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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와 게이지 Apr 29. 2024

서른여덟 또는 마흔, 쓰기와 뜨기.

벚꽃 사진 찍는 마음.


 나이 들면 꽃이 좋아진다던데, 카카오톡 프로필화면이 꽃사진이면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던데. 지금 내 나이를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나 싶다가도, 내가 언제부터 꽃을 좋아했더라.. 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영 맞지 않는 말 같기도 하다.


 스무 살 첫 연애 때 받은 장미꽃다발의 색이 흰색인지 파란색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해도 그때 내가 많이 기뻐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고, 대학 동기들의 제안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섰던 진해 군항제에서 흩날리는 벚꽃들을 맞닥뜨렸을 때의 그 황홀함도 생생히 기억한다.  원동 홍매화를 보러 친구들과 기차 타고 간 적도 몇 번이나 있다. 이게 모두 20대 때의 일이니 새삼 지금 내 나이 때문에 벚꽃이 좋아지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정말 스무 살 이전에는 내가 꽃을 좋아하는 줄 모르고 살았다. 어쩐지 그때는 꽃처럼 어여쁜 것보다도 실용적인 것이 더 갖고 싶었다. 꽃 보러 가는 시간보다도 영화 보러 가는 시간이 더 좋았고, 쇼핑하러 가는 시간이 더 좋았다. 그런데 대학동기들의 손에 이끌려 갔던 진해에서의 벚꽃 구경이 나를 바꿔놓은 것이다. 벚꽃구경은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속에서 과장되어 등장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내 눈앞에 온통 분홍빛 띈 하얀 꽃잎들이 눈꽃처럼 날리는 것을 보니 그 순간만큼은 현실인지 영화 속 한 장면인지 분간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후부터는 캠퍼스 안에 홀로 외톨이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벚나무의 떨어지는 꽃잎을 봐도 어여쁘게 느껴지고, 집 근처 산책길 옆에 늘어선 가로수였던 벚나무들을 봐도 그저 예쁘고 황홀했다. 혼자 걷던 퇴근길에 나만 차가 없다고 투덜거리기 일쑤였는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 계절만큼은 어쩐지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 길을 음미하듯 평소보다 천천히 지나가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참 많이 보였는데, 그래서 가을이 되면 노란빛으로 물든 길이 그렇게 분위기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가로수가 벚나무로 많이 바뀌었다. 그만큼 이제는 어딜 가도 흔하게 벚꽃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슈퍼 가는 길에도 볼 수 있고, 친구집에 놀러 가는 길에도 볼 수 있다. 결혼 전 살던 친정집이 오래된 아파트 단지인 덕에 아주 큰 벚꽃나무들이 많아 그렇게 장관일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굳이 벚꽃구경이라고 이름 붙여서는 벚꽃명소를 찾아간다. 사람이 북적여서 예쁜 사진 하나 건지기도 수월치 않은데, 그래서 어떨 땐 드라이브하며 차 안에서 구경하고 끝낼 때도 있는데도 그런다.


 이번에도 굳이 아이를 태우고서는 세 가족이 집 근처 공원에 벚꽃구경을 하러 갔다. 아이가 어릴 때는 집밖으로 안 나가려 해서 꽃구경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어떻게 살살 꼬드겨서 벚꽃나무가 있는 곳까지 갔다가도 주차장에서 차에서 안 내리겠다고 생떼를 쓰는 바람에 도로 집으로 돌아간 것이 작년의 일이다. 그래도 올해는 아이가 조금 컸다고 꽃구경하자는 제안에 흔쾌히 승낙해 준 덕에 전번보다는 수월하게 공원까지 왔다. 주차도 하고 차에서 내려 손도 잡았다. 벚꽃길을 향해 손을 잡고 걷는데 날이 따뜻해진 덕에 날파리인지 꿀벌인지 아무튼 벌레들이 꼬인다.


 "엄마! 벌이야!"

"에이~ 아니야 날파리야~ 날파리는 괜찮아~ 빨리 지나가면 돼~"

 "아니야, 싫어! 벌레잖아! 싫어!!"

"엄마랑 합체해서 뛰자!!"

"아니야~ 우리 차로 도망가자!"


 자꾸 차로 도망가자는 아이를 업어준다고 꾀고, 사진 찍자고 정신을 분산시키고, 둘 다 안 통할 때는 그냥 나 혼자 냅다 뛰어버렸다. 남편은 멀찌기서 오는지 안 오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렇게 애랑 둘이서 투닥거리며 그래도 결국 벚꽃 있는 곳까지 왔다. 마지막엔 결국 아빠한테 전화해서 차로 데리러 오자고 하겠다고 했는데, 전화하면서 뒤돌아보니 남편이 보인다. 그래서 마지막제안은 하나마나한 제안이 되었고, 온 김에 실컷 동영상촬영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아이와 벚꽃이 함께 있는 풍경이 어쩜 그리 마음에 드는지! 들뜬 기분으로 내 사진도 찍었는데, 아무래도 당장 다이어트를 시작해야만 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한 컷 남겼다.


 아이와 실랑이를 하며 온 길을, 또다시 업어가며 뛰어가며 되돌아갔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지만 그래도 올해는 성공했다는 기분으로 벚꽃터널을 드라이브하며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다. 20대 그때는 예쁜 곳을 가면 늘 내 사진을 찍었는데, 아이를 낳고는 늘 아이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꽃이 좋지만 혼자는 보러 가지 않는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벚꽃이 예뻐서 구경하러 가기도 하지만, 예쁜 곳을 보여주고 싶어 가기도 하는구나 싶다.


 아이가 자라서 휴대폰을 가지게 되고 나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주고받게 될 때쯤, 아무리 꼬시고 협박해도 같이 꽃구경을 가지 않게 될 때쯤, 그땐 나도 어여쁜 벚꽃사진으로 프로필화면을 채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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