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올려다봤을 때 보름달인 게 좋아. 초승달일 때는 좀 아쉬워.” 둘째의 말이다.
무슨 샤머니즘 같은 말을 내뱉고는 초승달을 하루의 점술 풀이로 개똥철학을 붙이기 시작했다.
미소 짓는다.
사람이 냄새 맡는 능력은 동물의 후각과 비교해 얼마나 빈약한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류가 가진 달란트로 지금에 지구의 지배자가 된 이유 중 하나가 놀랍게도 물의 냄새를 알아내는 특화된 능력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물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유독 뛰어난 덕에 축축한 물가로 향하고 정착지를 만들고 모여 살게 되고 집을 짓고 농사를 짓기까지 했던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쩜,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자연을 연모할지도 모른다.
⌜삼국유사⌟ 속 백제의 의자왕 때,
어느 날 땅으로 올라온 거북이의 등에 ‘백제는 만월, 신라는 반달’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점술가의 해석으로 “백제는 만월이라 이제 기울 일만 남았고 신라는 반달이라 차오를 일만 남았다." 하였다. 그 후로, 후로 우리는 만월보다는 반월의 희망으로 송편을 먹기 시작했으니 음식 또한 달 아래 있는 것이로다.
각자의 샤먼은 자신을 위로하기도 하고 용기도 주고 게워내듯 울게도 한다. 그런 작용들이 자신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힘을 주기도 하는 방식이다. 과거 무당들은 굿이 끝나면 그 자리에 함께했던 구경꾼들과 푸닥거리로 마무리하며 접신을 풀어 현실로 돌아왔다. 그렇듯 우리는 나름의 샤먼으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이해하여 자신을 더욱 곧게 하려는 것이리라.
그러니, 세상을 살아가며
달을 보고 개똥 가라사대를 하는 둘째를 어찌 탓하리오.
나의 샤먼도 꽤나 오합지졸인 것을. 그러나 마음은 진심이오, 염원은 마리아나 해구의 수심이다.
젊어 보름달이 좋은 것이리라.
나야 보름달도 좋고 초승달도 좋다.
그 모든 달의 날이 삶이기에 다 찬 보름달 아래 송편을 빚어 바라고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소원하고 그날들이 모여 나로 소환된다는 것을 아나니
옆에 선 젊은이에게 만월, 반월 해가며 왈가왈부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냥 서서 함께 달을 올려다본다.
우리가 어느 적 혼이었을 때 물을 찾아 천 길 만 길을 굳건히 걸었을 것이고 달을 보며 어둠에 감사했으며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내통하는 샤먼이었을 것이다.
그런 연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카이로스를 만나는 찰나’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젊거나 늙거나 말이다.
<배경이 된 책>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작품으로 작년 출판 되자마자 읽은 도서다.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유독 집착적으로 찾는 시대가 일제강점기로 논픽션이든 픽션이든 신간이 나타나면 신난다며 잡아채는 편이다. 기쁘게도 올해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남다른 기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