정을 수료한지 반년이 다 되어간다. 2023년 8월까지 방황했던 시간들이 있었으니 지금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 노젓는다고 생각하고 논문도 쓰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다 적고보니 나도 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대학원생의 문제점은 자꾸 자신의 일을 비하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서 자신을 다그치는 것이다. 적어보고 돌아보면 분명 내가 한 일들도 많은데,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도 내 석사과정 동기들은 나 혼자를 빼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유학갔으니까.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온 사람들에 대한 선호를 생각하면 분명 자격지심이 들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공부를 하고, 나는 나의 공부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혹시나 더 빨리 취직을 한다면 그들의 능력이 좋아서일 것이다. 나는 내 공부를 하고 조금씩 무언가 만들다보면 이 공부에도 분명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논문쓰기를 하면서 느낀점들, 연구 주제를 정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도 좀 바뀌었고, 방법론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결국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글도 저번 "논문을 처음 쓰는 당신에게"처럼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다. 나에 대한 위로가 당신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며 공부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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