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사 일상]
나의 어설픔이 평소에는 기분 좋은 인간미를 발휘하지만, 오늘처럼 중요한 일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매사에 야무지게 살아야겠다는 비장한 각오 같은 것은 왜 여전히 생기지 않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 아마도 느슨하고 나른한 나의 기질이 삶의 대부분에서 항상 나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경험 때문일까.
어제의 실수가 딱 그랬다. 중요한 문서를 끝까지 꼼꼼하게 읽지 않은 탓에 당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공문을 늦게서야 파악하고 말았다. 그것도 퇴근에 가까운 시각에 말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초등학생 아들은 집으로 먼저 보내고 밤 늦은 시각까지 학교에 남아있어야 하는 상황. 당황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차근차근 일의 순서를 정리해 보았다.
여덟 살 아들을 지인에게 맡기기
아들과 남편에게 내가 없는 저녁 시간을 부탁하기
늦은 시각에 결재가 가능한지 교무부장님께 여쭙기
당직 주무관님께 늦은 퇴근에 대해 양해구하기
그런데 감사하게도! :)
마치 도움의 손길이 하나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많은 분들이 같은 마음으로 흔쾌히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셨다. 세상은 참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라며 저녁거리를 챙겨주고 아들을 데려가 준 지인
작은 도전에 용기를 보태어준 남편과 아들
늦은 시각까지 기다렸다가 결재를 해주시고 마음의 응원까지 보태어주신 부장님
교실까지 찾아오셔서 환한 웃음으로 아들의 간식까지 건네시는 주무관님
모두 다 따뜻한 사람들이다. 따뜻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사는 나는 참 행복하다. 이 작은 친절들은 나에게 왔다가 다시 누군가에게로 전해져야겠지. 오늘은 또 누구에게 진심어린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흐리지만 가슴 벅찬 시작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모든 분들, 모두 귀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