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가치

by 글쓰는 외과의사

오랜 기다림 끝에 폐 이식 팀도 준비가 끝났다. 신장을 떼어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들쳐본 신장의 색은 처음보다 훨씬 더 좋지 않았다. 뇌사자 수술 시작부터 지금까지 5시간이 흘렀다.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서둘러 신장을 떼어내고 본원으로 출발했다. 이번 뇌사자의 신장을 이식해도 될지 본원 교수님의 확인이 필요했다. 나보다 20년은 더 경험이 많으신 교수님의 판단은 또 다를지 몰랐다. 뇌사자의 수술장에서부터 이어진 불확실성은 본원으로 돌아가는 구급차의 시간을 무한히 늘려주었다.


신장을 못 쓸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으로 본원에선 아직 수혜자의 수술이 시작되지 않았다. 본원 수술방에 도착하자마자 숙제검사를 받는 학생마냥 가져온 신장을 무영등 밑에 올려놓았다. 다행히 교수님의 눈으로 본 신장의 상태는 괜찮았다. 그리고 교수님의 눈은 정확했다. 이어진 이식 수술에서 신장을 붙이자 곧이어 소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변은 가져온 신장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사실 적출 수술을 하던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식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예상이 보기 좋게 엇나간 셈이었다. 수술이 끝난 뒤 흐르는 소변을 보면서 이전의 불안감과 초조함은 안도의 숨으로 바뀌었다. 교수님의 경험도 이러한 순간이 모여서 형성되었을까. 그 경험을 훔쳐 오고 싶다는 욕구가 불현듯 올라왔다. 교수님의 경험에는 환자에게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지켜내는 힘이 있었다.


그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환자들이 이식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떠올리면 추측할 수 있다. 한국에서 뇌사자 신장 이식을 기다리는 시간은 보통 10년이 넘는다. 정상적인 신장 기능을 잃고 투석으로 버텨야 하는 세월이다. 기다린 시간을 생각하면 뇌사자가 생겼을때 어떻게든 이식을 진행하는 것이 올바른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평생 몇 번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한다면 조금 더 기다려서 좋은 신장으로 이식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결정일 수도 있다. 기능이 떨어진 신장을 이식한 뒤 얼마간 쓰지 못하고 다시 투석을 시작한다면, 환자는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이식 기회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고민은 응당 의사가 짊어져야 하겠지만, 경험이 부족한 의사에겐 한없이 무거운 짐이었다.


내게는 주말을 앗아가고 때로는 진절머리까지 나는 이식 수술인 반면, 환자에게는 10년을 기다린 수술이었다. 환자들의 삶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인 만큼 선택은 언제나 무겁고 신중해야 했다. 그 무게를 지탱해 주는 것이 바로 경험이었다. 경험은 단순히 수술의 반복으로 가지는 손기술이 아니었다. 그보다 불확실한 순간에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눈과 용기가 경험이었다. 시간만 흘러 켜켜이 쌓이는 경험 대신, 수만 번의 고민과 좌절을 동반한 경험은 본인의 분야에 철옹성 같은 감각과 전문성을 부여해 준다. Try and Error의 가치는 여기에 있었다.


수혜자는 수술 후 2주간의 회복 기간 끝에 퇴원했다. 이식한 신장이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기능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어쩌면 환자는 단순히 치료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의사를 성장시키는 동반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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