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작 Mar 19. 2024

3. 배

맛 있는거 말고 멋 있는 거


사각사각

그 식감에 한번 반하고 달달한 맛에 한번 더 반하니,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굳이 미워해보자면 비싼 가격?

그럼에도 굳이 미워할 이유를 찾고 싶진 않기에 좋아한다고 고백해 본다. 

저기 있잖아... 나 너 좋아해.

"웃기시네, 여름 되면 수박한테도 그러면서."


콧방귀에 놀라 흠칫- 뒤로 물러서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다가가 귓속말을 팍!


사랑한다고!!! 

'끄읏(끝)'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찾아 찾아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나무에 붙어있는 매미를 간혹 발견할 때가 있다. 그게 뭐라고- 대단한 보물 발견한 거처럼.


"어!? 저기 있다!!! 하하하하-"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매미를 이기고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흔적을 지울때즘이면 본격적인 본업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의 열정이 온 동네를 불태운다. 그걸 우린 여름이라고 부르지.(싫다 여름. 쉿-)


더운 걸 싫어하는 문수는 여름만 되면 녹초가 되어 갔다. 단지 여름이 반가울 수 있는 건 시원한 과일들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것 말고는 찾을 수 없었다. 배, 참외, 수박에 파묻혀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더위였다.

교실에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천장에 달린 선풍기보다 시원하게 느껴질 때 묘한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런 바람에 인사하는 문수는 두 눈을 감고 있다 살포시 떠본다. 그런 바람을 선택한 대가는 뜨거운 햇살이지만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의 바다는 문수가 누릴 수 있는 나름의 최고 명당이었다.

넓디넓은 바다 한가운데 유유히 지나가는 배 한 척이 있었다. 문수는 그런 배를 보다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저 큰 게 떠있을 수 있을까...?'


수영을 못하는 문수는 물이 무섭다. 자기 몸 하나 안 뜨는 바다 위에서 몇 톤이나 되는 저 배가 떠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리고는 종이 울리길 기다렸다. 이수에게 물어보기 위해서.


기다리던 종이 울리고 문수는 이수를 만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나갔다. 나가던 중 저 멀리 다가오는 이수가 보였다. 보통은 어디 가냐 먼저 물어보는 게 순서일순 있으나, 문수에겐 궁금한 점이 1순위였다. 


"큰 배가 어떻게 물에 떠 있을 수 있을까?"


"나 과학실 가야 해."


이수는 보통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먼저 해주었다. 그리고는 표정변화 없이 과학실로 향했다. 쫄쫄-쫓아가는 문수는 쉴 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애매모호하고 아리송한 답변을 스스로 하면서 질문과 답을 번갈아 말하는 문수가 정신없을 법 하지만 이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딱! 한마디를 던졌다.


"다음 수업 때문에 선생님 심부름 가야 해. 간다."


덩그러니 문수가 멈춰 섰다. 이수는 몇 발자국 앞서 가더니 뒤돌아 말했다.


"다음 쉬는 시간에 보자."


문수는 씨익- 웃으며 교실로 돌아갔다. 이수가 얼마나 명쾌한 해답을 내려줄지에 대한 기대로 부푼 채, 자리에 앉아 창밖 너머로 보이는 배를 바라보았다. 원래도 수업에 집중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유독 이런 궁금증이 생길 때면 더더욱 집중하지 못했다. 스피커를 쳐다본다고 한들 종이 치겠냐만은 뚫어져라 종소리가 들릴 스피커와 배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종소리 라고 합시다.)


육상선수를 했었어야 했나 보다. 이수네반으로 전속력으로 달려간 문수는 어느새 이수 앞에 새끼새처럼 앉아 있었다. 이수는 그런 문수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침착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


"이 새ㄲ.....가..."


시작하기 전에 당황스러움에 가벼운 욕 한 번으로 친분을 과시해본 이수. 


"배가 물에 떠 있을 수 있는 건 부력 때문이야. 물체가 물에 뜨려는 힘. 우리가 알고 있는 중력의 반대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큰 배도 뜰 수 있는 거야."


생각보다 단순한 대답에 다소 실망한 문수. 어찌 보면 부력이라는 말은 어디선가 들어봤을 테고, 그 원리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세상에 궁금한 점들이 너무 많기에 부력을 파헤칠 시간까지는 부족했던 것이다. 언제나 과학적 접근보단 다른 접근을 선호했던 문수이기에 굳이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그런 문수가 다음으로 궁금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그럼 난 왜 못 떠?"


"그건..."


"나한테는 부력이 안 먹히나? 난 중력만 적용되는 사람인가 봐!!"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수의 세계이지만 이수는 이해하고 있었다. 친구니까. 그렇게 한참을 배와 부력에 대한 이야기를 농담반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종이 울렸다. 스피커를 쳐다보지 않아도 종은 이렇게 잘 울린다. 


"어렸을 때 물이 빠졌으니까, 그 트라우마 때문에 물이 무서운 거야. 부력이 안 먹히는 게 아니라..."


"두려움...? 갑자기 배 먹고 싶다!!!"


"가라, 너네 교실로-"


교실로 돌아가는 동안 문수는 생각이 많아졌다. 어렸을 적 물에 빠진 희미했던 기억 때문에 또렷해진 물에 대한 공포가 지금까지 본인이 해내지 못한 무수히 많은 것들 중 하나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깊어졌다. 혹은 할 수 있는 것도 시도조차 안 해보고 있는 건 아닐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김없이 만난 둘은 끝내지 못한 수다를 이어갔다.


"나 수영 배우려고!"


"갑자기? 너 물 무서워하잖아."


"그래도! 해보려고! 계속 무서워할 수 없잖아. 한번 빠진 걸로 지금까지 무서워서 못한다면 너무 억울하잖아. 살면서 실수도 있고 실패도 있는 거니까. 더군다나 난 단지 두려운 거지 실수나 실패도 아니었으니까.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 어때?"


"그래. 해라."


문수는 꽤나 큰 다짐을 한 모양이다. 


"두려움은 시작할 때 방해요소가 아니었어!"
"칫-이제야 부력이 먹히나 보다."


문수의 도전을 이수는 자신의 방법으로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열심히 해서 부력왕이 돼서 내가 직접 배도 만들어볼 거야! 엄청 큰 배농장도!"


"'농장'이 아니라 '공장'이겠지."





"음... 농장 맞는데. 먹는 배."


역시 문수에게 배는 '멋'있는게 아니라 '맛'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2.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