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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양 Sep 04. 2021

스물일곱, 퇴사하고 세상으로

출발에 대한 단상

"우와, 퇴근이다! 가 아니고 퇴사다! "


평범하고 안정적인 일상이었다. 바꿔 말하면 무료한 일상의 반복이기도 했다. 나의 젊음을 한낱 사무실에서만 썩힐 수는 없다며 호기롭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5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디데이! 마지막 퇴근을 하자마자 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내 몸뚱어리만 한 배낭과 18kg짜리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선다. 엄마는 여전히도 불안한 눈빛을 보내셨다. "적당히 하고 돌아와"


인천공항 도착. 공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가 느껴진다. 분주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움직임 속에 나도 슬쩍 껴들었다. 밤이라 그런지 카운터의 줄이 길지 않다. 여행을 준비하고 기대해 온 시간이 무색하게 출국 수속은 빠르게 끝나버렸다. 무거운 짐이 사라지고 내 손에는 달랑 작은 가방과 여권 하나만 남았다. 가벼운 몸이지만 빠뜨린 건 없는지 자꾸만 되돌아본다. 


유럽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영국이다. 나는 아부다비를 경유해서 런던으로 간다. 이제 게이트 앞에 앉았다. 바깥을 보니 어느새 깜깜한 밤이다. 커다란 창 밖에는 내가 타고 갈 비행기가 나와 함께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는 직장인이었던 내가 저녁에는 여행자가 되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순간인데 갑자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이렇게 멀리 집 떠나 보기도 처음. 혼자 하는 출발이 마냥 설레지만도 않다. 무슨 자신감이었나. '잘할 수 있을까? 지금 무슨 일을 벌이는 거지?' 모호한 감정 속에서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야심 차게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직장 생활이 따분했다. 타인에 의한 수동적인 삶은 내 안의 에너지를 소모 시켰다. 내 안의 창조성을 발현시키고 싶었다. 암묵적인 주변환경의 압박에 당연함으로 수긍하기 싫었다.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장소에서, 새롭고 생소한 일들을 해보고 싶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오로지 나의 선택들로만 이루어지는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들. 그 하루를 조금 더 의지적으로 살아 보기 위해 떠난다. 지난 하루들이 모여 오늘의 하루를 만들었다. 오늘의 하루가 또 모여 내일의 하루를 만들 것이다. 지금보다는 덜 습관적으로, 덜 의무적으로,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이 깃들기를 바라본다. 그래서 잠시 멈춘다. 약간의 두려움은 삶을 더 진취적인 발걸음으로 이끌지 아니하던가. 마주치는 것들을 스치지 않을 여유가 있다면, 세렌디피티는 선물로 다가올 것이다.


곧 비행기가 이륙한다. 순식간에 나는 깜깜한 하늘 속에 파묻힌다. 비행기의 불빛이 별과 함께 반짝인다. 나의 익숙함은 어느새 점과 같이 작아진다. 내 안의 다양한 감정들을 인정해 준다. 어디까지 끝이었고, 어디부터 시작인지는 모르겠다. 이제 뒤돌아보지 말고, 일단 가보자. 끝과 시작의 모호한 경계에서 나는 눈을 감으며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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