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 May 12. 2024

북극에서 온 손님

May 10, 2024 _ Coquitlam BC, Canada


오로라(Aurora)는 태양의 전기를 띤 입자들이 태양풍을 타고 지구의 대기로 들어가, 가스(산소 및 질소)와 충돌할 때 지구 북반구, 혹은 남반구에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북반구에서 발생한 오로라를 북극의 빛(Northern Lights) 혹은 오로라 보레알리스(Aurora Borealis)라고 부르는데, 이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아우로라’와 그리스어로 '북풍'을 의미하는 보레아스(Boreas)를 합친 단어입니다.


캐나다 북쪽 지방에서는 일 년 내내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데 특히 '옐로우나이프(yellowknife)'는 오로라로 유명한 곳이라서 꽤 많은 사람들이 오직 오로라를 보려고 그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로라는 날씨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매번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해요.


그런데 이번에 북미나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게 된 이유는 얼마 전에 태양의 흑점이 수차례 폭발하면서 발생한 강력한(G4) 태양의 폭풍 북극과 남극에 있던 오로라를 확산시켰기 때문입니다. 오로라는 바라볼 때는 그저 신비롭고 아름다운 현상이지만 영향력이 심한 경우 전력이나 통신체계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걸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실제로 1989년 캐나다 퀘벡에서는 9시간 동안 정전이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며칠 전부터 오로라 예보(?)가 있었고, 다운타운에 사는 아이의 친구 가브리엘이 금요일 저녁에 오로라를 보려고 근처의 바닷가로 갈 예정이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저 얼핏 지나가는 현상일텐데 핑계김에 들뜬 금요일을 보내겠구나 하며 웃었는데, 가브리엘이 스페니쉬 뱅크스 비취(spanish banks beach)에서 보낸 실시간으로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희집은 다운타운에서 먼 곳이기도 하고 도시의 불빛들이 많아서 잘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그나마 산이 있는 쪽이라 불빛이 덜한 발코니로 나갔습니다. 선명하진 않지만 희미한 색을 품은 은하수 같기도 하고 옅은 구름같기도 한 무엇인가가 별이 총총한 맑은 밤하늘에 가득했습니다. 이거라도 사진으로 남기려고 밤하늘을 향해 폰을 댄 순간, 아이와 동시에 외쳤습니다. OMG! (이것은 아이폰의 승리인가! )


가브리엘이 보내준 사진에 비하면 부실하지만 제가 북극에 사는 것도 아닌데, 내 집 발코니에서 오로라를 보았다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현실에 연신 감탄하며 즐거웠습니다. 대개의 자연이 주는 위로나 평안이 고요한 것이었다면  오로라는 오히려 흥분이었어요. 나중에는 헌터까지 나와서 셋이 꽤 오래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탁 트인 평원의 밤하늘에 펼쳐지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비행기까지 타고 찾아가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인들 중에 오로라를 보러 '옐로우나이프'로 가는 게 버킷 리스트의 하나인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모두들 지웠다고 합니다. 옐로우나이프까지 가서도 오로라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감안하면 이만하면 '충분하다'였거든요. 파랑새도 아닌 것이 바로 집앞에 있었네요.


지리적인 위치상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현상이라니 공유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이 사진들은 '오로라'가 아니라 우리 집 '발코니'에 방점이 찍힌 것들이니 감안하고 봐주세요.












헌터도 제법 뭘 좀 아는 듯, 오로라 가득한 하늘을 바라봅니다. 색색의 오로라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는데 저 자리에서 꼼짝을 안 해서 청록색만 보이는 옆쪽 하늘이 배경이 되었어요. 그래도 별도 몇 개 보이고 운치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에서 가장 멋있는건, 헌터지요.:)


오늘 아침, 토요일이라 평소보다 조금 느긋하게 헌터와 함께 산책을 나갔는데 문득, 어젯밤에 어디 멀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더군요. 겨우 발코니에 나갔다 왔을 뿐인데 말이예요. 아주 투명하고 얇은 우주의 기운이 마음 어딘가에 얹혀져 있는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도시엔 곰이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