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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식사의 첫걸음 - 태양의 리듬에 맞추는 법

당신이 정말 기대하지 못했던 스페인음식 소개 1편입니다.

by 박정수

스페인의 식문화는 이탈리아와 같은 지중해의 풍요로움을 공유하면서도, 훨씬 더 자유분방하고 사교적인 에너지가 넘칩니다. 그들의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를 넘어, 삶의 기쁨을 나누는 축제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축제에 제대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페인만의 독특한 시간 감각과 식문화의 무대를 이해해야 합니다. 저녁 6시에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당황했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번 스페인 편의 첫 장에서는 본격적인 요리 이야기에 앞서, 여러분을 스페인 현지인처럼 만들어 줄 가장 근본적인 지식, 바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드립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 - 상황에 맞는 스페인 식당 선택법

스페인의 거리는 저마다 다른 개성을 뽐내는 식당들로 가득합니다.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느냐에 따라 당신이 경험하게 될 스페인의 맛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레스토란테 (Restaurante):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가장 격식 있는 식당입니다. 제대로 된 테이블에 앉아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풀코스 요리를 즐기고 싶을 때, 특히 하루의 메인 식사인 점심(La Comida)을 위해 찾는 곳입니다. 잘 짜인 와인 리스트와 전문적인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으며, 중요한 약속이나 특별한 날에 어울립니다.


바 데 타파스 (Bar de Tapas) / 타스카 (Tasca): 스페인 식문화의 정수이자, 현지인들의 사랑방입니다. '바(Bar)'는 단순히 술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작은 접시에 담겨 나오는 소량의 음식인 '타파스(Tapas)'를 즐기는 사교의 중심지입니다. 보통 서서 먹거나 작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시원한 맥주(caña), 와인과 함께 여러 종류의 타파스를 맛봅니다. '타스카(Tasca)'는 좀 더 전통적이고 서민적인 분위기의 선술집을 의미합니다.


메손 (Mesón): 전통적인 시골풍의 여관이나 식당을 뜻하며, 주로 그 지역의 향토 요리나 구이 요리(Asador)를 전문으로 합니다. 레스토란테보다는 소박하지만, 스페인 특유의 푸근하고 진한 손맛을 느끼고 싶을 때 최고의 선택입니다.


마리스케리아 (Marisquería):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스페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해산물 전문점입니다. 신선한 새우, 조개, 생선 등을 날것으로 먹거나 간단하게 굽거나 쪄서 내어줍니다. 해산물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입니다.


치링기토 (Chiringuito): 해변가에 위치한 간이식당 또는 바로, 스페인의 여름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갓 잡은 해산물로 만든 요리나 파에야를 즐기는 경험은 스페인 여행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스페인의 미스터리: 세계에서 가장 늦은 식사 시간

스페인에서 식사하려면 우리의 시간 감각을 완전히 새로 맞춰야 합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번의 식사를 하며, 그 리듬을 이해하는 것이 스페인 미식의 첫걸음입니다.

아침 (El Desayuno, 8-9시): 아주 가볍게 시작합니다. 카페 콘 레체(Café con leche) 한 잔에 크루아상이나 토스트(Tostada)를 곁들이는 정도입니다.


오전 간식 (El Almuerzo, 10:30-11시): 아침과 점심 사이의 허기를 달래는 두 번째 아침 식사. 작은 샌드위치인 보카디요(Bocadillo)나 스페인식 오믈렛인 토르티야(Tortilla)로 든든하게 배를 채웁니다.


점심 (La Comida, 14-16시): 하루 중 가장 중요하고 푸짐한 식사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한두 시간의 긴 점심시간을 가지며, 이때 코스 요리인 '메누 델 디아(Menú del Día)'를 즐깁니다. 스페인의 태양이 가장 뜨거운 시간에 실내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것은 그들의 오랜 지혜입니다.


오후 간식 (La Merienda, 17-18:30시): 늦은 저녁까지의 긴 공백을 메워주는 시간.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달콤한 추로스나 빵으로 가볍게 요기를 합니다.


저녁 (La Cena, 21-23시): 상상 이상으로 늦게 시작합니다. 밤 9시는 되어야 레스토랑이 붐비기 시작하며, 10시에 저녁 약속을 잡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기 때문에, 저녁은 타파스나 간단한 단품 요리로 가볍게 즐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자라면 이 시간표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저녁 7시는 식당이 문을 열기 전이거나, 텅 비어있을 시간입니다. 스페인의 리듬에 맞춰 늦은 오후에는 타파스 바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리고, 밤 9시가 넘어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시작해 보세요. 비로소 진정한 스페인의 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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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과 첫인사

인기 있는 레스토란테에서의 저녁 식사나 주말 점심은 예약(La Reserva)하는 것이 좋습니다. 간단한 스페인어로도 충분합니다. "Quisiera reservar una mesa para dos, a las diez de la noche." (오늘 밤 10시에 두 명 테이블을 예약하고 싶습니다.)

어떤 식당에 들어가든, 가벼운 미소와 함께 "올라!(Hola!)"라고 인사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 작은 한마디가 당신과 현지인들 사이의 벽을 허물고, 더 따뜻한 환대를 받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페인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스페인 점심 식사의 하이라이트이자 여행객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메누 델 디아'의 정체를 파헤치고, 스페인의 정찬 코스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Buen provecho!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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