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환상곡

2021년 5월 16일 (일) / 34일 차

by 곤잘레스 파파

2021년 5월 16일, 일요일 (34일 차) 서귀포 환상곡

강정 숙소 → 서귀포 이마트 → 이중섭 거리

→ 카페 메이비 (★★★★★) → 약천사

→ 연돈 (등심돈까스 ★★★★) → 강정 숙소


오늘도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어제 뽀로로 파크에 다녀와 체력이 바닥이 난 듯

아침에 눈을 뜨기가 힘들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일찍 깨서

계속 일어나라고 재촉하는데

몸이 성치 않으니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아빠도 좀 쉬자~'


비도 오고 오늘은 좀 쉴까 하다가

애들 스티커북이라도 조금 살까 해서

가까운 마트에 데리고 갔다.

스티커북 하나면 그래도 하루를 잘 버티니

몇 권 사서 시킬 요량으로.


20210516_105718.jpg
20210516_105455.jpg


제주에 온 이래로 가장 안개가 자욱하다.

가시거리가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뿌옇다.

차량 전조등 없이 운전하기도 쉽지 않은 그런 날.

그래도 무작정 나갔다.

마트는 내겐 병이다.

이것저것 둘러보다보면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났나

싶을 정도로 훌쩍 간다.


분명히 지음이 스티커북 한 권 사러

나왔는데 간식 거리도 눈에 들어오고

와인도 눈에 들어오고, 과일도 먹고 싶어진다.

결국 또 7만 원 어치를 넘겼다.

마트 장 보는 건 나름 취미가 됐는데

아내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이것저것 사오면 아이들도 잘 먹고 아깝진 않은데.

제주에서 마지막 보는 장이니 아내도 이해해주겠지.


오늘은 스티커북을 들고 어디로 가면 좋을까.

비도 오니 바다도 보이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갈까 해서 쇠소깍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서귀포 시내에

분위기 좋은 거리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그 유명한 이중섭 거리다.

비오는 날이면 미술관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이 기회겠거니 해서 무작정 보이는 주차장에 차를 댔다.

거리 곳곳에 부착된 멋진 시구들이며 그림들이며,

예쁘고 아기자기한 상가들이 포진해

딱 걷기 좋은 거리였다.


20210516_130955.jpg
20210516_125825.jpg
이중섭 생가와 작가의 길
20210516_130442.jpg
20210516_130543.jpg


이중섭 생가가 위치한 서귀포 작가의 길은

제주에서 가장 멋진 환상의 둘레길이다.

칠십리 공원을 지나 천지연 폭포를 거쳐

소라의 성으로 이어지는 산책길.

날이 좋으면 좋은대로

비가 오면 비오는 대로 운치가 있다.

분명 이 길은 신이 만든 길이다.

길을 걷다 문득 재즈가

흘러나오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비오는 파리 몽마르뜨 언덕 아래,

그 골목길 어딘가에 있는

노천 카페 풍경.

그 풍경 아래에 앉아

명상에 잠기는

운치 있는 화폭이 떠올랐다.


20210516_131057.jpg
20210516_131146.jpg
20210516_132413.jpg
20210516_131652.jpg


거리 초입에 있는 카페 메이비.

작가들도 꽤 많이 들렀던 유서깊은 카페란다.

비오는 날이라 색소폰 재즈와 샹송을 선곡했는데,

비와 커피와 선곡이 참 잘 어울린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거리의 풍경을 담고,

아이는 스티커 예술작품을 만든다.

아빠와 함께라니 아이의 기분도 좋아 보인다.

딸과 단둘이 데이트 참 좋다.


common.jpg 서귀포의 환상, 1951, 이중섭


거리에 전시된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서귀포의 환상이라는 판타지스러운 그림.

평안남도 출신인 이중섭은

6.25 전쟁을 겪으며 서귀포로 피난을 왔다.

힘들고 궁핍했던 중섭의 인생에서

가족과 함께라 행복했던 이 곳에서의 짧았던 10개월.

그가 바라봤던 아름다운 풍경들에

그가 꿈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대입해

넉넉하고 풍요로운 환상의 서귀포를 그렸다.


현실의 궁핍함과는 다른 풍요와 넉넉함.

따뜻하고 해학적이고 즐거운 이미지가 넘친다.

60여 년 전, 그가 걸었던 그 길들을 걷고,

그가 살았던 소박한 집을 둘러보고,

그가 느꼈을 가족의 소중함을 느껴본다.


짧은 인생헤서 주는 행복의 지분.

부족한 자아가 채우지 못하는 어떤 순간들이 있다.

돈도, 명예도 분명 채우지 못하는

어떤 감정이라는 게 있다.


사람살이인 우리 인생들을 담는

휴먼에는 이런 감정이 꼭 필요하다.

직접 느끼지 못하면 알기 어려운

삶의 고차방정식. 그 감정의 미지수를 푸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아닐까 싶다.


중섭이 느꼈던 것처럼 이 곳 서귀포도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평생 기억할만한

낭만과 가족의 따스함이

가득한 곳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2021년 제주,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그리움이 되지 않을까.


20210516_195818.jpg
20210516_200624.jpg
저녁 8시, 고대하던 연돈에 드디어 왔다


저녁은 드디어 고대하던

제주의 한 끼를 채우로 연돈에 왔다.

일주일의 기다림이 묻어난 맛이라

아이들에게 더 맛있는 한 끼를 주고 싶은 마음도 크고,

무엇보다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에

먹기도 전에 배부르다.


늦은 저녁 시간이라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잠깐 끓여먹은 라면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은 게 후회되긴 했지만,

드디어 기다리던 등심 돈까스가 나오니

위장이 허기를 부른다.


일단 아이들 입에 돈까스를 한 점씩 넣어주고.

첫입에 빠삭한 식감이 가득한 조각을 베어문다.

마지막 조각까지 빠삭 촉촉이 사라지지 않는다.

푸짐한 등심 살코기 맛은 마치 안심처럼 부드러웠고,

육즙이 잘 묻어 나온다.


소스 맛보다

육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소금에 찍어먹는 맛이 개인적으로는 최고였다.

가격 대비 최상의 퀄리티다.


20210516_200651.jpg
20210516_200739.jpg
가성비 끝판왕, 연돈 등심 돈까스!
20210516_204554.jpg


한쪽 벽에는

골목식당 편에서 백종원이 써 놓은 각서가

훈장처럼 붙어 있었다.

메뉴를 줄이는 대신 매출이 줄면

모든 책임을 백종원이 물겠다는 내용이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백종원이

저 정도로 써놓을 정도면 연돈의 매력은

충분히 입증한 셈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1시간 단위로 제한되어 있는 식사시간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들에게는

조금 불편한 점도 있다.

마지막 타임이라 제일 끝까지 먹고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좋았던 한 끼였다!


제주에서 맛 본 성공의 맛이다!

이전 12화반/입/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