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리양 Oct 23. 2021

20대 처녀, 팬티 바람으로 지중해에 빠지다


생각보다 지저분하고 복잡한 로마를 드디어 떠나왔다. 로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반 걸려 도착한 두브로브니크. 공항을 나서자마자 불어오는 바람이 여유롭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바다 물결이 반짝이며 찰랑인다.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 집을 찾기 위해 버스를 탔다. 캐리어와 배낭의 무게가 벅차다. 내 짐을 본 승객들은 기꺼이 짐을 들어 도와준다. 기사 아저씨도 천천히 하라며 느긋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툭하면 빵빵거리는 차 소리, 소매치기당할까 신경이 곤두서있던 로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제서야 나는 한숨 돌리며 창밖을 내다본다. 고풍스러운 성벽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새파란 지중해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드디어 도착한 골목길 끝 집. 어떤 호스트일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띵동~ 곧 작고 아담한 체구의 할머니가 문을 열어 주신다. 머리카락이 새하얀 할머니의 포옹에 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할머니 집의 방 한 개를 빌려서 묵게 되었다. 가지런하게 정돈된 방으로 저녁 햇살이 가득 비추고 있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드러눕는다. 할머니가 내일은 집 앞에 있는 해변에 가보라고 하신다. 숨겨진 보물 같은 장소라나. 서로가 서툰 영어라 정확하게 못 알아들었지만, 내일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다음날, 친구와 나는 시내로 향했다. 해변에서 입을 수영복을 사기 위해서이다. "분명 군살이 튀어나오겠지만 뭐 어때,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나는 대범하게 비키니를 찾아 나섰다. 아무리 상점들을 다녀봐도 수영복을 찾을 수 없었다. 오전 내내 돌아다녔지만 결국은 사지 못했다. 대신 우리는 바나나와 과일 몇 개를 사서 할머니가 알려주신 해변을 찾아간다. 커다란 바위를 넘어 구불구불한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이 길이 맞나?' 싶을 때 눈앞에 펼쳐진 해변. 새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 물빛이 그야말로 찬란했다. "우와, 여기 보물 맞네!" 


해변에는 몇몇 사람들이 선탠과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뜨거운 모래의 열기를 차가운 바닷물이 식혀준다. 달아 오른 발등 위로 바닷물이 찰싹거린다. 어서 시원한 물에 들어가고 싶지만, 수영복이 없다. 잠시 눈치를 보다가 슬-쩍 바지를 벗는다. 우리는 팬티 바람인 채로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괜히 쑥스러웠지만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팬티를 입던 수영복을 입던 그들은 관심이 없다. 뜨거운 햇살에 익어버린 온몸을 차가운 바닷물에 풍덩 담근다. 팬티 바람 물놀이라니! 자연 속에서 진정한 자연인이 되었다. 한참을 놀다가 물 밖에 나와 모래 위에 눕는다. 온몸에 뚝뚝 흐르던 물이 이내 바닷바람에 금세 말라버린다. 발에 닿은 까슬까슬한 모래의 감촉이 좋다.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바나나 하나를 까먹는다. 그래, 이것이 진정 쉼이지. 잠시 쉬어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온종일 자연 속에 파묻혀 있었다. 철썩이는 파도의 움직임이 여전히 몸에 남아있다. 햇빛의 따스함도 아직 머물러 있다. 그 보물 같은 해변은 마치 우주의 한복판 같았다. 자연 속에서 원시적이고 순수한 웃음을 남겨주었다. 언제라도 그곳에 다시 가면 또다시 백사장을 한가득 내어줄 것 같다. 지친 몸과 마음을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줄 것 같다.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인 무언가로 내 영혼을 안아줄 것 같다. 그 해변은 정말 보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하늘을 날기 위해 언덕에 올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