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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어화 Apr 26. 2022

WITH 사춘기-7화

흔들리는 꽃

집에 들어오니 아들의 방문이 열려있었다. 시간은 저녁 7시 30분!

아직 수학 과외가 끝날 시간이 아닌데 수학 선생님의 신발도 보이지 않았다.

"아들, 벌써 수학 공부 끝났어?"

"선생님이 전화하실 거예요."

시무룩한 표정과 가라앉은 목소리로 아들은 한 마디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 불길한 예감은... 

선생님께서 수업을 하시다가 가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에게 따져 묻지 못했다.

나가기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선생님이 전화를 주신다니 기다렸다. 그리고 집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한 시간 가량 기다렸는데 선생님의 전화가 없어서 전화를 넣었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건가요?"

"네. 어머니~ 어머니 카톡으로 문자 넣었는데"

"아~ 제가 아들 하복 찾으러 간다고 걷기 운동 겸 나갔다 와서 확인을 못했어요."

"네. 공부할 의지가 전혀 없어서. 제가 더 가르치다가는 막말이 나올 것 같아 나왔습니다."

"아, 그랬나요? 죄송합니다. 요즘 영~ 마음을 잡지 못하네요.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말도 안 하고.

학교생활은 재미있다고 하고 친구관계도 문제없다는데 왜 공부에 집중을 못하는지. "

"저랑 수업하는 걸로 공부가 끝이고 숙제도 안 하고 같은 유형의 문제를 여러 번 풀어도 쳐 내지를 못해요.

2주 전부터 수학 공부 안 하면 안 되냐고 수학이 어렵고 싫다고 해서 제가 야단도 쳤었거든요."

"네. 내일모레가 시험인데 이제까지 그럼 공부한다고 한 시간 동안 뭘 했는지... 

숙제를 안 한 건 무조건 아들 잘못이고요. 뭐라 변명할 여지도 없는 거고요. 죄송합니다. 

무슨 생각인지 무기력증에 걸린 아이처럼 뭔가 해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부딪혀 보기도 전에 피하려고만 하니. 저도 너무 속상하네요. 본인도 힘들다는 걸 알기에 많이 이해하려 노력하는데 본인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니... 정말 힘드네요."

"저도 좀 더 달래며 공부시켰어야 했는데 그냥 와버려서 죄송합니다. 내일 수업하겠다고 하면 보강하러 갈게요. 연락 주세요."

"네. 의사를 물어보고 수업하겠다고 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쉬세요."

선생님과의 통화는 우려했던 내용 그대로였다. 이미 선생님께서 오셨을 때 아들의 심각한 학습 상황을 말씀해 주셔서 여동생이 먼저 수업을 할 동안 내가 잔소리 아닌 일장 연설을 했기에 짐작이 되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의 카톡 문자는 나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 보내져서 전달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선생님은 아들이 상처 입을까봐 삭제를 하라고 했지만 아들의 휴대폰 번호 비번을 모르기에 그냥 두었다.

본인도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얼마나 속상하고 기분이 안좋았는지.-


4월이 되면서 시험기간 동안에는 휴대폰을 내어놓고 공부하기로 해서 휴대폰을 내어 놓으라고 했는데 계속 가지고 나오지 않아 3~4번 반복해서 말했다가 아들과 한바탕 말씨름을 했었다. 

아들의 요지는 [엄마는 엄마가 늘 옳다고 생각한다. 잔소리를 한 번만 해도 되는데 반복한다. 강압스럽게 요구를 한다. 고로 나는 화가 나고 속상하다.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였다...

그날 아들이 울면서 말하는 걸 듣고 포스트 잍에 아들의 말을 적어 냉장고에 붙여두고 수시로 쳐다보면서 반복적인 잔소리를 줄이고 아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다. 나도 어느 정도 아들의 요지를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4월 초부터 킥복싱을 배우러 다닌 아들에게 생기도 찾아오고 같이 나눌 대화도 생겨 스트레스는 킥복싱에서 풀고 공부에 전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들은 공부에서도 편식을 하고 있었다. 

사회와 영어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 과목들은 거의 공부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번 주 목요일부터 시험이 시작되는데 그것도 수학이 첫날인데...

아들은 집에 오자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의 아들 얼굴은 늘 밝다.

그런 얼굴에 어둠과 그림자를 드리운 건 나였다.

"아들, 선생님이 숙제도 안 해놓고 같은 유형의 문제를 서너 번씩 푸는데도 못 풀고 매일 3시간씩은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데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요즘 뭐 문제 있어? 왜 마음을 못 잡아? 공부를 안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숙제조차 해 놓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라 생각해. 힘든 거 아는데 너만 힘든 거 아니잖아.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힘들고 하기 싫어도 공부하잖아. 그리고 이번이 고등학교 첫 시험인데 한번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성적이 안 나오면 공부하기 싫다고 말해도 되는데 첫 시험도 안 쳐보고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이러면... 뭘 해도 안돼.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

아들은 침대에 누운 채로 팔로 눈을 가리고 있는 채로 나의 몰아치는 잔소리를 듣고 있었고 그때 아파트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배달 라이더들도 쉬운 줄 아니? 하나라도 더 배달해서 돈 벌려고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위험도 감수하고 오토바이 속도도 올리면서. 그냥 편하게 사는 거 아냐. 다들 힘들어. 그래도 열심히 살아. 그런데 너는? 중3 때도 엄마랑 얘기하면서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지?  네가 내뱉은 말을 제대로 실천해 봤어? 넌 정말 최선을 다하기라도 했어? 엄마에게 널 몰라준다고 이해 못 해준다고 속상하다고 울면서 말해놓고선 너는! 너는 왜 너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와 선생님에게 이러는데. 너도 노력해야지. 아냐?! 그리고 정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정신과를 가든 상담을 받는지 해야지. 혹여나 혼자 떠안고 가려고는 하지 마. 네가 말을 해야 도와줄 수 있고 해결해 줄 수 있어. 다행히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네가 마음을 못 잡아서 그런 거라면 스스로 잘 생각해봐. 요즘 왜 그러는지..."

큰 소리가 아닌 훈계하는 듯한 조곤조곤한 말투로 한바탕 퍼붓고 나왔다. 

"안녕, 최자두"에 나오는 자두 엄마처럼 한번 큰 소리로 고함이라도 치고 나왔으면 시원했을텐데 그건 나의 생각이고 선생님이 딸아이 수업 중이고 아래 윗집에도 민폐다 싶어 나는 목소리를 더욱 깔아서 말해야 했다. 그게 아들에게는 윽박이나 고함보다 효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여전히 잔소리일 뿐일테고 기분 나쁜 말이겠지만...

나의 이런 생각들은 과녁의 10점 자리에 정확히 꽂힌 화살처럼 명중했다. 

잠시 후 벽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들이 화가 나서 책상인지 벽인지 어느 곳을 치는 것 같았다. 몇 차례는 참아주었다. 그런데 반복되는 벽의 진동에 나는 다시 아들 방으로 갔다.

"화가 나면 수학 과외 마치고 킥복싱장 가서 실컷 치고 와. 벽에 그렇게 치면 우리 집도 그렇고 다른 집에도 피해야."

"내 방에서 뭘 하든 신경 쓰지 마세요." 

"너만 사는 거 아냐. 너는 주변과 다 연결되어 있어. 그리고 그렇게 벽을 치면서 너 자신을 자학하라고 킥복싱을 보내는 거 아냐."

아들은 원망과 불만이 가득한 눈빛을 나에게 날렸다. 나는 그런 눈빛을 뒤고하고 아들방에서 나왔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고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뻥~하고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다. 

때마침 애들 아빠가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간단히 자초지종을 알렸고 신랑은 운동이나 나가자고 했다.

"아들, 너 하복 찾으러 갔다 올게. 수업하고 킥복싱 다녀와~"

처음 잔소리를 했을 때는 목요일이 시험이니 오늘부터 수요일까지 3일간은 킥복싱을 쉬라고 했는데 아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니 운동이라도 가야 할 것 같아서였다.

"화가 나더라도 네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는 게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 감정 조절해봐~."

이 말도 일방적인 요구이고 강압적인 요청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마냥 아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내가 이해해주고 기다려 줄 사안은 아닌 것 같아 나는 엄마로서 또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아들의 하복을 찾으러 5~6 정거장의 거리를 걸어갔다. 서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발과 다리는 걷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토네이도가 휩쓸고 다녔다. 

'왜지? 뭐가 문제지? 그렇게 공부하기가 싫으면 공부를 시키지 말고 기술을 배워야 하나? 제과제빵, 미용, 정비? 정비면 자동차나 오토바이?'

'왜 마음을 못 잡지? 고등학교 첫 시험이면 누구나 한 번은 잘해보자라고 마음먹고 덤비는 시험일 텐데. 자신감의 부족인가? 아님 정말 어렵고 힘들다고 해보기도 전에 지레 포기하는 건가?'

'내가 무슨 문제가 있나? 잘못 키우고 있어서 그런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어떻게 도와주어야 해결이 될까? 해결이 될 문제일까?...'

여러 번뇌가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마음이 지옥이니 이런 생지옥이 없다.


아들의 하복을 교복사에서 찾고 돌아오는 길은 구남로에서 해운대 바닷가 길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그때까지도 신랑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구남로에서 밀면이나 먹고 들어가요."

"그러자."

그렇게 신랑과 밀면을 먹고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래. 내려놓자. 태어날 때 먹고 살, 지 밥그릇은 갖고 태어난다는데 본인이 깨달으면 달라지겠지. 나는 내 인생을 살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구남로에는 월요일이지만 사람들이 많았다.

여전히 마스크는 갑갑하게 쓰고 다녀야 하지만 거리두기가 풀린 것만으로도 한결 거리는 활기찼다.

'아들과 나의 거리두기는 얼마쯤이면 될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으랴. 

그래, 너도 그렇고 엄마인 나도 그런 거겠지. 

흔들리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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