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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Mar 28. 2024

4. 하루

되는 일 없는 오늘이 될 것 같은 내일에게


시간을 분이나 초로 나누는 건 인간뿐이래.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가 잊을만하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돌고 돌아 생각이 멈추면 나도 모르게 시계를 본다. 그렇게 생각을 했건만 역시나 나도 인간에 불과했다니. 넘어가는 태양과 다시 뜨는 달이 반복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여기에서 시간을 분이나 초로 나눈다는 게 얼마나 나의 하루를 조급하고 초라하게 만드는지.

오늘도 찾아올 밤에 하루의 작별인사가 무엇일지. 돌아오지 않을 오늘이 내일에게 해줄 말은 없는지. 혹여나 할 말이 떠오른다고 한들, 쉿-잠시만. 무슨 말일지 알 것 같으니까. 당분간은 조용-





어김없이 찾아오는 시험기간. 문수는 여유로웠고 이수는 초조했다. 사실 둘의 성적차이는 크게 나지 않았다. 배우는 과목이 다른 부분이 있기에 서로를 비교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문수가 여유로울 수 있었던 건 낙천적인 성격 탓이 아니라 그저 공부에 관심이 없던 덕분이다. (이건 덕이지, 탓이 아니라- 암요)

이수는 문수보단 성적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시험기간만 찾아오면 둘의 온도는 확연하게 달랐다. 큰 차이가 있다고는 말했지만 누군가가 너무 저온이기에 평균온도가 고온이라 느낄 수도. 누군지는 말하지 않겠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란 것에 여러 가지 칸으로 나눠 그 또한 평등하게 배분을 하니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그렇게 각자 준비한 시간을 시험지에 쏟아부었고, 종이 울리자 각반의 1등에게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해답지보다 신뢰하는 1등 친구의 정답과 본인의 정답을 번갈아 보며 확인하는 아이들. 문수는 그런 모습이 재밌었다. 본인의 점수가 더 재밌을 걸 예상하지 못한 채. 꼬깃꼬깃해진 시험지를 서랍에 넣어두고 이수를 찾아 간 문수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넸다.


"코코팜(음료수) 뽑아 먹으러 갈래?"


"안돼. 마지막 시험 공부 해야 해."


아무리 문수라도 공부한다는 이수를 방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시험은 잘 봤어?"


"다 망했어. 열받아.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시험도 망치고."


'방해할 수 없었다.' 라고 말했지만, 어느 정도 방해가 된 것 같다. 그러자 문수는 이수의 등을 강하게 내려쳤다.


뭐 어때 하루이틀이야? 망친게!!!


그리고는 문수는 재빨리 도망갔다. 이수는 쫓아가서 혼내주고 싶었지만 아픔을 참고 이를 악물고 암기노트를 펼치고 다음 마지막 시험을 준비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시험이 끝났고, 힘없이 걸어가는 이수 뒤에서 장난을 시도하는 문수.


"하지 마라"


장난이 맥없이 실패했지만 문수는 즐거웠다. 시험이 끝났으니까 그거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이수는 곧 울 것만 같았다. 이 정돈 아니었었던 것 같은데 점점 성적에 예민해지는 이수. 그런 이수가 낯설지만 문수는 금세 적응 했다. 그리고 괜히 멋쩍은 웃음으로 툭 내뱉었다.


"참 불공평해. 시간을 꼭 정해야 하나? 다 풀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그럼 이수 너도 100점 받았을 텐데 말이야. 그지?"


깊은 한숨을 쉬는 이수.


"똑같은 시간을 주는 게 공평한 거지. 난 공부를 못한 거야. 100시간을 줘도 100점 못 받았을 거야. 전 과목 다 망쳤어. 되는 일이 없네 정말."


"되는 일이 없네 정말~~~"


비꼬듯 이수를 따라 하는 문수. 대꾸할 힘도 없다는 듯 그저 터벅터벅- 걸어가는 이수. 문수는 한 번 더 손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고 이수의 등에 내려쳤다. 순간 열받은 이수. 전속력으로 도망가는 문수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육두문자와 함께. 한참을 뛰었을까. 결국 붙잡히는 문수는 숨을 헐떡거리며 웃었다.


"후-후-후- 잡혔네."


"너 아까도 그러더니 왜 그런 거야 자꾸! 안 그래도 되는 일 하나 없는 사람한테! 약 올리냐!?"


"이건 됐네."


"뭐가?"


"나 잡는 거! 이거 하나는 된 거잖아. 안 되는 일 투성이 아니잖아. 안 그래? 오늘 하루를 망친게 아니라는 거야. 이수가 원하는 거 하나는 된 거야. 나 잡는 거.


문수의 가방을 꽉 잡고 있던 이수의 손이 스르륵-풀렸다. 헛웃음이었지만 문수의 아리송한 말에 조금은 납득이 갔다. 이 맛에 문수랑 친구하나보다. 하루를 나눈다는 것도. 되는 일이 하나 없는 하루에 소소하지만 이루어진 단 하나의 작은 일도. 어쨌든 우린 이런 시간 속에 살아간다. 넓게는 하루를 살아가고 더 광대하게는 내일을 살 것이며, 미래를 올려다본다. 과거의 시간을 내려다보며 끌어올려 수평선 위에 올려놓는다. 눈높이를 맞추고 나니 되는 일 없던 과거의 시간이 비로소 다르게 보인다. 이래서 과거와 현재, 미래는 어깨동무하며 같이 가는 베프(Best Friend) 인가보다. 마치 문수와 이수 같은.


이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무게를 잔뜩 실은 문수. 아파하는 이수는 문수를 장난스레 뿌리치며 말했다. 웃음과 인상을 오묘하고 교묘하게 섞어가며.


"한 번만 더 등짝 때리면 죽는다!!!"


"휴 오늘은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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