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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갑수 Aug 23. 2021

대통령의 검술선생 7

단편 소설

-셋을 세겠습니다. 그 안에 총을 내리지 않으면, 두 분은 죽습니다. 하나, 둘. 


내가 말한다. 경호원들의 뺨을 타고 땀이 바닥에 떨어진다. 거의 동시에 두 명의 경호원은 사격 자세를 풀고 총을 내린다. 그들이 권총집에 총을 집어넣는 것을 확인한 후에 나도 비월을 검집에 꽂아 넣는다. 


-차 실장 호출하고, 두 사람도 따라 오세요.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있어야 할 겁니다. 선생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대통령이 말한다. 평소의 온화한 표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다. 나는 잘못한 것도 있고 해서, 사부에게나 하던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 채 하는 포권지례로 답한다. 



청와대 경호실장은 아마도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맡을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맡겨야 하니까. 차 실장은 전체적으로 웃는 상이었는데, 눈빛만 날카로웠다. 그는 꽤 부드럽게 상황을 정리했다. 


대통령의 신변을 우려한 경호팀의 과잉대응으로 인한 해프닝. 


공식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비공식적인 보고서에는 그런 문장이 적혔다. 


-죄송합니다. 진검으로 하는 연무 시범을 처음 봐서 저희가 실수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놀라서 무례하게 행동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총을 뽑았던 경호원 두 명과 나는 대통령 앞에서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악수를 했다. 뭔가 격식을 차리고 사과를 주고받는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실상 우리의 모습은 주먹다짐을 한 후에 담임선생님 앞에서 억지로 포옹하는 고등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 싸움은 나의 판정승이었다. 경호원들은 감봉을 받았고, 나는 구두 경고로 끝났다. 무엇보다 경호원들에게 공포와 힘의 우위를 각인시켜줬으니 앞으로 어설픈 위협 같은 것은 사라질 것이다. 그날 이후로 경호원들이 수업을 참관할 때 와이셔츠 안에 얇은 쇠사슬로 짠 방검복을 받쳐 입고 오는 것만 봐도 그들이 나를 얼마나 경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검은 승부가 명확하다. 서 있는 사람이 승자고, 바닥에 쓰러진 사람이 패자다. 하지만 정치는 승패가 명확하지 않다. 모든 승부가 계속 누적되어 다음 싸움으로 연결된다. 후일을 위해 져주는 경우도 많다. 나는 그냥 칼싸움을 했고, 차 실장은 정치를 한 것 같다. 그는 내가 한 말을 문제 삼아 나를 감옥에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나를 써먹기 위해 자기들이 모든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마무리했다.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앞두고 차 실장이 나를 자기 방으로 불렀을 때,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순방 중에도 수업을 하라는 뜻입니까?


차 실장이 유럽순방에 동행해달라고 해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럴 여유는 없을 겁니다.


차 실장이 대답했다. 


-그럼 전 뭘 하죠? 

-순방 기간 동안 대통령님 바로 옆에서 수행만 하시면 됩니다. 이걸 들고. 


차 실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잡이가 수정으로 된 지팡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들어보니 비월과 무게와 길이가 완전히 똑같았다. 길이야 눈대중으로 맞출 수 있다고 해도, 들어본 적도 없는 내 검의 무게를 알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이 만만한 곳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CIA에서 극비리에 경고가 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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