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에는 정답이 없어
[ 돌봄에는 정답은 없어 ]
아기를 키울 때 가족마다 양육 방식이 다른 것처럼 치매 환자를 대하는 것도 모든 가정마다 각각의 사정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를 것이다. 치매의 증상은 너무 다양하다. 증상이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면 좋겠다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치 스펙트럼 같이, 어제와 오늘의 증상이 엄청나게 다르다. 그래서 치매 환자의 가족은 더 힘든 것 같다.
치매 환자는 아기로 돌아간 것이라고 말하는데, 몸무게가 두 자리가 넘어가는 아기가 어디 있을까? 당연히 아기보다 돌봄의 난이도가 훨씬 어렵다. 기저귀를 갈기 위해서는 데드리프트를 하는 것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할머니를 뒤집어야 한다. 우리 할머니는 계속 움직이는 사람이어서 그러지는 않았지만, 몸을 스스로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노인의 경우에는 누군가 계속 뒤집어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기기도 한다. 그다음에는, 욕창이 패혈증으로 심해져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늙는 것이 참 두렵다. 모두가 건강하게 늙고 싶겠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게 해 달라는 소원만큼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이다.
의사들은 가족 중에 정신질환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평소에 잘 돌봐주고 지지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아픈 사람에게 계속 신경을 쓰다가 어느새 나도 마음의 병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만큼, 환자를 위한 가족의 정신적인 연대에는 스스로를 소진할 정도의 엄청난 노력이 든다. 너무 힘이 든다면 환자의 가족도 심리 상담 같은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고 이외에도 숨을 돌릴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많이 만들어둬야 한다.
[ 미니멀리스트가 된 할머니 ]
할머니의 또 다른 증상 중 한 가지는 물건을 계속 버리는 것이었다. 본인의 물건만 버린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계속 우리 가족의 물건을 버리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하루는, 할머니가 나의 교정기 유지 장치를 버려 엄마와 함께 동네의 쓰레기 보관통에 가서 그것을 찾기도 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쓰레기통에 들어갔다가 나온 유지 장치를 다시 끼기가 너무 싫었다. 그때의 할머니는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는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치매 환자의 가족에게 돌아다니는 치매 환자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 날이었다.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때의 엄마는 할머니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할머니는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집에 가자." 할머니 우리 이미 집에 있는데 도대체 어떤 집을 가자는 거야? 엄마는 떠나고 싶은 할머니의 욕구를 이용해서 할머니에게 집에 가자고 이야기를 하고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아들에게 포경 수술을 시키기 위해서 돈가스를 먹으러 가자고 했던 그 시대 엄마들의 전략을 변형해서 사용했다. 병원에서 조현병 약을 처방받았지만 할머니는 항상 약을 복용하는 것을 거부하여, 엄마는 밥이나 반찬에 약을 섞어 넣기도 했다.
할머니는 조현병이 심해지면서 파킨슨병도 같이 앓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제 중얼거리면서 손까지 떨기 시작했다. 내 물건을 숨기고 버리는 할머니가 미우면서도 떨리는 할머니의 손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의 손을 잡으면 내 손도 같이 떨렸다. 그때의 우리 가족은 모두 떨고 있었다. 집이 더 이상 집처럼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집에 있으면 불편하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었다. 할머니도 우리 집이 불편했겠지. 그래서 그렇게 집에 가자고 여러 번 말을 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치매 할머니의 손자입니다.
과거의 시간을 더듬더듬 기억하기 위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 브런치를 구독하고,
브런치북 <치매 할머니와의 불편한 동거 생활>에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글을 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매주 3회 글을 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