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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양 Oct 01. 2021

하늘을 날기 위해 언덕에 올랐다.

초록 초록한 들판은 눈이 부실 정도로 싱그럽다. 산꼭대기에는 만년설이 새하얗다. 소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다. 누구 하나 서두르지 않는다.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 있을까. 정겨운 목조주택이 들어앉은 풍경은 동화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게 한다. 스위스,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고작 3박 4일을 지냈다. 비싸도 너무 비싼 물가 탓이다. 주로 마트에서 빵과 음료를 사 먹거나, 한국에서 가져간 햇반과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그곳에서는 정말 가난한 배낭여행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30분 만에 30만 원을 썼다. 1분당 만원 꼴이다. 가난한 여행자는 사치를 부렸다. 일시불로 패러글라이딩을 결제했다. 패러글라이딩이 위험한 액티비티는 아니지만 안전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내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것을 불안해하셨다. 당시 남자친구도 나를 말렸다. 남들 다하는 패러글라이딩인데 막상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 침이 말랐다. 사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높은 곳에 오르거나, 경사가 가파른 계단에 오르면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높은 곳에서 마주치는 두려움은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보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다. 스위스 하늘만큼은 꼭 날아보고 싶기도 했다. 대자연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고 싶었다. 마침내 나는 티켓 창구의 줄을 섰다. 그리고 바로 예약을 완료했다. 결국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맑았다. 날씨마저 나의 도전을 응원해 주는 것 같다. 좋으면서도 내심 긴장이 된다. 두툼한 옷을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건만 괜히 비장한 마음으로 숙소를 나선다. 곤돌라를 타고 약 25분 동안 산을 올랐다. 점점 높아지는 고도에 귀가 멍멍 해진다. 산 밑에서만 바라보던 마을 풍경이, 위에서 바라보니 또 다르다.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의 선명한 색감은 카메라 렌즈에 다 담기지 않는다. 나는 어느 순간 카메라를 내려놓고, 두 눈에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Jason Mraz의 따뜻한 목소리가 이 순간을 채워주었다.

25분간의 곤돌라 낭만이 끝나고 드디어 피르스트 활공장에 도착. 안개가 자욱하고 찬 바람이 불어온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알프스 산맥의 설경이 나를 압도한다. 360도 빙글빙글 돌아도 다 담아낼 수 없을 것 같다. 대자연의 위엄 앞에 서자, 내 안에 무언가가 벅차오른다. 알록달록한 패러글라이더들이 마치 엽서 같은 장면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풍경 감상도 잠시, 파일럿이 나를 부른다. "Hey, Yang~ come here!" 아, 내 차례구나. 애써 부자연스러운 발걸음을 떼 본다. 긴장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일럿은 재빨리 패러글라이딩을 나에게 채워준다. 그렇다 할 안전 장비도 없다. 설명도 간단하다. 그저 언덕을 뛰어가란다. "No Walking, RUN! RUN! RUN!"


파일럿이 바람의 방향을 파악한다. 곧 파일럿과 함께 언덕을 달렸다. 뒤에서 하도 소리를 질러 대니 겁낼 새도 없이 내 다리는 뛰고 있다. 얼마나 뛰었을까, 어느 순간 떠오른다. 어, 어, 어! Fly! 하늘을 난다! 공중에 떠 있는 두 발을 내려다본다.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인생에 몇 번 없을 것 같은 순간. 땅의 소음들은, 순식간에 공중의 고요함에 묻혀버렸다. 하늘 위는 아주 조용했다. 거대한 알프스 산맥 앞에서 나의 두려움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 별것 아니었다. 내 안의 두려움도, 주변의 이야기들도 다 별것 아니었다. 오로지 내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것만이 진짜였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용기였다. 아직 내 두 손은 손잡이를 꼭 쥐고 있지만, 조금씩 이 손을 펼 수 있을 것 같다. 양팔을 벌려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안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을 때, 이 순간을 기억하자. 가만히 힘을 빼고, 몸을 맡겨 보자. 바람 따라 흘러간다. 두둥실. 오늘 나는 하늘을 날기 위해 언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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