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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Aug 20. 2021

대통령의 검술선생 6

단편 소설

나는 힘의 우위를 확실하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 역시 힘의 논리에 의해 호전적으로 변했다는 반증이었다. 


두 번이나 경고를 받았으니, 세 번째 경고는 내가 할 차례였다. 나는 짚단 베기 시범을 준비했다. 조금 앞당겨진 것은 사실이지만, 원래 하려던 일이었다. 어떤 분야나 사람을 키우는 방법은 다음의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1. 말로 설명하고. 

2. 시범을 보여주고. 

3. 직접 시켜본 후에 잘못된 점을 고쳐준다. 


요즘은 말로 설명만 하는 가짜 선생들이 판치지만, 직접 시범을 보여줄 수 없으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정확히 어디로 가려는지 알아야. 제대로,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진검을 뽑는다. 비월. 사부가 물려준 검이다. 무슨 희대의 명검 같은 것은 아니다. 평범한 장인이 만든 평범한 칼이다. 다만, 사부가 50년이나 휘둘러서 바람에 갈고 닦여 어떤 명검보다 날카로운 예기를 갖고 있다. 


내가 진검을 들자 경호원들은 양복 상의 단추를 모두 푼다. 겨드랑이 밑에 총을 찬 사람들이 상의 단추를 푼다는 것은 언제든지 총을 뽑아 발사할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우선 3단으로 겹쳐놓은 짚단을 사선으로 벤다. 짚단은 내 예상보다 훨씬 깔끔하게 잘려 나간다. 대나무를 벤 것 같은 감촉이 손에 남는다. 생각해보니 ‘단칼에 베기’를 완성한 후로 짚단 베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 기술로 사람을 베면 어떻게 될까? 검을 휘두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생각이다. 나는 그 생각을 품은 채로 천천히 몸을 뒤로 돌린다. 뒤에 있는 5단으로 겹쳐진 짚단을 향하는 자연스러운 동작이지만, 그 짧은 순간 경호원들에게 살기를 보낸다. 


살기와 같은 무형의 기운이 진짜 존재하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생각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의형 살인이라는 경지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기백으로 상대를 움찔하게 만드는 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관찰 할 수 있는 사실이다. 무형의 기운을 감지하는 것은 경험이다. 화재 현장에서 폭발의 징후를 알아채는 소방관의 감각, 대형마트의 수많은 손님 중에 도둑을 찾아내는 형사의 직감, 군인은 자신이 죽을 위기를 맞았을 때 뒷목에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낀다. 무술을 오래 수련한 사람도 상대가 자신을 공격하려고 할 때, 어느 정도 미리 알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그동안 경험한 것들이 쌓여서 생기는 일종의 위기 대응 능력이다. 


경호원들은 내가 자신들에게 검을 휘두르려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죽고 대통령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그들의 대응은 신속하다. 영 점 몇 초의 짧은 순간에 두 명의 경호원이 총을 뽑는다. 


-움직이지 마. 칼 버려. 


경호원이 소리친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통령이 말한다. 


-대통령님 천천히 저희 뒤쪽으로 오십시오. 


또 한 명의 경호원이 말한다. 경호원들은 말을 하면서도 시선은 내게서 조금도 떼지 않는다. 


예상한 것보다 조금 과한 상황이 되었지만, 나는 멈출 생각이 없다. 이럴 때야말로 더 확실하게 결말을 지어야 한다. 


-일류 검객에게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지배한다고 믿는 공격 범위가 있습니다. 제 경우는 정면은 6미터, 등 뒤쪽은 3미터 정도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제 공격 범위의 중심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공간 안에서는 권총이 아니라 자동소총을 들고 있어도 저한테 이길 수 없습니다. 


나는 검신을 비스듬하게 돌리면서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강하게 살기를 쏘아 보낸다. 경호원들에게 순식간에 권총을 들고 있는 손목과 목이 잘려나갈 거라는 것을 알려준다. 


언젠가 아내가 은행 강도 얘기를 하다가 검으로 총을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거리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검으로 총을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동작 하나에 검이 닿는 가까운 거리라면 검이 승산이 더 높다. 사람이 총알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총구를 피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총알은 언제나 총구가 향하는 곳으로만 날아오니까. 반면 검은 손목의 작은 움직임으로도 무한하게 궤도를 바꿔 휘두를 수 있다. 


-셋을 세겠습니다. 그 안에 총을 내리지 않으면, 두 분은 죽습니다. 하나, 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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