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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와 게이지 May 14. 2024

서른여덟 또는 마흔, 쓰기와 뜨기.

함께 뜨는 마음.

 '함뜨'라는 단어를 알까? SNS를 활발히 하는 뜨개러가 아니라면 아무리 뜨개를 오래 했어도 알기 힘든 단어일 수 있다. '함께 뜨기'의 준말로 보통은 무료지만 종종 유료로 진행되기도 하며, 기간을 정해놓고 여러 명의 뜨개인들이 각각 기간 안에 작품을 완성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보통은 주최자가 도안을 유료 또는 무료로 제공하고, 간혹 도안은 각자 구비하고 기간 안에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에게 경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함뜨에 참여하는 사람은 도안을 제공받았기 때문이라거나, 완성해서 경품을 받기 위한 조건 충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작품을 완성해야 하고, 그 후에 '인증'을 해야 하는데, 보통 '인증'이라는 것이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것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오래 뜨개를 했더라도 SNS활동을 하지 않으면 알기 힘든 용어인 것이다.


 나는 독학으로 뜨개에 입문했기에, 처음부터 온라인검색을 줄곧 많이 했었다. 뜨는 방법도 유튭을 통해서 보고 배웠고, 갖고 싶은 도안들도 온라인에 떠도는 무료도안 중에서 골랐다. 뜨개에 몰입할수록 점점 더 많은 도안을 갖고 싶어 져서 책도 많이 샀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뻐 보이는 모든 도안을 가질 수는 없었다. 도안을 찾아 헤매는 뜨개인들이라면 모두 핀터레스트를 알 테지만, 그곳에서 조차 갖고 싶은 도안을 다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대체 저렇게 예쁘고 멋진 것을 이 사람은 어떻게 뜬 것일까 궁금해질 때 가끔씩 운 좋게 '함뜨'가 열린다. 그 예쁘고 멋진 것을 내가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뜨개초보 시절에는 아는 것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라 웬만한 함뜨에는 손을 들었다. 그때는 아이도 없을 때라 웬만하면 기간 안에 인증할 수 있었다. 많이 떠서 주최자의 눈에 띄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시간 날 때마다 주야장천 똑같은 것을 몇 개씩이나 뜰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랑은 상황이 변해버렸다. 조금 뜰 줄 안다 싶다 보니 더 잘 뜨고 싶어 져서 뒤늦게 공방에 다니게 되었고, 그때는 없던 귀엽고 멋지고 보석같이 반짝거리는 그리고 쉬지 않고 엄마를 찾고 말을 거는 아이도 생겼다. 예쁘고 멋지고 새로운 것들은 계속해서 나오는데 그런 것들을 만들 시간이 현저히 부족해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함뜨에 참여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아무리 예뻐도 내가 정말 기간 안에 뜰 수 있을까를 몇 번이고 곱씹어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마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주최자와의 약속을 깨뜨리는 사람이 될 바에는 약속을 하지 말자. 아쉬워도 이번에는 그냥 넘기자. 그렇게 지나쳐버린 함뜨와 이벤트들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보통은 그렇게 잘 참고 넘기는데, 그렇게 넘기지 못할 때는 정말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분명히 인증기간이 넉넉해서 무리 없이 다른 일과 병행해서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끝까지 헉헉대다가 턱걸이로 인증하고 만다. 그걸 알면서도 눈앞에서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도일리를 보고 있으면 포기할 수가 없다. 특히 꽃이 들어간 도일리를 보면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줄을 서는 편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꽃이 들어간 도일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정녕 모를 일이다. 그런데 뜨고 나면 보기만 해도 예쁘고, 인증하겠다고 SNS에 올리면 예쁘다는 칭찬에 입꼬리가 승천하니 이것이야 말로 중독이지 싶다.


 이번에도 그렇다. 기간이 한 달이나 되다니 진짜 충분히 여유롭게 뜨고도 남겠다 싶어, 평소에 꼭 뜨고 싶던 도일리의 함뜨소식에 손을 번쩍 들었다가 마감당일까지 레이스바늘을 부지런히 놀려야 했다. 마감당일에는 어버이날을 위한 친정행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그 전날까지 모두 떴어야 했건만, 그 전전날부터 새벽에 두 시간 낮에 두 시간씩 떠도 완성을 못해서 친정으로 출발하는 날에도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 반을 뜨고, 짐을 싸서 4시간에 걸쳐 도착한 친정에서도 장장 2시간을 꼼짝 않고 떠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해지기 직전이라 얼른 사진 찍어야 한다는 마음에 실정리도 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 인증을 했다. 그러고 나니 어찌나 마음이 가볍던지. 인증하기 위해 동동거렸던 마감전 일주일은 정말 잠들기 전에도 눈뜨고 난 직후에도 늘 함뜨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 뜨고 인증까지 하면 마음이 그렇게 후련하고 뿌듯할 수가 없다. 간혹 배색이 마음에 안 드는 경우에는 조금 찜찜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체로 내 새끼같이 예쁘고 곱다. 문제는 벼락치기다. 미리미리 떠놔도 예쁜 건 똑같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꼭 벼락치기를 하게 되는 걸까. 성격이 느긋하고 여유롭다고 말하기에는 나는 오히려 조급한 성격이 아니었던가?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잘 뜨고 싶다는 마음, 좀 더 예쁘게 뜨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 것만 같다. 색다른 실을 써보고 싶은 마음. 멋진 배색을 하고 싶은 마음. 인증사진을 멋지게 찍고 싶은 마음. 그 마음들이 뜨는 내내 집중을 흐트러 뜨리고 고민하게 만든다. 잠시 손을 쉬고 이 생각 저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다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는 진행이 빠르지만,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데 욕심만 솟구칠 때는 그렇게 손이 느려진다.


 그래도 함뜨 해서 다행이지 싶다.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미인증에 대한 페널티가 없었다면 내가 과연 완성할 수 있었을까? 너무 잘하고 싶어서 뜸만 들이다가 완성하지 못했을 게 눈에 뻔하다. 예쁜 걸 뜨고 싶어 모아놓은 책이 몇 권인가? 그중에서 내가 뜬 건 얼마나 되는지.. 예쁘다고 산 키트도, 예쁘니까 뜨기 시작한 도일리도 나 혼자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았다. 박스에 고이 들어간 문어발들만 봐도 그렇다.


 함뜨는 스트레스와 바늘노동으잠 못 이루는 밤도 주지만 어여쁜 도일리라는 결과물도 함께 준다. 내가 뜬 것뿐만 아니라 함께 뜬 이들의 결과물을 감상하는 일도 내 눈이 호사를 누리는 듯 구경만으로도 즐겁다. 내가 시간이 없다며 투덜거리면서도 함뜨를 놓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 혼자서는 못 할 일들을 함께라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뜨개판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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