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미스터리가 되는 방식
이 영화를 보고 난 정리할 수 없었다. 분명 머리는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로 합칠 수가 없었다. 나는 영화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낼 수 없었다. 분명 이 영화는 여러 인물들이 분열적으로 등장한다. 어떤 상황인지는 비교적 빠르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검은 화면 위 어린아이의 보이스오버로 설명된다. 나는 한 반에서 열일곱 명의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무도 그 일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것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어느 날 새벽 2시 17분에 벌어졌다는 것을 안다. 몇몇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집을 나서는 모습이 CCTV에 찍혔지만,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집을 나갔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이야기는 이미 영화 시작과 함께 모든 상황을 제시한다. 어려운 것은 없다. 아이들이 사라졌고, 누굴 탓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실종된 아이들의 반 담임인 저스틴 갠디(줄리아 가너)를 시작으로, 저스틴과 불륜 관계인 마을 경찰 폴 모건(올든 에런라이크), 사라진 아이 중 한 명인 제이콥의 아버지 아처 그래프(조시 브롤린), 마약 중독자 제임스(오스틴 에이브람스), 그리고 반에서 유일하게 실종되지 않은 아이 알렉스 릴리(캐리 크리스토퍼)가 차례로 등장하며 이야기를 꿰매나간다. 아니, 그들이 꿰매는 것일까? 사건은 이미 발생했고, 그들은 그 뒤를 따라가며, 그 속에서 꿰매어지는 듯 보인다.
영화는 이미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많은 사람이 포기하려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마을 회관에 모인 부모들과 학교 관계자들, 그리고 선생님인 저스틴은 서로 불신 속에서 논쟁한다. 부모들은 그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고, 저스틴은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털어놓을 능력이 없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그리고 고함치는 제이콥의 아버지 아처 그래프의 앞에서 그녀는 무력해 보인다. 그녀는 감정적으로 몰린 상황 속에서 마을 사람 모두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낀다. 그녀의 상황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저스틴에게 공감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녀는 스트레스로 술을 마시고, 조심성이 없으며, 스스로의 생각에 갇혀 주변을 살피지 않는다. 교장 마커스 밀러(베네딕트 웡)와의 대화에서 그녀는 “내가 편하기 위해” 알렉스와 대화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마커스가 이를 지적해도 깨닫지 못한다. 그 대화 속에서 그녀는 아이들과 과도한 애정을 주고받아 문제를 일으킨 인물로 암시된다. 차에 붉은색으로 “마녀”라는 글씨가 적힌 사건을 신고하러 경찰서에 간 저스틴은, 그곳에서 폴을 만나 문자를 보내고 그를 불러내어 술을 마시게 한다. 그녀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적이고, 때로는 피해망상처럼 보일 만큼 불안하다. 나는 그녀가 겪었을 일들을 짐작하며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영화 속 생략된 시간들은 나로 하여금 그녀를 단번에 술 문제를 가진, 예민하고 두려움에 휩싸인 교사로만 인식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다른 인물들도 이런 방식으로 감정적으로 분리시킨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폴도, 부인과 장인이자 상사인 에드 로크와의 관계 속에서 버티기 힘들어한다. 그는 부인이 집을 비운 사이 바람을 피웠고, 부인이 예상치 못하게 돌아오자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한 채 들키고 만다. 그가 자신에 부인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는 생략되었지만, 영화는 바로 직전 저스틴 구간의 마지막 장면인, 그녀가 어떤 여자에게 공격당하는 순간에 그 여자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그녀가 외치는 "내 남편과 잤냐"라고 외치는 소리에 그가 어떤 말을 했을지를 암시한다. 폴은 스트레스를 바람을 피우고 범죄자에게 표출하는 비정상적 분노로 풀어낸다. 저스틴이 술로 감정을 풀었다면, 폴은 불법적인 마약 중독자 제임스를 대상으로 삼는다. 그는 저스틴에게 저스틴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몰아붙이지만, 스스로는 폴처럼 행동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사건의 당사자이자 부모로 등장하는 아처 그래프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아들의 실종에 집착하는 그의 행동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이해 가능한 모습이다. 그는 아들의 방에서 잠을 자고,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을 꿈속에서 후회한다. 그도 저스틴과 폴처럼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지만, 부인과의 감정적 단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장 상황이 설명된 인물이며, 가장 논리적으로 사건에 맞서고, 가장 적극적으로 진실을 파헤친다.
이 영화가 취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미스터리 영화에서 실종·수사 서사의 해법과는 거리를 둔다. 전형적인 무고한 인물과 슬픔을 분노로 상승시키는 인물, 그리고 아무 관련이 없으나 뜻밖에 비밀을 드러내게 돕는 인물 등이 나오지만, 이 영화는 공포 장르가 진범의 정체,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 그리고 단죄 혹은 혹은 사회적 결말이라는 형태를 따라가면서도,《Weapons》는 그 종착점을 거부한다. 영화는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을 하나의 ‘해결’이 아닌 연쇄적인 분절로 구성하며, 이는 다중 시점 구조와 감정적 단절을 통해 관객의 해석을 계속 미루게 한다. 비록 "악당"은 영웅과 같은 모습으로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에 의해 죽음을 맞지만, 아이들은 의식이 없고 그들의 행위는 숨어있는 누군가의 용기로 인해 해결된다. 이러한 서사 전략은 최근 호러·미스터리 장르에서 나타나는 ‘탈해결형 구조’, 즉, 공백을 유지한 채 관객의 체험을 연장하는 형식 실험과 맞닿아 있다. 《Weapons》에서는 이 공백이 단순한 누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물의 시선과 시간 조각이 맞물리며 만들어지는 불안정한 리듬 속에서 구현된다. 영화는 지속적으로 한 인물의 장면을 생략하고, 그 빈자리를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메운다. 마치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모든 디테일을 담지 못하는 감각처럼, 이곳저곳이 비어 있고 다른 장면에서 채워진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마지막을 어떻게 맺을지 궁금했다. 아이들이 왜 사라졌는지, 과장된 분장과 장식으로 나타난 여자는 누구인지, IT의 광대 같은 이미지의 인물은 무엇이었는지, 아이들과 교장이 무엇에 씌인 듯 달려가는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알렉스의 고모 글래디스 릴리(에이미 매디건)가 마침내 드러났을 때, 그녀가 무엇을 위해 모든 일을 꾸몄는지 알고 싶었다. 글래디스는 영화 전반에서 조각들로 꿈과 그림자 속에서 시선을 분산시키다가, 후반부 교장과의 만남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나무와 결합된 듯한 공간에서 알 수 없는 의식을 행하며, 사람들의 의지를 지우고, 생명력과 정신을 흡수해 스스로를 연명하는 존재로 암시된다. 영화는 과연 설명해 주었는가? 자극적이고 과도한 글래디스의 “분열적” 마지막과 함께, 나는 여전히 그녀가 누구였는지 묻는다. 글래디스가 쓰러진 뒤에도 이 영화는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아처가 아들을 안고 걸어가는 장면에서, 제이콥의 눈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했던 아이의 목소리는 몇몇 아이들이 말을 되찾았다고 말하지만, 남은 인물들의 표정은 결론이 아니라 공백을 향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돌아왔으나 눈빛은 닫혀 있고, 폴은 죽었으며, 알렉스의 부모는 정신적으로 붕괴되어 요양 시설에 보내졌다. 알렉스는 “좋은” 이모의 집으로 간다. 재회는 형식만 남았고, 사건은 해결되었으나 원인은 여전히 흐릿하다. 그것은 마치 희미한 꿈의 마지막 장면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이 영화가 끝까지 서사의 매듭을 풀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그렇게 흐릿하게 보였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미스터리를 푸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이 미스터리가 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각 인물은 서로의 서사를 메우듯 등장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빈틈을 드러내며 사라진다. 생략의 틈은 사건의 전모를 가리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며, 그 틈새에서 관객은 완결된 결말이 아닌 파편화된 사건들을 붙잡게 된다. 영화의 시작처럼 이 이야기는 비밀로 남아, 그 마을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 나는 스크린 너머에서 저스틴이 폴의 시신을 안고 있던 것, 아처가 제이콥을 안고 있던 것, 알렉스가 부모를 안고 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안겨 있던 사람은, 안고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 보지 못하는 얼굴들이, 이 영화의 남은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팔과 어깨, 닿아 있는 살결은 서로를 감싸지만, 처음의 검은 화면, 아이의 목소리,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새벽 2시 17분, 그 순간 이후로 모든 것은 서로를 향하지 않고 흩어져 있다. 나는 영화의 처음처럼, 미스터리는 결말로 수렴하기 전에 이미 파편으로 흩어져 있고, 장면들은 끝까지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기분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