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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Feb 22. 2024

하얀 패딩은 예쁜데 관리하기가

힘들다

하얀 패딩을 입고 만난 지인을 볼 때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옷 예쁘다! 근데 이거 관리하기 너무 힘들지 않아?"


사실 그렇다. 관리해 줄 것도 아니면서 예쁘다로 그쳤으면 될 것을, 꼭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걸 굳이 물어보고 있는 나를 본다. 하얀색이 상대적으로 떼가 잘 타고 얼룩에 티가 많이 난다는 건 온 지구사람들이면 아는 사실일 터. 부러워서 하는 말인가 보다. 나도 밝은 색 패딩 사고 싶은가 보다. 겨울 다 가고 있는데 말이야.




간밤에 쏟아 내린 눈 덕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없이 아름다웠고 고개를 내려보니 질퍽이는 땅이 상당히 지저분했다. 수영을 안 가는 날에는 산으로 운동을 하러 가는데, 운동을 쉴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이 생겼다. 눈이 쌓여있으니 산을 뛰어 오르락하는 게 무리가 있을 거라는 하찮은 핑계말이다.

그렇게 멍하니 생각을 하다 결국 부지런을 떨어보려 장갑을 끼고 후드를 눌러쓴 채 산으로 향했다. 세상은 하얗지만 내 신발은 점점 더러워지더라.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과 느낌. 이대로 산의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 이 못난 나의 생각들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훠이훠이-팔라라라랑-)

[2024.2.22 하얀 패딩 입은 산]
아니 이거 너무 예술이잖아?

감탄에 감탄을 하고, 걸음을 멈춰 또 감탄을 했다. 예술인이 예술을 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예술 충만한 시간이 어디 있을까. 운동을 하러 올라간 산길에 몇 번을 멈춰 사진을 찍고 눈으로 담고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2월의 마지막 설산의 절경일 수도 있는 날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좀 더 새로웠다. 빈 나무 가지 위로 올라간 눈들은 쌓여있는 게 아니라 나무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하얀 패딩을 입은 것처럼.

그럼 나는 또 묻겠지.


"옷 예쁘다! 근데 이거 관리하기 너무 힘들지 않아?"


관리는 다음 계절이 해줄 것을 또또또-예쁘다에서 그치지 못한 나란 사람. (관리하는 人)

어쩌다 불어오는 바람이 새로 산 하얀 패딩에 신고식 하듯 툭툭-건드리자, 나무는 이에 질세라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고 눈을 흩뿌리며 자랑 한번 하더라. 보란 듯이.


몸도 마음도 차분해지는 시간. 그렇게 나는 운동보다 더 값진 시간을 선물 받은 것 같았다. 쓰고자 하는 글귀들이 머리를 스쳤지만, 풍경을 담느라 글들이 흩날아가고 이내 생각을 포기 한채 셔터를 눌러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은 글보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날.


[소리 나는 계단]
뽀드득-
[나무그루터기에도 2024 신상커버]
[내가 1등]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남들도 밟아보라고 한쪽만 사뿐히 밟고 왔더랬지.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건너편 누군가에게]



눈 덮인
산을
눈에 담았다.
산이 말하길.
"예쁘게 잘 찍었으면 관리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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