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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Dec 02. 2023

(It's) Not a Big Deal

위로와 자뻑

너굴이 작가님의 <2023년 여름, 나의 성장기>의 비트를 받은 변주곡입니다.







원래 잘 우는 편입니다. 남들 앞에서 잘 안 우는 건 그냥 사람들 간 관계에서는 감정을 드러내거나 이입하지 않으려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 거겠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가끔은 음악을 듣다가도 혼자 아주 못 생긴 얼굴로 질질 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영화는 혼자 보는 걸 더 좋아했어요. 익명성을 빌어 꺼이꺼이 맘껏 울 수 있으니까요. 물론 아내는 알죠. 얼씨구? 또 울어?! 하며 한심해하긴 하지만. 워낙에 많이 봐 왔으니 놀라거나 하진 않아요. 쯧쯧쯧, 저 인간은 20대 때부터 갱년기였어.. 이러고 말겠죠. 그래도 웬만한 이야기들의 클리셰에는 제법 익숙해진 터라, 어.. 이거 좀... 싶으면 미리미리 정신을 수습하는 여유도 생기고, 반강제적으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더라도 그냥 얼굴에 열이 좀 오르고 말고 그렇지만, 문제는 가끔 너무나 뜻밖의 상황에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는 거죠. 나도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요. 저 장면의 뭐가 갑자기 방아쇠를 당겼는지. 그냥 이유 없이 눈물 콧물이 와락 쏟아지는데, 옆에서 보는 아내는 더 의아하겠죠. "아니,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저 대사가 그렇게 슬퍼?" 하면서요.


기억에 남는 어느 순간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볼 때였어요. 뭐, 워낙에 슬픈 드라마였고 기구한 삶을 사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와서 사실 울 장면은 차고 넘쳤죠.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대충 버텼었는데, 아내의 외도 사실을 형제들이 다 알게 된 후 모여서 술 마시면서 넋두리하는 장면 있잖아요. 그때 동훈이 그래요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갑자기 또 울컥합니다).


아버지가 맨날 하던 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 말 나한테 해 줄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내가 맨날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정말 몰랐어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슬픈지. 언젠가 지인들과 만나서 <나의 아저씨> 얘기를 하는데, 서로 자기한테 가장 슬펐던 장면을 되짚어 볼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 장면을 언급하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감정이 막 북받치는 거예요. 눈이 벌써 시뻘게지고. 그런 절 보고 좌중이 엄청 기대를 했었나 봐요. 간신히 감정을 수습하고 저 장면을 얘기했더니, 으응???? 모두들 '아니, 왜?' 하는 표정으로, 하하하. 우는 저도 이해가 안 되는데, 남들은 어떻겠어요.


근데, 기억을 거슬러보니까, 아무도 저한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해준 적이 없었더라구요. 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기억에는 없어요. 대학진학이 나머지 인생을 결정하고 4당5락의 경전을 모시며 살던 청소년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하루빨리 내 작품을 찍고 싶었던 대학 때에도, 돈도 빽도 없으니 성실성으로만 승부를 봐야 한다고 다짐했던 직장인 때도 그랬고 말이죠. "좀 쉬엄쉬엄 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하더라도, "쳇, 넌, 참, 팔자 좋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라고 뾰족하게 굴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누군가 일을 벌였으면 끝을 맺어야 하고, 어떻게든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거잖아."   


근데, 정말 학교를 떠나고 나서부터는, 뭔가 벌려진 일이 제대로 끝이 나는 걸 보기는 힘들죠. 정당한 평가를 받는 걸 더 보기 힘들고 말이죠. 당연히 나라는 개인이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그건 더더욱 알 수가 없는 일이죠. 과제가 있거나 시험이 있고, 그 성적이 나와 칭찬을 받든 비판을 받든 할 수가 있어야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알 수 있을 텐데, 망망대해에 툭 던져진 신발짝 같은 이민자에게는 누구 하나 관심 갖고 지켜봐 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내가 어느 레벨인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불안했던 것 같아요. 도무지 내가 밴쿠버에서 직장 갖고 자리 잡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발이 안 닫는 곳에서 헤엄을 치는데 앞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라앉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것처럼.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자격증만 늘어가기도 했었죠. 칼리지에서 영어 시험을 보기도 하고, 구급치료, 산업보건안전, 컴퓨터 수리 자격증, 심지어 식당위생 자격증까지. 말로는 구직활동에 도움이 될 거라고는 했지만, 그냥 그렇게 점수를 받아야지만 그나마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이겠죠.


일자리를 잡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는 언어소통 때문에, 그다음에는 고객 서비스 업종의 특성인 감정 노동 때문에, 내가 이 일을 계속 하는 게 맞는 건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했었죠. 그날도 어떤 진상이 하나 와서 온 매장을 휘집고 다녔는데, 욕지거리를 온몸으로 떠 맞은 후 그 진상을 잘 달래서 돌려보낸 슈퍼바이저 직원 한 명이 담담한 얼굴로 내뱉는 거예요.


(It's) Not a big deal. 


마치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것처럼 말이죠.


근데, 그게... 멋있어 보였어요. 그 친구가 받은 정신적 대미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아니면 정말 괜찮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도 이 회사에서 페이체크를 꼬박꼬박 받아가려면, 아니, 아무도 신경 써주거나 평가해주지 않는 중년 이민자의 삶이 적어도 조금은 덜 불안하게 이어지려면, 그러려면 나도 저 말을 배워야겠다. (It's) Not a big deal. (It's) Piece of cake.


그러고 나선... 완전히 잊고 살았던 거 있죠. 뭐 하나 부딪힐 때마다 한숨 한 번 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뱉던 혼잣말 Not a big deal을 언제부터 입에 달고 살게 되었는지 말이에요. 그냥 버릇 같은 거였어요. 어깨를 털고 맨 몸뚱이로 다시 일어나는 씨름 선수처럼. Not a big deal. Not a big deal.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고, 어느 해 방영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누구 하나 자기한테 그 말을 해주지 않으니 자신이 맨날 본인한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다는 동훈의 대사를 듣고 화악 폭발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은, 그냥 Not a big deal이라는 혼잣말로 계속 짓눌러왔던 수많은 불안함과 서러움들, 지지 않으려고 뿜어댔던 유치한 악다구니들의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화악.







사는 게, 참, 그래요.


그냥 막마악한 안개 같아요.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나 저주했던 성적표가 이렇게까지 그리워질 줄은 몰랐어요. 운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죠. 적어도 운전은 차선이랑 차간 거리, 신호만 지키면 제대로 하고 있는 거라 걱정 없다고.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삶은, 신호도, 차선도, 속도계도 없는 곳에서 그냥 달리고만 있다는 얘기겠죠. 어쩌면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되돌아볼 기회라도 있다면 그건 또 행복한 케이스이겠죠. 어?어?어?어?어? 하다 보면 훌쩍 지나가 있는 경우도 많을 테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희미하게나마 안개 너머 보이는 다른 군중들의 자취를 좇아요. 불안하니까. 자신이 선택한 길이 자신이 원했던 방향과 동떨어져 있는 걸 발견해도 "하지만 현실이..."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고집을 부리면서 가던 길을 가요. 여기저기 부딪혀 가면서. 상처를 입어도 Not a big deal이라는 주문을 외우고. 어떤 삶이 더 올바른 삶인지 구분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일 거예요. 게다가 "하지만 현실이"가 되었든, "Not a big deal"이 되었든 그건 그냥 내가 계속 굴러갈 수 있는 관성만 제공할 뿐, 이 길이 진정 맞는 길인지, 맞는 속도인지 기준은 전무한 채 매일매일 불안하긴 마찬가지잖아요. 그런 이유로 부모들은 자식들의 인생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집 크기나 통장 잔고처럼, 눈에 쉽게 들어오는 자기 인생의 성적표라고 생각해서. 혹은 자기 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자뻑일 수도 있구요.


그리고 전문 지식 노동자의 삶에 있어서는, 지식인의 소명의식, 혹은 사회적 역할이라는 것도 하나의 자뻑이자 성적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연과학 계통처럼 실험결과로 눈에 보이는 분명한 성과가 나오는 분야가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 분야라면, 내가 제안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까지는 정말이지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 얘기잖아요. 이럴 때 자신이 하는 일이 과속추락하는 인간 사회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있다는 자뻑이 없다면, 자기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는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잘은 몰라도 지도교수는 결국, 빨대를 빠져나와 under the sea에서 헤엄치며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망망대해 속에서 자뻑이라는 나침반 하나 들고 다니면 좋겠다는.






쓰잘데기 없는 잔소리 같아서 댓글을 쓸까 말까 무척 고민을 했는데, 관종 습성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긴 댓글을 지껄이고 말았습니다. 근데 쓰자마자 곧바로 후회가 되네요. 가장 최근에 도무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또 펑펑 울었을 때가 바로 Dr. Bonnie Henry가 이 얘기를 했을 때였거든요.


We do not know everybody'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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