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쯤부턴가. 머리를 감고 서둘러 빗어 넘기다 희끗ㅡ 허여멀건 ㅡ머리 색과 다른 색이 보이긴 했으나 워낙 숱이 많은지라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다 5월에야 원형탈모가 머리통을 둘러서 8군데나 퍼져 6주간 스테로이드 주사를 4방씩 맞아야했다.
그후 애지중지 머리를 감고 풍성한 머릿발의 자신감 넘치던 똥머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한움, 한움 잡혀 빠지는 내 머리털과 매일 매일 이별을 고하고 있다.
키도 작고 볼품없는 나지만 머리털만큼은 나이와 무관했다. 그 머리털이 외관상 나만의 자랑거리였는데 그 머리털은 두피에서 스스로 미니멀라이프를 설정해 모근과 모근 사이에 벤치도 놓을 판이다. 풍경이 아주 가관이다.
누구는 하이힐이었단다.
관절 때문에 그는 내려와야 했고 고개 숙여 낮은 데로 임하고 있다.
나는 혹여 봄바람에 무분별한 난개발이 된 두피가 보일까 봐 고개 숙여 남 없는 데로 임한다.
그러나 어느덧 7월이 되니 납작해진 머리통이 그리 낯설지 않다.
거부하던 현실을 드디어 수용하게 된 걸까?
더욱 볼품 없어진 외모가 나려니 하게 된다.
인정의 단계는 새로운 발상을 만든다.
머리털이 두피에서 빠져나가 오솔길도 만들고 대로도 만들어 바람이 솔솔 통하니 한여름 더웠던 머릿속이 추운 겨울의 찬바람으로 바꿨을 뿐 인생 전체로는 그다지 변화는 없는 것이리라.
올 여름 휴가에는 집 안에 물건들을 정리하려 한다.
넘쳐나는 물건들로 성벽을 이루던 공간에 바람이 솔솔 지나가도록 말이다.
그리고
내년쯤엔 가득 찬 생각들도 간결히 정리되었으면 한다.
50대를 사는 나는 앞으로 나를 새롭게 돌보는 방법으로 머리털로 얻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