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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May 26. 2024

전공의 수련 종료

길었던 전공의 생활이 끝났다. 사실 전공의가 끝난 지는 벌써 3개월째다. 전공의 마지막 날은 뭔가 의미가 있고 뭉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수련이 끝날 무렵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으로 전공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뒤숭숭한 병원 분위기 속에서 떠밀리듯 전공의를 수료하고 병원을 나왔다. 다들 수고했다고 했지만 마치 별로인 공연 뒤에 어정쩡한 박수소리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4년간의 수련을 끝내고 외과 전문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지 못했다. 의사에 대한 차가워진 사회 인식 때문인지 직업 소개를 할 때는 왠지 모르게 멋쩍었다. 예정대로라면 이식외과 펠로우를 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대신 강제 휴식이 시작되었다. 의정 갈등이 마무리되면 다시 병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의정 갈등은 쉽게 끝날 기미가 안 보였고, 일말의 진전도 없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에 펠로우 시작을 마냥 대기해야 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지 끝없는 고민이 반복되었다. 당직 콜에 잠을 못 자는 날도 없었고,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늦잠을 잘 수도 있었다. 그래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불확실한 미래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몸은 편했을지 몰라도 심적으로 힘든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 했다. 인생의 모든 날들이 의미가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전공의가 끝난 날은 지난 기간을 되돌아보고 더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의사가 된 첫해는 인턴으로 시작했다. 인턴 1년은 말 그대로 똥오줌 길을 걸어 다녔다. 환자의 소변줄을 교체하면서 크록스에 오줌이 뿌려지는 일은 빈번했다. 크록스 안에서 미끌거리는 맨발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관장을 하다 옷에 똥물이 튀기도 했다. 병원의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아침과 밤, 새벽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콜을 받았고, 처음 해본 술기다 보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금씩 의사가 된 듯한 느낌과 함께 직업에 대한 뿌듯함을 느꼈던 시기였다.


외과 1년 차 시절에는 세상의 온갖 부담감을 등에 업은 느낌이었다. 환자의 입원부터 퇴원까지 처방은 나의 몫이었다. 수술방에서 메스로 직접 환자 배를 갈라 보는 어마무시함은 당시에는 상상 이상이었다. 수술 전후 환자들에게 경과를 설명하는 과정도 익숙하지 않았다. 환자들을 직접 마주하면서 코로나 마스크 대신 사회적 마스크를 장착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병동에서 환자들과 살을 부대끼며 인생을 배웠고, 의사의 책임감과 사명의식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2년 차 때는 조금 더 똑똑해진 시기였다. 병동이 아닌 중환자실 환자들을 보며 더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하루를 보내는 듯했다. 선택의 순간마다 상당한 중압감이 뒤따랐다. 중환자실의 당직 새벽에는 나의 결정으로 환자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가끔 숨이 막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당직들도 나중에는 피와 살이 되었다. 2년 차가 끝나갈 무렵에는 내 당직에서만큼은 환자가 죽지 않게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올라왔다.


3년 차 때 드디어 수술방 메인이 되었다. 교수님의 옆에서 수술을 마음껏 배웠다. 수술을 잘하고 싶어 학생 때부터 연습한 왼손 젓가락질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수술이 재밌었고 수술방에서의 몰입감은 육체적 피로를 보상해 주었다. 바짝 긴장하면서 입던 스크럽 가운도 이제는 내 옷인 양 편하게 입게 되었다. 수술방이 편해지고 수술방 선생님들과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다. 하나씩 할 수 있는 수술이 생기면서 교수님의 지도하에 혼자 수술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진짜 외과 의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연찮게 시작한 전공의 일기는 수련 틈틈이 써왔다. 전날의 기억을 잊어버릴까 당직을 서고 난 다음날엔 집도 들르지 않고 카페에서 글을 쓰기도 했고, 퇴근길에 생긴 이벤트는 지하철에서 써 내려가기도 했다. 더 오래 기억을 남기고 싶어 시작한 블로그였지만 전공의가 끝날 때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이었다. 댓글로 남겨주시는 한마디에 가끔은 몸 둘 바를 모르는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한 처음부터 꾸준히 공감을 눌러주는 분들은 닉네임에서부터 반가움이 느껴진다.


이전에 챗 지피티와 '글쓰기의 장점'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소통 능력의 향상, 기억력 향상, 스트레스 해소 등 여러 장점을 얘기했지만 의아했던 한 가지는 "Sense of belonging", 소속감이었다. 혼자 글을 쓰는 행위가 왜 소속감을 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3년째 글을 써오고 있는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글을 쓰고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행위는 세상과의 연결성을 높여주었다. 직장과 주변 지인들의 범위를 벗어나 더 큰 그룹의 일원임을 느끼게 해 주었고 이것은 생각보다 큰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었다.


의학을 전공한 덕분에 병원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었고, 더 감사히도 외과를 전공한 덕분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깊고 폭넓은 사유를 할 수 있었다. 인생에서 두 번 다시 경험치 못할 전공의 시기를 글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가히 독자라고 칭하기도 민망한 글들이지만, 그간의 전공의 일기는 독자분들 덕분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전공의 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여러 번 상상한 결과, 이 공은 지금까지 함께 소통해 주신 독자분들에게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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