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의 수술방

by 글쓰는 외과의사

멀미를 동반해 가며 급하게 도착한 인천의 병원에선 수술방이 순식간에 차려졌다. 마취과 의사의 분주한 손만 보아도 환자의 활력징후가 얼마나 안 좋은 지 예상할 수 있었다. 뇌사자의 장기 적출 수술이 예정된 날이었다. 수술방의 적출 담당자는 폐 이식 팀 교수님과 나, 단 둘 뿐이었다. 이식이 흔히 이뤄지는 장기는 심장, 폐, 간, 신장 등이 있지만, 이번 뇌사자에서 적출할 수 있는 장기는 폐와 신장뿐이었다. 나머지 장기들은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기증이 불가능했다. 횡격막을 경계로 그 위쪽은 폐 이식 팀에서, 아래쪽은 외과인 우리 팀이 담당해야 했다.


수술 전 뇌사자의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고농도의 승압제가 쓰이고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환자의 생명은 연장될 수 있을지 몰라도 승압제에 견디지 못하는 장기들이 발생한다. 혈류가 나빠진 장들이 썩거나 신장의 기능도 같이 안 좋아질 수 있다. 마취 준비가 끝나자마자 급하게 배를 갈랐다. 십자 모양으로 열어본 배 속은 이미 소화 장기들이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정상적인 소장이라면 붉은빛에 약간 못 미치는 분홍빛을 띠지만, 이번 뇌사자의 소장은 핏기를 잃고 점차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소화 장기의 색이 이만큼이나 창백한 뇌사자의 적출 수술은 해본 적이 없었다. 뇌사자의 신장 또한 정상적인 기능을 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신장 기능이 좋지 않다고 예상된다면 일찌감치 이식을 포기해야 했다. 기능을 하지 않는 신장을 이식하는 건 오히려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였다. 배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장기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양측 신장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보이는 신장 색은 옅은 분홍색으로 비교적 괜찮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극히 일부분만 확인이 가능했다. 더 자세히 볼 틈도 없었다. 배를 열고 난 뒤 뇌사자의 혈압은 널뛰기 시작했고, 장기들의 기능이 더 나빠지기 전에 수술을 끝마쳐야 했다.


수술을 하면서도 부담감이 엄습해 왔다.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는 부담감보다, 이 신장을 이식해도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압박했다. 경험이 풍부한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외과 교수님은 아무도 없었다. 젊은 뇌사자라는 점, 소화 장기들은 창백해졌지만 신장의 색은 아직 괜찮다는 점, 시간당 나오는 소변량이 충분하다는 점. 긍정적인 상황들이 여러 가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장의 이식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런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들의 예후가 어떤 지 경험이 없었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무력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폐 팀의 적출 수술이 지연되었다. 뇌사자가 이전에 심장 수술을 했던 까닭에 수술이 어려워진 것이었다. 배 안에서는 이미 신장을 떼어낼 준비를 마쳤지만, 폐 이식 팀과 호흡을 맞춰야 했다. 폐를 떼어낼 준비가 끝나야 신장 적출도 가능했다. 폐 적출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중간중간 계속 신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배 안을 들춰보며 색을 확인하고, 마취과 구역으로 넘어가 환자의 모니터와 소변량을 체크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다행히 더는 신장의 색이 변하지 않았다. 수술방과 대기실을 오가며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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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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