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넌 진주행

by 글쓰는 외과의사

이번 뇌사자는 진주에 있었다. 살면서 진주는 가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먼 곳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야 할 수도 있겠다는 코디네이터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최장거리 적출 장소 중 하나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뇌사자 적출 담당 코디네이터 선생님은 수술 전 준비를 전담해 주신다. 적출 팀의 도착 시간에 맞춰 수술 시간을 조율해 주시고, 이동 편을 확보하고, 뇌사자가 있는 병원까지 동행해 수술 내내 본원과 소통한다. 장기이식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이다. 벌써 이 일을 15년 넘게 해 오신 분이라, 이동과 준비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다.


갑자기 결정된 간이식 수술이었던 탓에 이번에는 코디네이터 선생님도 힘들어하셨다. 시간도 촉박했지만 기차표가 문제였다. 여러 번 새로고침을 눌러도 취소표는 나오지 않았다. 진주까지 앰뷸런스를 타고 갈 수는 없었다. 아마 3시간 동안 앰뷸런스를 타고 도착했더라면 수술 전에 이미 기진맥진했을 것이 분명했다. 왕복 비행기 편을 알아보던 중, 겨우 가는 기차표 3장이 구해졌다. 가는 편은 기차, 오는 편은 비행기로 정해졌다. 다만 수술이 늦어지면 그나마 구한 비행기도 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제시간에 수술이 끝난다는 전제하에 오는 편 비행기 티켓까지 예매하였다.


진주로 가는 길, 기차만 3시간을 타야 했다. 그마저도 동대구에서 한번 갈아타야 했다. 뇌사자 적출 수술은 몸만 가면 되는 일이 아니다. 아이스박스가 필수다. 수술에 필요한 도구와 용액을 한데 담아 가져가야 한다. 가져가는 용액 무게만 15kg이 넘는다. 대형 캐리어를 끌듯 아이스박스를 두 손으로 끌며 기차역으로 갔다. 이번처럼 기차를 갈아타기라도 하는 날엔 아이스박스를 이고 지며 옮겨야 했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짐을 옮겨달라고 할 수는 또 없었다. 남자랍시고 좁은 기차 통로에서 혼자 아이스박스를 들고 내리다 보면 허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걸어야 했다. 뇌사자 수술 용품만 퀵으로 전달해 주는 시스템은 없는 건지, 있다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이용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한 진주역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적한 느낌의 기차역은 여행으로 왔다면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침부터 종일 분신처럼 붙어 다니는 아이스박스를 끌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를 타야 했다.


수술은 비교적 빨리 진행됐다. 이번 뇌사자는 간과 신장만 이식이 가능한 케이스였다. 폐나 심장을 적출하는 흉부외과와의 협조가 필요 없었다. 온전히 나만 잘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혹여나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칠까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수술을 끝냈다.


돌아오는 길은 김해공항이었다. 진주도 처음이었지만, 적출을 다니며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온 것도 처음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인원은 세 명이었지만 네 좌석을 예매해야 했다. 인체의 장기는 물건이 아닌 이유로 화물칸에 실을 수 없었다. 의료진의 시야 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기내에 있어야 했다. 간이 담긴 아이스박스는 한 좌석을 차지했고, 규정에 따라 안전벨트까지 채워졌다. 그 벨트 한 줄이 실제로 고정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게 규정이었다. 돌아오는 비행시간마저도 옆 좌석에 앉아, 한 손으로 아이스박스를 붙잡고 있었다.


김포공항서부터 본원까지는 앰뷸런스로 이동했다.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드디어 아이스박스와 이별할 수 있었다. 새벽부터 출발한 진주행 기차가 마치 어제 일 같았다.


수술 또한 육체노동의 일종이지만, 장기 이식이라는 수술장 이미지 이면에는 택배 승하차와 같은 육체노동도 있었다. 어쩌면 장기 이식은 환자의 무겁고 숭고한 결정 위에 쌓인 의료인들의 육체노동 집합 일지도 모른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4일 오후 09_01_49.png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경험의 가치