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사 일상]
날씨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강렬하게 내리쬐던 아침 태양빛이 어느새 하늘을 반쯤 뒤덮은 구름에 싹 가려지더니 내가 가진 에너지까지 서서히 흡수해버린다. 몸의 기운이 빠지니 의욕이 사라지고, 하고자 하는 일의 속도도 배로 느려진다. 어정쩡한 것을 싫어하는 나는 뙤약볕 없는 오늘 아침의 선선한 여름 날씨가 하나도 매력적이지가 않다.
어쨌든,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고.
올여름 무더위는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연일 폭염 경보 안내 문자에 주변 곳곳에서 힘들게 여름을 견뎌내고 있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재작년에 만난 귀농하신 학부모님은 폭염 속에서도 농작물을 살피는 일에 여념이 없으실 테고, 소일거리 하시는 연세 많으신 부모님은 최선으로 건강을 살피며 가혹한 여름 더위를 이겨내고 계실 테다. 모두들, 걱정이 된다. 무탈하게 이 여름을 잘 보내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방과후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등교하는 아들과 함께 등굣길에 오른다. 오늘은 지각하지 않은 탓에 방학 중에도 어김없이 학교 앞 교통지도를 해주시는 도우미 어르신들을 뵙는다. 으레 그러하듯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보니 한 뼘의 그늘 조각도 없는 차도 근처에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어르신과 눈이 마주친다. 야광 조끼까지 덧입으신 채 묵묵히 태양의 열기를 몸 안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시는 모습에 심히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들 녀석을 배웅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무탈하길 바라는 심정으로 땡볕에 서계신 도우미 어르신을 재차 확인해 본다. 여전히 기력 없이 달리는 차와 다가오는 아이들을 번갈아 살필 뿐이다. 신호등 앞 편의점으로 다급히 달려가 시원한 보리음료 6병을 사들고나온다. 마침 교통 도우미 어르신들의 퇴근 시각인가 보다. 지킴이실에서 깃발을 정리하며 잠시 더위를 피하시는 어르신들께 시원한 음료를 전해드린다. 보리 음료 한 병씩일 뿐인데,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단번에 더위를 날려버린 듯 환한 웃음만 만연하다. 왜 그런지 나도 콧잔등이 시큰하고 온몸이 찌릿해온다.
내가 '나다운 나'로서 행운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내 스스로 참 잘나서 이룬 것이 결코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는 사랑으로 최선을 다해 귀하게 키워주신 부모님을 시작으로, 나를 성장시킨 여러 번의 실패, 그 속에서 나를 단단하게 설 수 있게 만들어준 좋은 친구들, 아이의 엄마로서 남편의 아내로서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켜주는 가족, 부족함을 채워주고 일깨워주는 동료 교사들, 바쁜 삶을 여유롭게 이어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도와주는 이웃 친구들, 에너지의 원천인 제자들과 학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의 배려와 도움 덕분이다.
그러니 나는 참, 많은 것들에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진 이 많은 빚은 매일 이렇게 사소하게나마 갚아나가려고 한다. 누구에게든,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