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시끄러워!
[ 유재석보다 말이 많은 할머니 ]
조현병에 걸린 할머니의 증상 중 한 가지는 바로 중얼거린다는 것이다. 속삭이는 정도의 목소리가 아니라 정말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혼잣말을 하는 게 할머니의 병이었다. 혼잣말의 내용은 주로 할머니의 트라우마와 관련되었다. "내 돈 내놔."
가끔은 할머니가 하는 말들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들이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고는 했다. 누나와 나는 가끔씩 자조적으로 할머니가 뱉은 말들을 기억하고 서로에게 상황극을 하듯이 이야기하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해학의 민족으로 태어나서 어쩔 수 없나 보다. 할머니가 우리 집의 방 한 칸을 차지하게 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누나와 함께 자게 되었다. 사춘기로 가뜩이나 예민한 두 명이 한 방에 모여 잤었다. 주로 누나가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었다. 그래도 바닥 보일러가 따뜻해서 아침에 포근한 이불속에서 일어나 잠에 몽롱하게 취했던 기분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에, 누나와 나는 자기 전에 대화를 많이 했다. 주로 내가 질문을 하면, 누나가 답변을 하는 방식의 대화였다.
- 누나 자?
- 안 자. 이제 잘 거야.
- 우리도 나중에 늙으면 할머니처럼 아프겠지?
- 몰라. 꼭 그렇지는 않을 거야.
- 할머니는 근데 왜 저렇게 되었을까?
-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그래. 그러니까 너도 스트레스받지 말고 살아. 이제 잘 거니까 말 걸지 마. 잘 자.
[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가족 ]
사춘기 소년답게 중고등학생 때 나는 스스로가 제일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나만큼 불우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없을 거야. 어린 시절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고 어쩔 때는 나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한테 막 자랑하고 싶어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실제로는 정말 소중한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내 공격의 화살은 주로 엄마를 향했다. 왜 할머니를 데려왔어? 할머니랑 같이 살기 싫어. 너무 괴로워. 우리 집은 너무 불행해. 이런 말들을 엄마에게 쏟아내듯이 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더한 집도 많다고, 우리 가족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는 말로 항상 대답했다.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그때의 엄마는 그냥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닥친 상황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던 중이었다는 것을.
엄마는 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방에서 나가 거실에 가면 엄마가 손수건을 들고 우는 것을 보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를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지 몰라 조용히 방에 다시 들어가거나 엄마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엄마는 나한테 가끔 본인의 불행과 우울을 토해내듯이 말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 나는 엄마가 중얼거리는 할머니 같다고 생각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겠지. 엄마는 그 당시에 감정을 쏟아내야만 버틸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어린 나이에 그걸 받아내던 나는 그 횟수가 늘어나자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그냥 다 너무 시끄러워.
안녕하세요. 치매 할머니의 손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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