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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Mar 11. 2022

[11] 분식(紛食)에 대한 오해

한국인의 밥심은 김밥천국에서?

배가 고픈데, 무겁게 먹고 싶지는 않고

적당히 위를 채우기 위해서 찾는 곳이 있다.

어딜 가나 메뉴 고민하게 만드는

대한민국 분식점의 요람, 바로 김밥천국이다!


대한민국 분식점의 요람, 김밥천국


김밥천국에는 없는 게 없다.

많은 곳은 100가지 메뉴에서 시작해

기본적인 김밥부터 돈까스, 떡볶이 류는 물론

해장국에 내장탕까지 파는

모든 한식의 요람이라 불릴만하다.


수많은 메뉴 속 선택 장애가 오면

그냥, 원조김밥 두어 줄 사서 퇴근한다.

용돈 좀 두둑할 땐 참치김밥, 모듬김밥이요!

하고 김밥 사치를 부리기도 한다.

한 줄은 뭔가 부족하고, 두 줄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연인과 둘이 딱 세 줄이면 정겹다.




김밥천국은 1995년 유인철 씨가

인천 주안동에 차린 것이 원조라고 한다.

당시만 해도 김밥 한 줄 가격은 단돈 천 원.

박리다매 전략으로 성공해 상표권을 신청했지만,

특허청에서는 식별성이 없다고 거절당했다고 한다.


동네마다 몇 개씩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김밥천국!

IMF 이후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직장인들에게

값싼 분식점들이 인기를 끌었고,

상표권이 없는 특성을 살려 너도나도 김천을 차렸다.

특정 본사의 프랜차이즈가 아니니,

가맹비를 낼 필요도 없고.


여하튼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동네마다 맛도 다르고,

서비스도 다르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우리 동네 원조김밥 한 줄은 2,500원이니

가성비도 많이 떨어진 건 사실.



김밥천국 유행이 한 차례 지나가자,

프리미엄 김밥집들이 또 건강을 미끼로

고가의 김밥 한 줄을 유도한다.


깔끔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한 바르다 김밥에서

아예 대놓고 대표 아내의 이름을 가져온 고봉민 김밥,

그리고 얌샘, 김가네, 장우동을 비롯.

매운 빨개떡 라면을 대유행시킨 틈새라면까지...

바야흐로 우후죽순 분식점의 대유행 시대다!


프리미엄 분식점 <고봉민 김밥과 바르다김선생>


그런데 왜???

김밥이 어엿한 분식이 된 걸까?????


이 얘기를 하려고 조금 멀리 돌아왔다.


지금껏, 분식은 주식이 아닌

한 끼를 간편하게 대체할 요량으로 먹는

라면, 김밥, 떡볶이 류의 값싸고 간편한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식의 사전적 의미는

紛(가루분). 食(먹을식).

바로, flour based food인 밀가루 음식이다!!!


1960년대 대흉년이 오기 전까지

분식은 그렇게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도 국밥 한 그릇 든든하게

사 먹을 정도로 우리 민족의 주식은 어엿한 "쌀"

米(쌀미).食(먹을식).
우린, 미식의 민족이었다!



100년 전, 프랑스 선교사에게 찍힌 저 밥상의

고봉밥은 무려 600그램이 넘는 한 끼 식사다.

밥에 죽고, 밥심에 사는 민족.

"밥 먹었니?" "밥 한 번 먹자"가 안부가 되는

유독 밥을 강조하는 국민성.


청나라의 개입을 부른 임오군란은

구식 군인들에게 쌀과 모래가 섞인 봉급을 주는 바람에

반란이 일어난 가장 자존심을 밟은 사건이었다.




밥심 하나로 버티는 민족성인데.

감히 한 끼 밥의 용량을 줄이고,

아예 밥 못 먹는 날까지 만들고,

도시락에 쌀밥을 검사하는 일이 발생했으니

대놓고 <표준식단제>를 만들었던

박 대통령의 "혼분식 장려운동"이었다!


이 정책을 계기로, 한 끼 밥의 규격은

무려 210g까지 줄었다.

600그램이 넘는 밥양이 200g까지 줄었으니

무려 3분의 1이 줄었는데도

너무 무서웠던 시절이라 대놓고 항의도 못한다.


워낙 먹고사는 게 급급한 가난했던 시절이라 그랬을까.

다행히 미국의 밀가루 원조로 끼니를 채웠던 시국이라

쌀 대신 밀가루 음식, 즉 분식이 장려됐던

삼양라면 한 봉지가 국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분식의 왕국이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런 국민의 밥심을 알았을까?

결국, 외국산 종자를 몰래 훔쳐와 개발한

<통일벼> 경작을 성공시키고,

쌀밥으로 통일하자는 의미의 통일벼가

당당히 50원짜리 동전에 새겨졌다!


통일벼 경작에 성공한 허문회 박사


쌀은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밥심이었나?

통일벼를 보급하고 식량자급에 성공한 197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은 1,000달러를 넘어선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가처분소득이 생긴다.

식량자급을 계기로 다른 산업 육성에 투자를 하게 되고,

쌀밥을 넘어선 외식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


분식장려운동으로 짜장면이 대중화되었듯.

넘쳐나는 사료와 육가공 업체가 발달하면서

이제 쌀밥에 고깃국은 더 이상

부자들만 먹는 음식이 아닌 '풍요'의 시대로 넘어간다.




그런데 언제부터 김밥이 분식의 장르로 묶이고,

분식점에서 대놓고 쌀밥이 포함된 음식들을

주메뉴로 올린 건지 모르겠다.


IMF를 계기로 천 원 김밥이 대중화되면서

자발적인 김밥 장려운동이라도 벌어진 걸까?

사실, 집에서 김밥 한 줄 싸려면

재료값에 노동 값이 더 들어갈 정도로

사 먹는 게 가성비가 좋은 게 김밥이다.


그래도, 어엿한 쌀밥인데 분식보다 미식 장르로 쳐주면 안 될까?

우리가 안고 있는 <만들어진 한식>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오해들이 산적해 있다.


그걸 아는 재미로, 내일 또 밥을 먹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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