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Birthday, 2019)
<이코노미스트> 등 몇몇 언론사에서는 매해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를 선정하곤 하는데요, 아무래도 영어권 사회라서 그런지 밴쿠버는 종종 상위권에 위치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 '높은 교육 수준', '낮은 범죄율' 등의 선정 이유가 무색하게도, 사실 밴쿠버는 오랫동안 자잘한 범죄들이 많은 걸로 잘 알려져 있죠. 특히 좀도둑이 참 많아요. 차 유리를 깨고 물건을 훔친다든지 우편물을 훔치거나 자전거를 훔치는 것 따위의 사건들이죠 (요즘은 조직폭력배들 간의 총격전이나, 노상에서 무작위 폭력행위 Random Attack와 같은 강력범죄도 많아졌습니다). 저도 이런 좀도둑들에게 당한 적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처음 이민을 와서 살던 아파트에선 갖 거래를 튼 은행에서 보내준 수표책을 도난당한 적이 있어요. 캐나다 연방 경찰의 절도/횡령 수사 및 기소가 $5,000을 기준으로 훨씬 더 심각해진다는 걸 잘 아는 도둑이었는지 계좌에서 $4,990을 빼갔더라구요 (결국 수표 서명과 신분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현금을 인출해준 은행에서 다 보상을 해주긴 했었는데, 캐나다 사회에 첫발을 디딘 저에게 아주 격렬한 환영인사처럼 느껴졌습니다).
한 번은 친구와 등산을 마치고 잠시 한국 슈퍼마켓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뒀었는데, 10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동안 세워둔 차 유리창이 깨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등산 배낭을 랩탑 가방인 줄 알고 털어갔더군요. 어찌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는지 그 번화한 거리에서 누구 하나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등산을 하느라 배낭 안에 아파트 열쇠 (네. 밴쿠버는 아직 열쇠를 쓰는 아파트가 많습니다)와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이 있었어서, 2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제가 사는 아파트 주민 열쇠를 죄다 바꿔줬어야 했습니다. 보험처리를 하긴 했지만 너무나 화딱지가 나더라구요.
며칠이 지나고, 저희 가족이 밴쿠버에 와서 자리를 잡는데 도움을 많이 주시던 K 할아버지, S 할머니와 같이 식사를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안부를 묻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량 절도 사건 얘기가 나왔었죠. 넋두리도 좀 하구요. 그랬더니 S할머니께서 제 손을 잡더니 넌지시 말하시더라구요.
"그래...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해서 뭘 배웠지?"
저희 가족과 워낙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농담을 하신 걸 수도 있고, 혹은 저희 가족을 아껴서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려고 하신 걸 수도 있을 텐데... 그 사건이 일어나고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한결같이 "절대 빈 차 안에 가방이 보이도록 두지 말 것"이라는 잔소리를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들어서 제 속에 아직 화가 나있던 상태였나 봅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때는 아주 못되게 팍 쏘아붙이고 말았습니다.
"뭘 배웠냐고? 캐나다의 거지 같은 치안에 대해 배웠지!" (S 할머니 죄송합니다. ㅠㅠ)
도대체 ‘조디 포스터’가 출연한 영화 <피고인 (The Accused, 1988)> 이 나온 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어떻게 아직도 사고가 터지면 피해자의 행실 탓을 먼저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여성이 야하게 차려입고 밤늦게까지 술집에서 춤을 추는 것이 성폭행을 당해 마땅한 일이 아닌 것처럼, 빈 차에 가방을 두고 내렸다고 해서 차 유리가 깨지고 가방을 도난당하는 게 마땅한 일이 아닌데 말이죠.
주변 사람의 비난도 비난이지만, 피해자가 스스로 자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건의 많은 경우가 그렇죠. '보이스피싱'이나 '이메일 스캠'과 같은 사건은 사실, 한 발 떨어져서 멀찌기 바라보면 너무나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저급한 사기 범죄이지만 막상 자기 눈앞에서 벌어지면 "어, 어, 어, 어......" 하다가 당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게 돈을 뺏기고 나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가 바보같이 속아 넘어갔다고 자책하게 되는 거죠. 최악의 경우 스스로 수치스러워 목숨을 끊기도 하구요. 죄지은 사람은 분명히 따로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피해자들이 수치스러움을 느껴야 하는 걸까요? '당한 놈이 바보'라고 하는 전근대적 명제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일까요?
얼마 전 어느 방송에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 수치심을 가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정조'를 잃었다는 전근대적인 개념에서 나왔다는 거죠. 사실 폭력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가해자에 대해 화가 나야 당연한 것이고, 부끄러움은 죄를 지은 사람이 가져야 되는 것은 마땅합니다. 좀 다른 맥락으로, 개인적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역시 좀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작가의 의도는 물론 따로 있겠지만, 이 동상만으로 봤을 때는 일본군에 유린당한 순결한 조선 소녀 만을 대표하는 것 같거든요. 다시 말하자면 순결하지 않은 여성이나 일본이나 네덜란드에서 온 다른 위안부 여성은 피해자로 인정받을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보인다면 너무 억지일까요? 국가와 군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성폭력의 피해자로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순결한 소녀여야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생일 (Birthday, 2019)
제작 : 나우필름, 영화사 레드 피터, 파인하우스 필름
배급 : NEW
각본 / 연출 : 이종언
주연 : 전도연, 설경구, 김보민, 윤찬영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에 가장 굵직한 상처를 남긴 사건을 꼽자면 아마 <세월호 침몰 사건>이 될 것입니다. 어린 나이의 학생들 250명을 포함해서 304명이나 희생되어 아직 전 국민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고, 사건 당시 정권에서는 구조 방기 / 실패에 대한 비난에 계속 정치적 잣대를 들이밀어 심각한 국론 분열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이 시초가 되어 몇 년 후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하죠. 그만큼 무겁고도 첨예한 사건. 그리고 사건 수사와 국민들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던 사건이다 보니, 그 어떤 영화감독도 쉽게 소재로 삼지 못했던 일입니다. 피해자 가족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르포르타주 책이 나오거나,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 들을 소재로 한 그림이나 시, 음악들이 나오기는 했었지만요. 그리고 5년이 지난 후 겨우 만들어진 영화는 놀랍게도 사건 이후 피해자 (가족)가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순남'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 '수호'를 잃었습니다. 남편 '정일'이 사건 당시 개인 사정상 한국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사건의 아픔과 절망을 혼자 떠맡아야 했었죠. 하지만 '순남'이 국가배상금을 받지 않은 것은 정부의 실책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순남'은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이하 '가협') 행사에 대해, 이들이 어떤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며 거리를 둡니다. '순남'에게 아들을 잃은 사건은 자기 세계를 통째로 잃어버린 것과 같아서 때로는 지독하게 절망하고, 때로는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국가배상금 수령을 거부한 것도, 그걸 받으면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게 될까 봐, 혹은 그 죽음으로 금전적 이득을 얻게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런 걸로 보입니다.
순남의 아픔이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닌 거죠. 그녀의 '아파트가 떠내려 갈 것 같은' 통곡 소리는 옆집 아이들의 공부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그동안 유가족들의 집회나 행사에 대해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돈 더 받기 위해 떼를 쓰는 것으로만 보이고, "세월호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 말하시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영화는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거나 공감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단지, 이렇게 상실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뿐이죠.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매일매일 떠안고 살아가는 순남의 태도는,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매우 답답하기도 합니다. 순남과 그녀의 남은 가족 일상에서는 웃음이 없어졌는데요, 차가운 바다에 묻힌 아들을 한순간이라도 잊게 되면, 그의 죽음을 단 일초라도 슬퍼하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더 가혹하게 대합니다. 그리고 순남은 가족과 수호를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도 이러한 엄숙함을 기대합니다. 같은 사건을 겪은 피해자이지만 과거를 딛고 나아가는 가협 사람들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순남'의 태도에 대해 '가협' 중 한 명이 "지만 유가족인가?" 하며 뾰족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도 매우 현실적입니다. 물론 가협도 여러 사람들이 같이 꾸리는 모임이니까, 자기 성격에 안 맞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꼴 보기 싫은 사람도 있기도 하겠죠.
유가족 중 어떤 사람은 농담을 계속 던져 분위기를 끌어보는 식으로 상처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순남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녀가 보기에 그런 방식은 얼음장 같은 바다에 쓸쓸히 죽어간 고인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생각이 되죠. 같은 짐을 든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같은 무게를 느끼는 것이 아닐 텐데, 여전히 우리는 같은 사건을 겪은 상대의 아픔이 내 아픔과 동일한 정량을 가져야 한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반대로 각기 다른 상황을 겪은 아픔에는 상실의 크기에 걸맞은 아픔의 등급이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생존자들은 유가족들에게 죄의식을 느끼고, 유가족들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더 미안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목격했던 많은 사람들은 "내가 과연 미안해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그 사건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혼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가해자들은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죠)
영화 후반을 가득 채우는 수호의 생일잔치 장면을 통해서, 감독은 피해자의 상처가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수호와 인연이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수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합니다. 그리고 수호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을 나눕니다. 정일은 사건 당시 가족과 같이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후회하고, 순남은 사건 당일 아침 수호의 전화를 받지 못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수호 덕분에 살 수 있었던 은빈은 자기 때문에 수호가 대신 죽었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런 자리를 통해서 순남은, 자기뿐만 아니라 수호 주변 사람들이 아직 저마다의 고통을 떠안으면서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수호를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영화의 홍보문구들이 "네가 없는 너의 생일", "좀 있으면 너 생일인데... 어떡해?"인 걸로 봐서 영화 배경은 사건 다음 해인 2015년으로 보이는데요, <세월호 참사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에서 배상금 (평균 4.2억)을 결정하고 유가족들에게 신청을 설득하던 해이기도 합니다. 당시 해수부는 동의서 별지 서식에 “4·16 세월호 참사에 관해 어떠한 방법으로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서약합니다”는 문구를 넣어서 많은 유가족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배상금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상 합의금 성격을 가졌던 거죠. 그래서 '가협' 등 118명의 희생자 유족 354명은 이 당시 배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국가의 관리 실패와 구조 방기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었죠. 그래도 거의 75%에 달하는 유가족들이 이때 배상금을 신청하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의도적인지 실수인지, 그간 많은 언론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한 묶음으로 싸잡아 묶어서 "유가족들은 이렇다더라" 식으로 여론을 조성해왔는데, 사실 이들은 같은 사고로 가족을 잃은 같은 피해자 신분일 뿐이지 어떤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같은 행동을 하는 결사체는 아니거든요. 그럴 이유도 없구요.
세월호 유가족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든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 (http://www.yes24.com/Product/Goods/35120206)>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가정과 여러 가지 사정이 나옵니다. 그중에는, 여전히 남편들은 모여서 술만 마시고, 화만 내고, 욕설을 주고받고, 아내들은 또 그 뒤치다꺼리 다 하느라 불평하고 그런 장면도 나오는데요. 바람직한 장면은 아니지만 너무나 있을 법한 장면이라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부장제가 존재하고 가사 분담에 있어서 성적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해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2015년에 배상금을 받았던 유가족들과 배상금을 거절한 채 국가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유가족들 간에 갈등이 있다고 해서 - 하나로 꽁꽁 단결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자 신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 거죠.
천안함 전몰장병 유가족들에 비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너무 시끄럽고 요구가 많은 게 아니냐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애초에 서로 적대적으로 비교를 할 필요가 없는 같은 희생자 가족들인데, 이렇게 진영을 나눠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밴쿠버에서 추모집회를 하던 어느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온 어느 백인 할아버지가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데, 너희들 이 집회에 참가하려고 다들 차를 몰고 왔을 거 아니냐?" 하며 항의를 한 적도 있었죠. 물론 저마다가 생각하기에 당장 시급한 과제, 더 중요한 사안들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유가족들이 거액의 배상금을 받은 것에 질투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가족들이 거금을 받았다거나 계속 시끄럽게 군다고 해서, 때때로 사람들끼리 모여 웃고 즐거워한다고 해서 더 이상 피해자가 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물론 반대로 유가족들을 너무 신성시하거나 그들의 행동에 무조건 열광적인 지지를 보낼 필요도 없겠죠. 그냥 단지, 그들의 태도가 어떻든, 그들이 얼마를 받았든, 그들 모두 생때같은 자식들이, 자기 가족들이, 국가권력의 임무 방기로 인해 검은 바닷속에 삼켜지는 걸 바라봐야 했던 사람들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던 우리들 역시 이 사건의 피해자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세월호 소리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라고 감정적인 저항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회피 역시 고통에 공감한다는 걸 반증한다고 봅니다. 안산에서 <치유공간 : 이웃>을 운영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의 심리치유를 돕는 '정해신 박사'의 말을 인용하자면 “회피하고 싶을 만큼 괴롭다는 것은 공감의 신호입니다 (중략) 이런 분들이 사실은 아픔에 가장 깊이 그리고 정확하게 공감하고 있는 겁니다. 이 공감대의 힘이 세월호를 들어 올렸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를 깊은 바다에서 들어 올린 와이어가 66개였다고 하죠. 그중에서 1개 정도는 이 ‘무력감과 죄의식의 연대’의 힘"이라고 합니다.
피해자의 행실이나 아픔을 이겨내는 피해자의 각각의 방식을 바탕으로 피해자의 자격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경과와 결과를 바탕으로 피해자를 피해자 신분으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일에서부터, 그리고 2014년 4월 16일에 대한민국 앞바다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참극이 벌어졌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잊지 않는 것에서부터, 또 다른 참극의 되풀이를 막는 일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