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할머니와의 불편한 동거 생활

지금은 말할 수 있다. 할머니랑 사는 게 싫었어!

by 최손자

[ 할머니의 정신병을 받아들인 엄마 ]


엄마가 드디어 할머니가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할머니는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먹고 다시 건강한 사람이 되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이런 결말이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실은 언제나 영화보다 더 지루하게 비참하다. 영화는 엔딩이 있지만 현실은 죽음이 아니고서야 결말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병원을 가자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할머니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병원은 내가 아니라 네가 가야지."


시간이 오래 흘러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는 할머니에게 외출을 하자고 하고 할머니를 병원에 데려갔던 적도 있었고, 병원에서 사람을 불러 반강제적으로 끌고 간 적도 있었다. 할머니의 병명은 '조현병'이었다. 가끔 지하철을 타거나 걸어 다닐 때 혼자서 계속 중얼중얼거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조현병 환자이다. 초기에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내가 정신과 의사는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다. 정신 질환의 특성상 환자들은 대부분 여러 증상을 다채롭게도 겪는다. 할머니한테서는 주로 망상과 욕설을 동반한 분노 표현, 이외에도 망상에서 비롯된 여러 증상이 나타났다.


혼자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 가까웠던 할머니는 그렇게 병원에서 정신 장애 판정을 받았고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조현병 환자와의 불편한 동거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 할머니에 대하여 쓴 과거의 글 중 일부 ]


할머니가 우리 집에 왔다. 엄마는 할머니가 우리 가족과 함께 당분간 살아야 한다고 했다. 항상 중요한 일이 있으면 가족과 상의를 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입버릇처럼 말하던 엄마가 규칙을 어겼다.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다는 나와 누나의 소원은 몇 년째 무시했던 엄마가 할머니를 갑자기 데려와서 미웠다. 기숙사에서 살고 있어서 비어 있는 누나의 방에 할머니의 짐이 들어왔다. 원래 할머니 방이었던 것처럼 누나 방에 가면 할머니와 할머니의 것들이 보였다. 할머니가 혼자 살던 집에 놀러 가면 볼 수 있던 것들이 이제는 우리 집에 있었다. 누나는 금요일 저녁이 되면 기숙사가 아니라 집으로 왔다. 집에 가자 자기만의 방이 사라진 것을 안 누나는 어쩔 수 없이 내 방에서 함께 잤다. 우리 둘은 괜히 서로한테 짜증을 냈다. 나는 밤마다 트는 시디플레이어를 꺼내지 않았고 누나는 밤마다 하는 친구와의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았다. 누나는 그다음 금요일부터 집에 돌아오지 않고 기숙사에서 잔류를 했다.


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들이 많았다. 친구가 밤 열 시가 넘어도 중학생이 게임하는 것을 막지 않는 피시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지금은 밤 열 시가 되면 칼 같이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것 같다. 피시방에서 좋아하는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다가 질리면 등록한 독서실에 가서 책을 읽었다. 피시방은 밤 열시만 되어도 못 들어가게 하면서 독서실은 상관없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나름대로 죄책감을 덜어보려고 외고 입시생을 위한 문학 리스트에서 본 책들을 독서실 책장에 넣어놨다. 학교 도서관에서는 이미 누가 빌려간 것인지 찾을 수 없던 책들은 동네 도서관에서 대여했다. 리스트에는 한국인 작가들이 별로 없었다. 조지 오웰, 헤밍웨이, 다자이 오사무, 박완서, 알베르 카뮈, 로이스 로우리, 장자크 루소. 초등학생 때 ‘자전거 도둑’을 읽은 것이 기억나서 주로 박완서 작가의 책들을 읽었다. 박완서 작가의 문장들을 읽으면 이상하게 엄마랑 할머니가 떠올랐다. 가족을 생각하기 싫어서 책을 읽은 것이었는데 글들을 눈으로 보고 뇌에서 처리하기 시작하면 항상 가족이 출력값으로 나왔다. 고장 난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가족이 떠오르면 책을 덮고 다시 피시방으로 향했다. 방향키를 뽑아버린 키보드로 성장형 게임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할머니의 술빵 ]


너무 할머니에 대하여 안 좋은 말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할머니는 사실 아파서 그랬던 것인데 그 시절의 나는 할머니가 너무 미웠고 할머니한테서 계속 사과를 받고 싶었다.


할머니가 혼자 살던 시절에 나랑 누나는 할머니 집에 자주 놀러 갔다. 가기 전에는 항상 가기 싫다고 떼를 썼던 것 같은데, 막상 할머니 집에 도착하면 알 수 없는 포근함이 있었다. 항상 텔레비전을 켜두는 할머니는 나와 누나가 놀러 오면 계란프라이와 스팸을 만들어 주셨다. 프라이와 스팸이 담긴 접시에는 항상 케첩이 정말 많이 담겨 있었고, 밥을 다 먹고 나면 할머니는 항상 술빵을 만들어 주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가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을 때마다 이걸 정말 내가 먹어도 되는 게 맞는지 물어봤었다. 그때 할머니는 어떻게 대답했더라?



안녕하세요. 치매 할머니의 손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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