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을 바꿔준 인생책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 박경철
인생 책이 뭐냐는 질문에 항상 언급하는 책 중 하나이다. 의사를 꿈꾸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군 시절 행정실에 꽂혀있던 책을 꺼낸 행위가 시작이었다. 그 후에도 이따금씩 책을 펼쳤지만, 의사가 되고 난 후에는 이번에 처음 다시 읽어 내려갔다. 13년 전 이 책을 마주할 당시에는 단지 작가 박경철 저자였지만, 지금은 선배 박경철 저자가 되었다. 선배 의사의 책으로 인식한 후 읽은 느낌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나는 입이 마르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이 떨린다는 것은 외과 의사가 본능적으로 환자를 놓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럴 때는 무엇보다 나를 추슬러야 한다. 의사가 무너지면 환자는 바로 죽음의 경계를 넘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 파견지에서 수술했던 자상(stab injury) 환자가 떠올랐다. 남편에게 칼을 찔려 온 아주머니를 응급실에서 처음 봤을 때 단순히 봉합만 해주면 되는 상처라 생각했다. 경험이 없던 2년 차 전공의는 단순한 자상에서 상황이 얼마나 더 급박하게 돌아갈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CT를 찍고 난 뒤 환자 배가 급격히 부풀어 오르고 나서야 초음파를 가져다 댔다. 복강 내 출혈이 어마어마했다. 동시에 혈압이 떨어지면서 급하게 교수님을 호출했다. 수술방에 들어간다고 마취과에 통보하듯 전화를 하곤 환자 카트를 끌고 뛰다시피 수술방에 들어갔다. 배를 열자마자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고 썩션을 해도 해도 출혈 포커스는 찾을 수 없었다. 소장을 다 들어내고 나서야 십이지장과 신장 사이에 피가 분출하는 곳이 보였다. 후복막 출혈이었다. 수혈을 하고 승압제를 아무리 올려도 환자의 혈압은 올라가지 않았다. 수술방에 있는 가장 굵은 니들(needle)로 블라인드로 후복막을 뜨는 교수님의 떨리는 손이 보였다. 시야를 확보하고 썩션을 하는 내 심장도 방망이질 해댔다. 나도 교수님도 말이 없어졌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란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환자는 수술방에서 죽지는 않았다. 지혈은 되었지만 저혈량 쇼크로 인해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못했다.
그러나 그들에 비하면 나는 비겁했다. 처음에는 어른의 배를 가르고, 장을 만지고 복강을 세척하면서 흘러내리는 세척액이 내 몸에 닿을까 봐 수술대에서 떨어진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수술을 시작했다. 어른의 복강에서 흘러내린 용액이 닿을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도저히 허리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수술대에 몸을 붙이고 수술을 하면서도 허리띠 아래로 천천히 젖어드는 환자의 체액에 대한 꺼림칙함이 수술 내내 머릿속을 헝클어놓았다.
- 나병 환자를 수술하며 남긴 저자의 기록이다. 과거 나병, 문둥병으로 불렸던 한센병은 전 세계 인구의 95%가 자연 저항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감염 위험성은 있다. 저자의 꺼림칙함도 이해가 되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감염 환자의 수술 도중 세척액이라도 눈에 튀면 몇 날 며칠이 신경 쓰였다. 의사로서의 소명의식과 인간으로서의 자기 보호 욕구가 상충되는 지점이다.
대개 그렇듯이 시골 어르신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항상 정중하게 대하신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한 손으로는 쓰고 계시던 모자를 벗으시며 허리를 굽혀 인사부터 하시는데, 이것은 말이 인사지 거의 절이다. 대개 이럴 때는 기미를 알아채고 벌떡 일어나서 맞절을 해야지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어른에게 앉아서 절 받는 꼴이 되기 쉽다.
- 외래 때 수차례 겪어본 어색한 상황 중 하나였다. 말이 인사지 거의 절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적절했다. 맞절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잡기란 쉽지 않다. 이전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는 와중에 벌컥 들어오시는 어르신들의 인사는 벌떡 일어날 틈을 안 준다. 의자에 앉은 채로 채로 굽힐 수 최대한으로 상채를 굽혀 그나마 겨우 예의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좋았던 옛 시절의 일화로 남겨질까 걱정되는 요즘이다.
그가 퇴원한 뒤 나는 금방 일상으로 복귀했다. 사람이란 참 이상한 동물이다.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생긴 양 수선을 떨다가도 그 상황이 종료되면 금방 원래 자리로 돌아가버린다. 그 후로 가끔 그와 두 딸이 생각났지만, 더 이상 그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지는 않았다.
- 하반신 마비인 폐암 말기 환자 일화였다. 아빠의 병을 알기엔 너무 어린 두 딸이었다. 환자의 좋지 않은 결과에 가정사를 겹쳐 알게 되는 순간 의사의 감정 동요는 더욱 크게 일어난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잊지 못할 일을 겪은 것 같다가도 또다시 일상으로 어느샌가 돌아가있다. 이것이 시간과 삶의 미덕 중 하나겠지마는 때론 과거의 중요한 지점들이 우리 일상을 환기시켜 주기도, 지켜주기도 한다. 글과 기록의 가치는 여기에 존재했다.
흔히 칼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늘상 봐와서 익숙한 물건들이지만, 가끔은 내가 과연 이것들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자문하는 마음이 되기도 한다.
- 미신을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때때로 운세를 본 적은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았던 일화는 고향의 한 손금 집이었다. 당시에는 갓 대학에 입학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기였다. 진로에 대한 고민도 없었던 시기라 별생각 없이 양손을 내보였다. 손금 보시는 분의 첫마디는 '칼잡이 상이네'였다. 당시엔 그 말을 듣고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셰프? 대학원 실험? 애먼 상상들만 했었다. 시간이 지나 의사가 되고 외과를 전공했을 때 메스를 잡고서야 알게 되었다. '칼잡이 상'의 칼은 메스였다. 과연 앞으로의 20년 의사 인생에 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고 죽일지. 선배 의사들의 칼끝을 잘 따라가는 것도 하나의 과제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평생 동안 경험하는 희로애락의 양은 일반인들의 백 배, 천 배, 아니 만 배쯤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런 것들에 너무 둔감해지거나 민감해지면, 스스로 의사로서의 자격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 의학이 발달한 요즘은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 죽음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위중한 환자의 마지막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소도 병원이다. 죽음과 가까이 있는 병원은 '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의 집합체이다. 더 폭넓고 더 깊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바이탈과의 매력을 높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항상 경계해야 할 사실은 희로애락과 일의 중도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에피소드들도 너무나 진귀하지만, 그만큼 박경철 저자의 필력은 어마어마했다. 울고 웃었던 병원의 에피소드를 읽고 나선 오히려 지금의 내 삶에 감사하게 되었다. 최근 전공의 일기를 모아 종이 책으로 내보려 출간 기획서를 제작해 보았다. 경쟁 도서가 뭐냐는 항목에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썼지만, 경쟁이 되지 않는 베스트셀러였다. 세상은 넓고 대단한 사람은 너무나 많다. 아직도 더 많이 배우고 깨우쳐야 할 병원에서의, 삶에서의 기술이 있었다.
의사를 꿈꾼 것도, 외과를 선택한 배경도 책으로 접한 박경철 저자의 영향도 크다. 외과 전문의로 이제 고생길은 열렸으니 일부 책임소재가 저자에게도 있을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